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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기사승인 2012.01.30  07: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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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자 세상읽기 12/ 보수와 진보

   
▲ 한나라당 강령

최근 우리나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정치 이념인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서 빼려고 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금년에 ‘표’를 얻어야 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집권당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이념도 벗어버리겠다는 전략(?)이다. 한때 이념 때문에 목숨까지 걸었던 때가 있었음을 되돌아 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그깟 이념도 ‘표’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인 모양이다.

때마침 지난 주일(2012/1/15) sbs스페셜은 ‘적과의 동침’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우리나라 정치계의 ‘보수’와 ‘진보’의 모습을 그렸다. 자칭 보수 세력이라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그와 상대적으로 진보 세력을 주장하는 ‘대한민국자식연합’의 모습을 대립적으로 소개했다. 전자는 말 그대로 노인들이 주된 회원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이들이다.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는데 다시 공산당과 같은 이들에게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이유로 뭉쳐있다. 반면 후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합리적인 ‘논리’로 자신들의 정책을 말하려고 한다.

방송은 두 단체의 만남을 제시했다. 두 단체도 처음 있는 일이라 어색하기는 했지만 응했다. 역시 불꽃이 튀겼다. 서로의 생각하는 바가 너무도 달랐다. 어떤 면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해 보였다. 몇 차례의 만남에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의 이념, 즉 보수와 진보는 물과 기름과 같이 섞이지 않았다.

 

   
▲ sbs스페셜 '적과의 동침'


보수측 원희룡 의원(한나라당)과 진보측의 조국 교수(서울대)와 만남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두 사람이 만나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치 마당에서만큼은 극과 극이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정치 관련 대화를 빼면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 그 자체였다. 이념이 이렇게 두 사람을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질문 하나 던져보겠다. 그럼 당신은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적어도 우리는 금년에 총선과 대선이라는 두 번의 투표 현장 앞에서 적어도 보수와 진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이 부분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줄을 서야 할까?

‘보수’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보전하여 지킴’으로 나왔다. 그 내용은 ‘풍습과 전통’이다. ‘진보’는 ‘사회 모순의 변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보수는 ‘지킨다’, 진보는 ‘변혁시킨다’를 대변한다. 단어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전할 것은 보전하고 변혁시킬 것은 변혁시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보수-진보’를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지금부터 ‘보수-개혁’이라는 용어로 표현해 보겠다. 변혁시킨다는 지향점에서 진보와 개혁이 같은 그룹에 속했다고 보았다.

보수의 장점은 아무래도 ‘안정성’일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독일 대학입시제도인 ‘아비투어’는 1788년에 처음 시작됐다. 이후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해마다 바뀌는 우리네 제도와 비교해 보면 천지차이다. 그렇다고 독일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 동안 노벨상 수상자가 80여 명이 나왔다. 매년 특허 건 수도 수만에 달한다(김정호,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매일경제, 2011년 12월 14일자).

영국 로이즈SG해상보험은 해상보험의 문을 처음 연 회사다. 1779년 그 보험 약관이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역시 200년이 넘었다. 일본 모리나가 제과 밀크캐러멜의 포장용기는 1914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100여 년 동안 그 디자인이 바뀌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보수가 주는 안정감 등의 가치를 부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금전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개혁의 진정한 의미는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자가 된다는 데 있다. 개혁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46년전인 1966년 미국 시사 주간지 <더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25세 이하 세대’(The Generation Twenty Five & Under)였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의 계기가 되었던 ‘통킹만 사건’에 대해 당시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일어선 것이다. 당시 기성세대들의 ‘거짓’에 개혁을 외친 것이다. ‘나이 30이 넘은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말라’, ‘솔직히 말하라’ 등이 당시의 슬로건이었다.

지난 해(2011년) <더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였다. 위대한 혁신 기업가인 스티브잡스, 빈 라덴 사살 작전 지휘자 윌리엄 맥레이븐도 아니었다. 시위자들의 구호는 공교롭게도 46년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뀐 것은 개혁의 주체가 객체로 된 것이다. ‘기득권층은 가라’고 외쳤던 이들이 그 소리를 지금 듣고 있는 것이다(손현덕, “믿으니까 청춘이다”, 매일경제, 2012년 1월 19일자).

개혁의 가치도 보수의 그것과 차이 나지 않는다. 개혁 없이 보수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반대로 보수 없는 개혁은 혼란만 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와 개혁은 잘 어울리는 단짝이다. 서로를 싸움의 대상인 ‘적’이라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정치계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의 정쟁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차라리 청팀 홍팀으로 이름 부르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청색은 홍색이 아니고, 홍색은 청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 원희룡 의원(좌)과 조국교수(우)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보수하고 또 무엇을 개혁해야 할까?

결론을 먼저 언급한다면 다음과 같다.
* 보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 개혁: 나 자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보전하여 지키고, 나 자신은 언제나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마 24:35). 앞의 성구가 담겨있는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 천지만물이 마지막에 모두 없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변역하지 아니하시고”(말3:6),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약1:17),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시며”(민23:19)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언제나 선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네 삶의 기준이다. 영원히 보수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에 반해 ‘나’ 자신, 또한 나의 활동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모든 ‘문화’는 개혁의 대상이다. 최근 로마서를 묵상하다 사도 바울의 심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한 대목이다(롬7:24). 영어성경(NIV)은 “What a wreched man, I am”라고 표현한다. “오! 나는 정말 초라한, 딱한(wreched) 존재입니다”라는 의미다. ‘의’와 ‘죄’가 속에서 뒤엉켜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하고 있다. 의를 행하려면 죄가 발목을 잡고, 그렇다고 죄를 행하려는 마음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갈등 그 자체다. 그게 인간이라는 말이다.

우리도 종종 갈등에 빠진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복수와 사랑에서 헤맨다.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 경우에는 갈등에 최고에 달한다. 정답은 무엇인지 아는데, 정 반대로 행하고 싶기 때문이다.

‘원수사랑’의 하나님의 말씀을 보수하고, ‘울분’의 나 자신을 개혁하는 게 정답인 줄 안다. 하지만 복수의 마음을 보수하고,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개혁의 대상으로 거꾸로 놓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다시 떠올려 보자. 부활을 기대하는 바울은 자신 있게 오늘도 죽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의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으라면 언제든지 죽겠다는 각오다. 이런 점에서 개혁은 순교다.

서두의 질문을 다시 한 번 언급해 보자. 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이렇게 답하면 어떨까? “하나님의 말씀을 보수하는 보수파이며, 나 자신을 언제든지 개혁하려는 진보파입니다”라고 말이다.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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