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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세이연>, 정통 삼위일체관을 가졌는가?(2)

기사승인 2019.01.22  18: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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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관은 이단적 삼위일체관이다.

진용식 목사(세계한인기독교 이단대책연합회 회장)

   
▲ 진용식 목사

<미주 세이연>은 필자를 이단으로 하려다가 자신들이 이단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미주 세이연>이 필자의 삼위일체관이 양태론적이라고 하여 이단으로 하였던 그 주장을 살펴보면 이단성은 필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들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남 잡이 제 잡이”란 속담이 생각난다. 비록 같은 이단연구가들끼리 이렇게 싸우는 것이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결국 진실과 진리가 밝혀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로를 삼으며 글을 쓴다. 앞의 글에 이어서 쓰는 글이지만 번호를 바꾸어서 사용하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1.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는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이단적 삼위일체관이다.

<미주 세이연>이 필자를 양태론자라고 한 핵심은 필자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들은 위의 반론(2018년 12월 28일)에서 만일 “예수가 여호와다”라고 한다면 양태론적 삼위일체로서 이 말도 “성부 수난설”을 만들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어떤 정통신학자에게서도 지원 받을 수 없는 <미주 세이연>만의 무지한 주장이다. 한국교회가 믿을 수 있는 신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이 한 결 같이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다시 신학자들의 판단을 재확인해보자.

<장로교 신학회>의 이승구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교수들은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칭했다고 하는 것으로 어떤 이가 이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장로교 신학회, 10월 15일 답변서)라고 하였다. <총신대> 서철원 교수 역시 “신학을 바로 이해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여호와로 현현하셨다고 해서 양태론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10월 29일 답변서)라고 하였다. 전 <총신대> 권성수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11월2일 답변서)라고 하였다. <총신대> 김길성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다’라고 말하거나 기술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양태론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11월5일 답변서)라고 못을 박았다.

이승구, 서철원, 권성수, 김길성 등 교수들의 견해가 맞다면 <미주 세이연>은 잘못된 것이고, <미주 세이연>의 주장이 맞다면 이 모든 교수들 역시 양태론 이단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신학자도 <미주 세이연>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미주 세이연>은 이 부분에 대하여 학자들, 특히 삼위일체 전공 학자들에게 상담을 받아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무엇이 <미주 세이연>으로 이렇게 이단 사상을 가지고도 남을 이단으로 정죄하게 하는 용기(?)를 가지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2. <미주 세이연>여호와는 성부 하나님만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다.

<미주 세이연>의 11명의 상임위원들이 오해하고 있는 가장 큰 신학적 오류는 ‘여호와’라는 명칭이 성부 하나님만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는 신격의 명칭으로 삼위 하나님께 다 적용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성부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명칭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는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으로, 그것을 위 반론에서 재차 확인하여 주었다. “예수님은 신적존재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아니시다.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이름이기 때문이다.”(미주 세이연 12월 18일 반박문)라고 하였다. 이 주장은 여호와의 증인의 핵심 교리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을 보자. “우리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성경에서 성부 외에 그 누구에게도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 있게 주장한다 … 이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길은 신약 저자들이 구약에서 많이 인용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신약저자들이 구약으로부터 여호와라는 단어를 예수에게 적용해서 한 구절이라도 인용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워치타워 성서 책자협회,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의 여호와의 증인, p.22)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과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다르지 않다.

그러면 정통 신학자들의 주장은 어떤가? 한결같이 ‘여호와’라는 이름이 예수님에게 적용 된다고 말하고 있다. 칼빈은 말하기를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신격에 관한 자존하시는 분이되기 때문이다.”(생명의 말씀사, 기독교강요 상권, p.241)라고 하였다. 박형룡 박사도 분명하게 말하였다. 성자에게 신적 명칭들을 적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이라 칭한다.(렘23:5,6; 욜2:32; 사9:6; 40:3; 참고▶행2:21; 딤전3:16)”(박형룡 박사, 조직신학2권, p.240) 벌코프 역시 “성경은 신적인 호칭들을 그에게 적용하고 있다.(사9:6, 40:3, 렘23:5-6, 욜2:32: 비교, 행2:21)”(벌코프,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조직신학 p.293)라고 하여 ‘여호와’가 성부 하나님만의 명칭이 아니라 성자에게도 사용하는 명칭이라고 하였다. 즉 예수님에게 ‘여호와’라는 호칭을 적용하고 있다.

3. <미주 세이연>은 성령은 여호와하나님이 아니라고 한 점이 잘못이다.

<미주 세이연>은 ‘여호와’란 이름은 성부 하나님에게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다 보니 자연히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고 나아가 ‘성령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미주 세이연>은 첫 번째 보고서에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시다.”(9월 20일 보고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번 위 반박문에서는 “예수님께나 성령께 스스로 있는 자로 말하는 성경구절은 없다.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한다면 성령도 여호와라고 할 수 있는가?”(12월 28일 보고서)라고 하여, 성령님을 ‘여호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저들의 확고한 주장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바른 삼위일체 관으로 보면 ‘여호와’라는 신적 명칭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 똑같이 적용됨으로 당연히 성령을 ‘여호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성령이야 말로 참되신 여호와라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기독교강요 상권. p.228)라고 하였다. 벌코프도 성령에게 ‘여호와’ 라는 호칭이 부여되었다고 하였다. “신적 호칭들이 그에게 부여되고 있다.(출17:7<비교, 히3:7,9>)”(벌코프, 조직신학, p.296)고 하였다.

4. <미주 세이연>여호와란 이름이 단수이기 때문에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만을 말한다는 주장이 잘못이다.

<미주 세이연>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실 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혹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로 표현하면서 일인칭 단수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엘로힘)은 복수 형태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호와는 복수 형태가 없다. 여호와는 고유명사요 여호와이신 성부 하나님 자신이 ‘나는’ ‘내가’ ‘나를’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신다. 여기에 ‘나’를 이란 말에 예수님을 가져다 붙일 수 있을까? 예수님은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흔적이 성경에는 없다.”(12월 28일 세이연 반박문)라고 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엘로힘)은 ‘복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도 해당 되지만 ‘여호와’는 단수로 되어 있어서 성부 하나님께만 해당 된다는 것이다. 즉 ‘단수형 이름은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며 복수형 이름은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다.’라는 것이 저들의 주장이다. 그러면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복수 ‘엘로힘’과 단수 ‘엘’의 경우는 어떠한가? 역시 복수만 예수님이라는 주장이 가능한가? 이 삼위일체관은 성경도 모르고 교리도 모르는 무지한 말이란 점을 두 가지로 답변하겠다.

첫째, 복수형만 예수님에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단수형도 예수님에게 사용 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복수형은 ‘엘로힘’이고, 단수형은 ‘엘’인데, <미주 세이연>의 주장대로라면, 복수형 하나님(엘로힘)은 복수이니 삼위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되고, 단수형 하나님(엘)은 성부 하나님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단수형 하나님 ‘엘’은 구약에 약 240여회나 사용되었다. ‘엘’이라는 단어는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도 사용된 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사야 9:6의 성구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 본문의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단수형 하나님(엘)이다. 단수 하나님(엘)이 예수님에게 사용된 것이다. 단수형 하나님의 이름은 성부 하나님이라는 저들의 주장이 엉터리이다.

둘째, 성경은 복수형 하나님(엘로힘)을 ‘여호와’라고 하였다.

<미주 세이연>은 복수형 이름인 하나님(엘로힘)이 예수님에게 해당되는 이름이라고 하였는데, 성경은 복수형 하나님(엘로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였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

출애굽기 3:15은 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엘로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엘로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엘로힘), 이삭의 하나님(엘로힘), 야곱의 하나님(엘로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5)

<미주 세이연>은 복수형 하나님(엘로힘)은 예수님에게 해당되는 이름이라고 하였지만, 성경은 이 ‘엘로힘’을 ‘여호와’라고 하였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엘로힘) 여호와’라고 호칭 한 곳이 무려 700곳이 넘는다. ‘엘로힘’이 ‘여호와’라면 당연히 예수님도 여호와란 말이다. 예수님도 ‘엘로힘’이시지만 또한 여호와이시다.

5. <미주 세이연>은 칼빈까지 양태론자로 만들고 말았다.

<미주 세이연>의 몇 분 상임위원은 과거에 누구를 이단으로 규정할 때, 양태론자로 규정하기를 즐겨하였다. 즉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하면 양태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장로교 신학회>의 학자들까지도 양태론라고 하는 망령된(?) 주장을 하고 만 것이다. <미주 세이연>은 "한국장로교신학회에서 답변으로 보냈다는 글 가운데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그 말은 구약에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다면 신약에서는 예수로 나타났다면 이 말은 그렇다면 양태론이 아닌가? 이것은 누구의 사상인가? 개혁주의 신학자의 사상인가? 진짜 한국장로교신학회의 답변인지 궁금하고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박문)라고 하였다. <한국 장로교 신학회>는 총신, 합신 고신 등 장로교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그 임원진은 고문(이종윤, 오덕교, 이상규, 김성봉, 이승구), 회장(안명준), 부회장(최윤배, 이은선, 박용규, 연규홍, 박응규, 안상혁), 총무(김요섭), 협동총무(권오윤, 장세훈, 우병훈), 서기(박태수), 회계(박성환), 감사(김성욱, 이성호) 등이다. <장로교 신학회>의 답변서는 필자가 이 신학회에 질의서를 보내어 받은 것이다. 이 답변은 장로교 신학회의 전체 의견이며, 필자에 대한 <미주 세이연> 보고서를 쓴 것으로 알려진 박형택 목사가 소속된 합신의 이승구 교수가 필자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미주 세이연>의 주장이 맞다면 <장로교 신학회> 전체 교수들이 양태론이 되고 특히 합신의 이승구 교수도 양태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로교 신학회>의 답변서는 칼빈의 주장을 인용하여 대답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불렸다’(Institutes, 1. 14. 11)고 말하며, 여러 구약의 구절을 인용한 후에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여호와라는 결론이 이끌려 진다’(Institutes, 3. 14. 13)고 합니다. 성령님에 대해서도 그러므로 성령님은 선지자들에게 말을 불러 주신 참된 여호와라는 결론이 이끌려 나온다고 합니다(Institutes, 1. 14. 15).”(장로교 신학회, 10월 15일 답변서)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하는 주장은 결국 칼빈의 주장이다. <미주 세이연>은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는데 바로 칼빈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미주 세이연>은 칼빈을 양태론자이며 성부수난설을 주장한 이단으로 만들고 만 격이다.

누가 칼빈이나 장로교 신학회를 양태론 이단이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미주 세이연>이 이단이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하는 것은 모든 개혁 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나 <미주 세이연>은 “만일 ‘예수가 여호와다’라고 한다면 양태론적 삼위일체로서 이 말도 ‘성부수난설’을 만들게 된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박문)라고 용감하게(?) 주장하고 말아, 이제 회개를 하든, 그래도 주장하고 이단이 되든 다른 길이 없다. 다음 학자들의 의견도 필자와 동일하다.

1) 서철원 교수의 주장도 같다.

서 교수는 “그리스도도 자기가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히기 위해 여호와의 희랍어 역인(에고 에미),나는 있다’는 이름으로 자기가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밝히셨다.(서철원, 교의신학2, p.41)라고 하였고, "주 예수는 주(퀴리오스)로서 구약의 여호와와 동등, 동일자임을 지시한다.”(서철원, 교의신학2, p.41)고 하였다.

2) 권성수 교수의 주장도 같다.

권성수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권성수, 11월2일 답변서)고 밝혔다.

3) 김길성 교수의 주장도 같다.

김길성 교수도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만군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의 인용(롬 9:32, 33)에서 믿음의 주 ‘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의 예들은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여호와’ 명칭이 신약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있다고 하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김길성, 10월 22일 답변서)라고 하였다.

<미주 세이연>이 이단적인가, 서철원교수, 권성수교수, 김길성교수, 이승구 교수 등이 이단인가?

6.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 사상을 왜 이단적 사상으로 볼 수밖에 없는가?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보고서와 이어서 두 번 발표한 반론 글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여 스스로 이단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이제 <미주 세이연>의 주장이 왜 이단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자.

1).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이 자존자임을 부인하는 이단설이다.
<미주 세이연>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여호와’이심을 부인함으로 예수님의 ‘자존성’을 부인하였는데, 이번 반론에서도 그것이 더 확실해졌다. 예수님이 ‘자존자’가 아니라면 피조물이라는 말이 된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 교리이다. 예수님을 자존자가 아니라고 하는 <미주 세이연>의 주장을 다시 확인해 보자. 성경에는 예수가 여호와로서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는 내용이 없다. 진용식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3) ‘성부께서는 아무에게서도 출생하셨거나 나오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출생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는 내용을 고쳐야 할 것이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박문)라고 하였다.

성자는 성부에게 출생했다고 했으니 ‘자존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성자의 출생을 인간 출생과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은 ‘자존자’가 아닌 하나님이 된 것이다. 분명한 이단설이다. ‘성자께서 성부에게서 출생하셨다는 것을 인간의 출생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신학의 문외한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리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는 성자께서 출생하셨다고 할 때 “영원히 출생하셨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성부가 먼저이고 성자가 나중이라고 시간 적인 차이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칼빈은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또한 영원에 있어서는 ‘먼저’니 ‘나중’이니 하는 것을 찾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성부의 영원성은 또한 성자의 영원성이기도 하다.”(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32)라고 하였고, 이어서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신격에 관한 자존하시는 분이되기 때문이다.”(생명의 말씀사, 기독교강요 상권, p.241)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칼빈은 “성부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부가 될 수 없으며 성자 또한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격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존 하신다고 우리는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존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이요”(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47)라고 한 점을 보면 더 선명하다. 예수님은 ‘자존자’이시다.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도 자기가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히기 위해 여호와의 희랍어 역인(에고 에미), 나는 있다’는 이름으로 자기가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밝히셨다.(서철원, 교의신학2, p 41)라고 하여 예수님이 ‘자존 자’이심을 말하였다. 권성수 교수는 “여호와는 신약시대에는 자존자 이시면서 언약대로 지키시되 때가 되매 사람으로 오셔서 성육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작업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신약으로 넘어오면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대구 동신교회 홈피, 2006년 2월 5일 주일설교)라고 하였다.

이렇게 모든 신학자들이 예수님을 ‘자존자’라고 하는 데도 <미주 세이연>은 <여호와의 증인>처럼 이를 부인하고 있다.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의 자존성을 부인하기 위해 요한복음 5:58의 말씀을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다.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느니라”(πρ ὶ ν Ἀ βρα ὰ μ γε ν έ σ θαι ἐ γ ὼ ε ἰ μ ί )고 말씀하셨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선재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은 아니다. 예수님께나 성령께 스스로 있는 자로 말하는 성경구절은 없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보고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같은 구절에 대한 박형룡 박사의 주장은 완전히 다르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5:58)라고 하신 말씀은 그의 존재의 근거가 그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추론하며 또 광야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을(영원부터) 스스로 있는 자’(3:14)로 알리신 이름 여호와를 회상하는 진술이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여기서 모세 때 이후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알려진 그 이름을 자신에게 적용하신 것이다”(박형룡, 조직신학 4권. p.51)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직접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같은 본문에 대한 박형룡 박사와 <미주 세이연>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박형룡 박사의 말이 옳다면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이단이란 말이고, <미주 세이연>이 옳다면 박형룡 교수가 이단이란 말이 되었다. 이래도 예수님의 ‘자존성’을 부인하는 <미주 세이연> 주장은 이단설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2).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설이다.
예수님의 자존성을 부인하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결국 예수님의 신성까지 부인하는 이단설이 되고 말았다. 확인해 보자 “여호와는 고유명사요 여호와이신 성부 하나님 자신이 ‘나는’ ‘내가’ ‘나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신다. 여기에 ‘나’를 이란 말에 예수님을 가져다 붙일 수 있을까? 예수님은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흔적이 성경에는 없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박문)고 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라고 했을 때 성부하나님 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자 예수님은 해당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여호와 나’라는 성경 구절을 확인 해 보자.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사 45:5)

<미주 세이연>의 주장대로 해석하면 성부 하나님만 신이란 말이 된다. 결국 “나(여호와) 밖에 신이 없느니라”는 말은 곧 성부 하나님만 신(하나님)이요, 예수님도 성령님도 신(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저들은 필자를 양태론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관이 양태론적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으니라”라고 할 때, ‘나’는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이신 여호와만 신(하나님)이란 말로서, <미주 세이연>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만 신(하나님)이란 말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과 성령님은 신(하나님)이 아니란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나 여호와’ 라고 할 때 성부하나님께만 적용된다고 하는 이 사상은 칼빈 당시의 이단이었던 세르베투스의 ‘반 삼위일체론’이었다.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 이러한 세르베투스의 이단설을 반박하면서 만일 저들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4:6)고 한 이사야의 말을 다만 성부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이 증거로서 저들을 반박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그리스도께 속하기 때문이다.”(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44)라고 하였다. 반 삼위일체론을 주장했던 이단 세르베투스는 ‘여호와 나 외에’라는 말에 대하여 성부에게만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 받았고 칼빈도 그를 이단이라고 비판하였다. <미주 세이연>은 “여호와는 고유명사요 여호와이신 성부 하나님 자신이 ‘나는’ ‘내 가’ ‘나를’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신다. 여기에 ‘나’를 이란 말에 예수님을 가져다 붙일 수 있을까?”(미주세이연, 12월 28일 반박문)라고 하였다. 결국 세르베투스의 이단설과 같은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3).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부인하는 이단설이다.
‘여호와 나 외에’를 성부 하나님께만 적용 시키는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예수님의 ‘자존 자’ 되심을 부인하고,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할 뿐 아니라, 결국 예수님의 ‘구원 자’ 되심도 부인하는 이단설이다. 성경에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고 하였다. 이 구절이 성부에게만 해당 된다고 한다면 성부 하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말이 되고 만다. 성경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라고 하였다. ‘예수’라는 이름도 ‘구원자’란 뜻이다.

4).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이 창조주이심을 부인하는 이단설이다.
예수님의 자존성을 부인하고 ‘여호와’ 되심을 부인하는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따라서 예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 되었다. 예수님이 ‘자존자’(여호와)가 아니고는 창조주가 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미주 세이연>과 같은 사상을 가진 세르베투스에 대하여 칼빈은 “그러나 만물을 존재케 하신 창조주가 어떻게 자존하지 않으시고 또 자신의 본질을 타자로부터 빌어 올수가 있겠는가? 왜냐하면, 성자가 자신의 본질을 성부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성자의 ‘자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를 반대하고, 성자에게 여호와라는 명칭을 부여한다.”(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41)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성자가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예수님의 여호와 되심과, 그 자존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의 창조주 되심도 부인하는 것이 된다.

5).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이 예배의 대상임을 부정하는 이단설이다.
기독교의 예배의 대상은 삼위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그러나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성부 하나님만 예배의 대상이 되고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되고 만다. 성경에 분명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신 5:6-7)고 하였다. 이 말씀은 예배의 대상에 대한 말씀이다. 위의 말씀이 <미주 세이연>의 주장처럼 성부 하나님께만 해당된다면 ‘여호와’가 아닌 성자와 성령은 예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은 예배의 대상을 성부에게만 국한 시키고 있는 것이다. 칼빈도 이단자 세르베투스에 대하여 반박하기를 “그러므로 신격에 대하여 언급될 때에는, 언제나 참된 하나님의 명칭이 마치 성부에게만 속하거나 하는 것처럼 성부와 성자 사이에 어떤 대립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분명히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셨으며(사6:1) 이 하나님을 가리켜 요한은 그리스도라고 단정하였기 때문이다.”(요12:41)(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40)라고 하였다.

결론 : <미주 세이연>은 회개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필자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때때로, 이번 논쟁을 하면서는 더욱, 여러 개혁신학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미주 세이연> 11명의 상임위원들도 신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빨리 깨닫고 회개하기 바란다. 거짓과 교만을 버리면 회개가 쉬울 것이다.

진용식 목사 jin-bib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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