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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내 부모님은 ‘新보트피플’

기사승인 2019.01.07  13: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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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 송길원 목사

“아니 또 그것을 사왔어요?”
(풀 죽은 목소리로) “그러면 이게 아닌감!”
“.......”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는 줄에 묶인 강아지만 같다. 몇 걸음을 걷고는 허리를 펴야한다. 관절 계통에 장애가 있다. 심장수술도 받았다. 숨 쉬는 것도 힘들어 하신다. 그런 어머니 땜에 시장을 보는 것은 아버지 몫이다. 아버지는 시장 보는 게 서툴다. 평생 교단에만 서서 칠판과 분필 가루로 살아오신 분에게는 버겁다. 겨우 사들고 들어서는 게 두부 정도다. 곁에 사는 누이들이 시장을 봐 준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사람의 행복은 먹거리로부터 와야 하는데 식탁은 학교 기숙사의 3천원짜리 식탁에 다를 바 없다. 먹고 나면 금방 배고파지는.....

이전에는 골목길에만 나서도 가게가 있어 시금치며 당근이며 생태 몇 마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장사가 안 된다며 하나 둘 문을 닫더니 이제는 눈을 닦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대형마트들이 생겨나 대량구입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마트를 가려면 차를 가져가야 한다. 한데 아버지 어머니는 차가 없다. 운전은 엄두도 못 낸다. 버스로 이동을 할 수 있다지만 무거운 것을 들고 오기에는 버겁다.

   
 

80 노인네의 삶은 고달프다. 그제야 내 아버지 어머니가 신종 보트피플이란 것을 안다. ‘구매 난민’이다. 유통구조의 변화가 오면서 생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언제 부터인가 대형 마트들이 한둘 들어서더니 골목 상권을 집어 삼켰다.

‘앞에 있던 가게가 또 없어졌다.’

어머니의 넋두리를 예사로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숨 섞인 말 속에 어머니의 절망이 있고 분노가 있었다. 신경망이 사라졌다. 사회가 온통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는 듯하다. 들려오는 뉴스마저 불안하다.

독거노인 130만 명 시대, ‘고독사(孤獨死)’가 늘고 있단다. 5시간에 1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단다. 이전에는 나와 상관없는 듯 곁귀로 듣던 뉴스에 자꾸만 가슴이 서늘해진다. ‘죽은 지 사흘만에 시체로 발견’ ‘가족들 발길 끓은 지 오래’

핵가족화·고령화·미혼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람 곁에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 곁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며 외로움이다. 노인이 되면 사회적 고립감이 커진다. 단절의 아픔이 있다. 거기다 먹는 문제로 서러워진다.

오래 전, 아내가 썼던 편지를 떠올린다.

자식들 좋아하는 먹거리 장만하며 그리움 삭이고, 고구마랑, 토란대, 마늘, 콩, 옥수수, 미역 등으로 광이 점점 차오르고 냉동실에 장어랑 조개, 새우, 아나고, 숭어회 등이 넘쳐날 즈음이면 보따리 여물게 싸서 자식들 집 찾아와 ‘쌀 덴 많은데 펴놓으면 아무것도 아니여’라고 쑥스러워하시며 한 켠에 접어두었던 그리움과 함께 풀어놓았죠. 그 푸짐한 고향의 맛에 머리 맞대고 한 끼 밥 맛있게 후딱 먹어치우는 자식들 보는 재미로 다가올 헤어짐의 시간들을 견뎌내는 거죠.

매운 냄새에 몇 번이고 눈물을 닦아가면서 그 어머니의 사랑, 여자의 사랑이 대를 이어가며, 대상을 달리 해가며 재현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배추김치를 벌써 4번째 실패했는데 어제는 요리책 펴놓고 ‘하나님, 남편 와서 한 끼라도 맛있게 먹고 가도록 이번에는 성공하게 해주세요’ 기도까지 해가며 담궜는데 그 덕분인지 준이가 익지도 않은 생김치를 ‘와, 엄마 최고로 맛있다’ 칭찬해가며 갈비찜이랑 두 그릇 후딱 비우더라구요. 저장하고 풀어놓을 먹거리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을 요리에 담아내는 건 잦은 헤어짐과 만남의 길을 걸어왔던 한 여성이 다음 세대에 물려준 본능적인 생존 방식인거죠.

그냥 어머님 생각하고 당신 생각했어요. 만날 그날까지 건강 조심하시구요. 사랑해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긴다. 차를 내몬다. 보트피플을 구조하러 가야 한다.

송길원목사 happyhome10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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