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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교회(신옥주)는 와해되어야 합니다”

기사승인 2018.11.07  15: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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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문 씨, 은혜로교회(신옥주)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은혜로교회(신옥주)는 와해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남태평양의 섬 피지가 낙원이라며 그곳에 남아 있는 4백여 명의 신도들도 귀국시켜야 합니다. 그들을 비성경적인 신옥주 사상에서 벗어나 다시 정상적인 신앙과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 박찬문 씨

박찬문 씨(71)는 은혜로교회(신옥주) 피해자다. 자신이 왜 그런 곳에 빠졌는지에 대해 자책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 신도들을 도와주어야한다며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다. 외화밀반출, 타작마당으로 인한 신도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신옥주 씨 재판 증인으로 나서기 전 기자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신옥주 씨에 대해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바보 같지만, 그를 위해 충실한 집사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난 2008년 11월 한 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신옥주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다음 해(2009) 9월부터 신 씨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부천 지역에 있는 영광제일교회였습니다.”

박 씨는 신옥주 씨와의 역사를 매우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언변이 좋다고 여긴 신옥주 씨를 그는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옥주 교회는 2011년 3월 용인 동백지구로 자리를 옮기며 ‘은혜로교회’라는 이름을 걸었다. 그것이 다시 2013년 3월 과천으로 이사온 것이다.

박 씨는 2010년 1월 남전도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교회를 위해 열심을 냈다. 그러나 그의 충성이 결국 ‘화’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교회가 용인 동백지구로 이사가려고 준비할 때, 박 씨는 옮겨갈 교회 자리를 미리 살펴보았다. 자신의 상식에 비춰봤을 때 아무래도 교회 자리로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홀 중앙에 큰 기둥들이 있어 예배 집중에 방해가 될 것으로 보였다. 또한 주변 지역도 교회 자리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되었다.

이에 신옥주 씨에게 ‘부적합’하다는 내용으로 의견을 냈다. 그랬더니 “너, 죽을래”라는 평범하지 않은 답변이 곧바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1시간 가량 거친 말로 시달렸다.

“그때 갈등이 심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으며 충성 봉사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것은 상식에서 아주 크게 벗어난 일이지 않습니까? 그때 그만 두었어야 했는데, 제가 바보죠.”

박 씨는 주변 사람들의 설득으로 오히려 자신을 자책하며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하기로 했다.

박 씨도 소위 ‘타작 마당’이라는 것을 당했다. 죄를 해결해 준다며 손지검은 물론 폭행이 행해지는 일이다.

   
▲ 박찬문 씨

2014년 송구영신예배 때의 일이다. 박 씨는 신옥주 씨가 행한 타작 관련 설교를 기억하고 있다. 죄를 자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윽고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죄를 쫓아내기 위해서 타작을 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단상 앞으로 나온 신도들은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했고, 이어 신옥주 씨가 그들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좌우 뺨을 가볍게 때리는 정도였다. 그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대범해 진 것이다.

박 씨도 그 때 신옥주 씨에게 타작을 당했다. 뺨을 맞은 것이다. 박 씨는 더 세게 때려 달라고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제가 정말 바보였죠. 미쳤죠.”

박 씨가 최대로 실수한 것은 자신의 딸들을 은혜로교회에 다니도록 한 것이다. 은혜로교회 전도회회장이 되었을 때, 박 씨는 딸 2명(둘째와 셋째)을 권유하여 은혜로교회에 등록하게 했다. 딸들이 타작을 당했을 때도 박 씨는 애써 참았다. 참다운 신앙생활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박 씨 자신과 아내 그리고 두 딸들이 각각 2015년부터 피지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곳이 낙원이라는 식의 설교를 분별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큰 딸은 참여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큰 딸도 자녀들과 함께 피지에 가기로 약속은 했지만 이런저런 일로 일정이 미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딸이 ‘이것은 아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은혜로교회와 관련된 몇 가지의 객관적인 정보를 얻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큰 딸은 방송 인터뷰에서 은혜로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박 씨를 비롯한 식구들은 당시 피지에 있었다. 큰 딸의 방송 인터뷰가 나가자, 그것 때문에 피지에서 타작을 당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저보고 큰 딸을 설득해 데리고 오라며 한국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집사람이 자신이 설득해야 한다며 자신이 나가겠다고 했지요. 교회측에서 저희 부부가 금실이 좋다며 두 사람 모두 한국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박 씨 부부는 피지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물론 목적은 큰 딸을 설득해서 피지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가 2017년 8월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씨 부부는 일단 과천 은혜로교회에 출석을 하며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이 발생했다. 교회측은 큰딸이 음란하다며 질책을 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계속해서 박 씨 부부를 향해 불편한 말을 쏟아냈다.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아내를 향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퍼붓는 것을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이때야 비로소 박 씨는 결단을 내렸다.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큰 딸을 데리러 왔지만, 오히려 큰 딸과 마음이 같아졌다.

“마침내 제 눈이 떠진 것이죠. 이것은 올바른 신앙도 교회도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때가 2017년 10월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문제는 아직 피지에 남아 있는 두 딸이었다. 자신들이 반대편에 선 것을 알면 딸들이 어떠한 고난을 당할 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에게 기적적인 사건은 또 발행했다. 피지에 남아 있는 두 딸들이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내용은 너무도 간단했다. 부모님이 한국으로 떠나자 두 딸들은 외로웠는지 교회측에 한국으로 한 번 나갔다 오겠다고 요청했다. 박 씨 부부가 워낙 충성스럽게 봉사를 했기 때문인지 교회측이 흔쾌히 승락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8년 1월에 두 딸도 부모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죠. 정말로... 온 식구들이 신옥주 손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박 씨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신옥주에게 비성경적인 신앙을 맛본 가족들이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통이든 사이비든 모든 것이 싫다고 한다. 박 씨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며 아파한다.

“은혜로교회는 없어져야 합니다. 다시는 저와 같은 아픔이 만들어져서는 안 됩니다. 피지에 남아 있는 신도들을 어떠한 방법을 동원시켜서라도 귀국시켜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과 삶을 그들에게도 허락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계속 뛸 것입니다.”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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