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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2인자’로 지내라면….

기사승인 2012.02.23  19: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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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자 세상읽기 16/ 2인자

현악 4중주의 음악을 들어보자. 현으로 이루어진 4종류의 악기 소리 조합은 정말 섬세하고 감미롭다. 제1 바이올린의 빼어난 기량과 함께 제2 바이올린의 탁월한 보조가 있어야 한다. 비올라와 첼로의 묵직한 소리는 전체 음악을 뒷받침해 준다. 하이든의 ‘종달새’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제2 바이올린의 역할에 대해 언급해 보려고 한다.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악기가 4개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제1 바이올린을 보좌하고 비올라와 첼로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악 4중주 구성 악기 중 제2 바이올린을 빼고 피아노를 넣으면 ‘피아노 4중주’라 부르는 것도 그 중요성과 관련된다.

한 사회 조직의 ‘2인자’의 역할을 현악 4중주의 제2 바이올린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함을 말하려 한 것이다.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짓기도 한다. 국가는 물론 직장 심지어 교회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먼저 질문을 던져보자. 사회생활 중 당신에게 평생 2인자로 지내라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크게 두 가지 대답이 나오리라 본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살지요”라는 ‘YES’와 “나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까?”라는 ‘NO’의 대답일 게다.

위 질문을 계속 머리에 담아 둔 가운데 ‘2인자’ 관련 사례를 살펴보자(매일경제 2012년 1월 28일-29일 섹션 B1).

1. 마오쪄뚱(모택동)과 저우언라이(주은래)의 관계다.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설립 때부터 2인자 저우언라이는 1인자, 모택동을 도왔다. 그는 당시 보기 드문 유학파다. 국제 감각도 탁월했다. 능력 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41년 동안 2인자의 위치를 지켰다. 오늘의 중국이 존재하는 데 결코 가볍지 않은 역할을 해 온 것이다.

2.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박정희와 김종필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지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에 의해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김종필은 2인자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처삼촌인 박정희를 적극 도왔다.

3.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이건희와 이학수의 관계를 대표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특히 지난 1997년 IMF 때 이학수 씨는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면서 삼성의 위기 탈출에 중심 역할을 했다. 오늘의 삼성이 존재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셈이다.

위의 사례들은 2인자의 역할로 인해 조직이 목표했던 바를 잘 이룬 경우다. 그러나 반대로 2인자의 역할로 인해서 조직이 패망의 소용돌이에 빠진 경우도 있다.

애플사의 이야기다.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애플사는 출생,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길 원했다. 자신에게 한계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펩시콜라 사장인 존 스컬리를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자라온 배경과 생각이 많이 달랐지만, 회사를 향한 열정에 대해선 공통점이 많았다. 완벽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친해졌다. 1983년 존 스컬리는 잘 나가던 펩시를 그만두고 애플의 경영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의 연합으로 애플사가 폭발력 있게 급성장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그것도 2년 만에 말이다. 결국 스티브는 2인자인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이후로 애플사는 끝없는 추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11년 후 스티브 잡스가 다시 귀환할 때까지 말이다.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리더 간의 갈등관리>(다이애나 맥레인 스미스, 에이콘, 2009)는 스티브 잡스와 존 스컬리의 ‘갈등’을 비공식적인 관계 때문으로 분석했다. 공식적인 관계, 즉 누가 1인자이고 누가 2인자 인지는 분명히 정리했지만, 비공식적인 관계인 인간관계 등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위 모든 사례는 2인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준다. 2인자에 의해 조직이 살아나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휙~’ 둘러보자. 2인자가 정말 중요하게 대접을 받고 있는가? 정말 사람들은 그렇게 중요하다는 2인자가 되고 싶어 할까? 다음 예들을 살펴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만든다.

   
▲ 영화 <페이스메이커>

영화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는 육상 마라톤에서 2인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는 1인자의 성공을 위해 30km만 달린다. 시합에 나갈 경우 다른 팀 선수들의 힘을 빼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다. 같은 팀 1인자의 우승을 위해 조용히 자리를 떠나주어야 한다. 2인자의 역할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누가 2인자, 즉 페이스 메이커를 기억하고 있는가?

‘식스맨’(six man)이란 용어가 있다. 농구 경기는 주전이 5명이다. 식스맨은 후보 선수들 중 제일 기량이 좋은 선수다. 그러나 그가 주전으로 나가 경기에 뛸 기회는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주전 선수의 쉼을 위해 잠시 코트에 나가지만 이내 다시 들어온다. 식스맨이 되고 싶은 농구선수는 아무도 없을 게다. 마찬가지로 그를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다. 그는 주전선수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팀에 2군 선수들이 있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1군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지만, 요원한 일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와 보자. 그곳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엿볼 수 있다. 1인자, 2인자라는 용어가 그리 적절하지는 않지만, 논리상 그대로 사용해 보겠다. 목회자들 모임에 가보자. 노회나 총회 또는 기타 친목모임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 아무리 큰 교회 소속 부교역자라 할지라도 작은 개척교회 담임목사보다 발언권이 현저히 줄어든다.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학력, 경험 등의 경력이나 경제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지만 목회자 모임에서는 2인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것에 만족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현실의 2인자는 슬프다. 때때론 ‘굴욕’을 맛보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그런 2인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용미사두(龍尾蛇頭), 즉 ‘용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뱀머리가 되라’는 말도 그 때문에 교훈처럼 여겨진다. 최근 우리네 주변에 회자되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그것이다. 2인자의 비애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 본다.

위에 언급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에게 평생 2인자로 지내라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대답의 방향이 조금 정해졌는가? 2인자의 중요성을 언급했을 때는 ‘Yes’라고 마음이 기울었다가, 굴욕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No’라고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지는 않았는가?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도 오랫동안 소위 2인자의 인생을 살았고 또 살고 있다. 직장생활 중 회사의 어려움으로 1년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한 바 있다. 바쁜 일과로 큰 아들이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아내의 옆자리를 지켜주지 못하기도 했다. 직장인들이 흔히 느낄 수 있는 굴욕적인 사건들도 없지 않았다. 1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로 충성을 다했다.

교회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 때부터 찬양을 인도하고, 모임을 위해 일찍 도착해 의자 정리를 자원해서 담당했다. 그러면서 내가 대표리더의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인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생각도 했다. 목회자가 되어서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결단을 했다. 그러자 두려움이 생겼다. 오늘의 주제 용어로 표현하자면 ‘하나님! 내가 1인자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마음 때문이다. 2인자로 길들여져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가 좋았다.

그때 용기를 준 성경구절 중 하나가 바로 여호수아 1:1-9말씀이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부르셨다. 모세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맡긴 일을 이제 여호수아에게 이임하려고 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거의 ‘신’처럼 여겨진 지도자이다. 오실 메시야를 표현하는 말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할 정도다. 반면 여호수아는 그의 ‘종’이었다.

위 본문에서 여호수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상황이다. 필자의 마음과 동일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이다. 1인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다. 능력도 부족하고 그럴 마음도 생각도 없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신다(6절, 7절, 9절). 그만큼 여호수아가 힘들어 하고 있음을 잘 알고 계신 것이다. 물론 강하고 담대하라는 위로와 용기만을 주신 것은 아니다. 맡은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 ‘비법’도 알려주셨다. 8절이 그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는 게 골격이다. 그 말씀대로 따라 살기만 하면 된다고 하신다. 그 비법대로만 따르면 ‘형통하리라’고 하셨다. 영어성경에는 ‘succeed’라고 나온다. 부르심 받은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이미 준비시켜 놓으셨다(민 14:6 등). 모세라는 걸출한 1인자에 가려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때가 되어 그를 1인자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구약의 사도행전이라고 불리우는 여호수아서의 역사를 진행시키신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사탄의 시험 앞에선 예수님의 반응이다(마 4장). 사탄은 40일 금식을 한 예수님에게 3가지 시험을 한다. 첫 번째가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며 그 시험을 물리치셨다. ‘뛰어내려라’는 두 번째 시험도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마지막 세 번째가 문제다. 오늘 주제로 해석을 하면 사탄은 예수님에게 “세상의 1인자가 되라”는 말로 유혹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고 말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다(마 4:8). 이번에도 예수님은 담대하게 말씀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이를 ‘너가 주는 세상의 1인자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겠다’는 의미로 이해해 보았다.

위 두 사례를 통해서 볼 때, 1인자이든 2인자이든 어떠한 인생길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단,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신다는 전제가 있을 때다. 1인자가 되기 싫어도 때가 되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2인자가 되고 싶지 않아도 그게 선한 길이라면 그렇게 따르는 게 옳다는 말이다.

처음 질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기해 보자. ‘당신에게 평생 2인자로 지내라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Yes’라고 답할 때 그를 ‘겸손’, ‘순종’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경계해야할 게 있다. 혹, 열정 부족이 아닌가? 게으름이나 책임감 부족, 불성실로 포장된 답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더욱이 1인자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도 그렇다면 그는 위선자다.

‘No’라고 답할 때 그를 ‘열정’, ‘비전’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때도 경계해야 할 게 있다. 자신의 욕심이나 교만이 앞선 것은 아닌가? 자신의 한계(능력)를 파악하지 못하는 미련함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역시 2인자로의 하나님 부르심 앞이라면 그는 오만한 자가 된다.

이렇게 대답해 보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2인자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살겠습니다. 그러나 1인자 못지않은 열정과 열심을 내며 달려가겠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을 1인자로 부르신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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