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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 목사 컬럼] 아! '한 지붕 세 교회'라니...

기사승인 2019.02.07  14: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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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 목사 / 세종벧엘교회 담임, 메종드블루컨벤션회장

   
▲ 김재헌 목사

혹자는 김포공항에서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보면 서울하늘은 십자가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을 부흥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십자가 공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도권에서 가장 교회 밀집도가 높은 곳이 부천이라고 한다. 30m에 한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대략 한국교회의 목회자의 총 숫자는 3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5천만 인구라고 본다면, 166명당 한 명의 목사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민 모두가 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한 한 분의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의 출석인원은 갓난아기 포함해서 160명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재교회는 대략 10만개 정도, 그렇다면 인구 500명당 한 개의 교회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한국교회의 기독교인 비율이 20%라 친다면, 대부분의 교회가 100명 미만인 미자립교회라는 말이 된다.

필자의 교회 역시 지난 10년간 미자립교회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30-40평의 상가에 세를 얻어 목회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미자립 신세다. 더 문제는 편의점 숫자보다 더 교회가 많다는 점이다. 한 동네에 편의점은 3개 정도인데, 교회는 교파별로 하나씩 들어오다보니 10개가 넘는다.

   
반경 10m안에 4개의 교회가 있었던 세종시 아름동 전경

2013년 1월 경, 세종에서 생애 세 번째 개척을 했다. 마지막 개척이라는 심정으로 남은 여생은 세종시에서 복음전하며 죽으리라는 생각으로 개척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이 너무 많았다. 개척을 하고 6개월이 되었을 무렵, 3층에 자리한 우리 교회 바로 밑에 한 개의 교회가 또 들어왔다. 서울 수도권에서 한 지붕 두 교회라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아직 도시도 형성되지 않은 곳에 ‘한 지붕 두 교회’라니.

누군가는 양보하고 포기해야 될 상황이었다. 다행이 나보나 젊은 목회자였고 건전교단 목사였다. 나는 그와 타협을 했다. 1년 안에 좋은 길로 가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다. 하지만 그 합의는 젊은 목사의 혈기로 깨어졌고, 상처만 남긴 채, 필자는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였다. 원래 있던 그 지역에는 공주에 있는 한 대형교회가 지교회를 건축하여 교인의 쏠림현상이 일어나 문닫는 교회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2014년 세종시의 두 번째 마을이 입주하고 많은 교회들이 또 개척되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인테리어를 하고 교회를 개척한지 한 달 뒤 4층 바로 밑 3층에 또 교회가 들어왔다. 이번엔 노회는 달라도 같은 교단 목사가 들어 온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런 사이에 또 한 곳에 교육관을 빌렸는데, 7층 건물의 7층에 있는 태권도장을 토요일과 주일만 쓰기로 하고 빌렸는데, 4층에 있는 정형외과에서 주일예배를 드린단다. 그리고 7층 태권도장까지 쓰겠다고 관장을 회유했나보다.

언제부터 교회가 교회를 질시하고 교회와 교회가 다투게 되었는가? 그리스도(?)와 기독(?)이 다투게 되었는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양 저 모양이라도 전파되는 것은 복음이니, 마음을 접고 또 한 번 이동을 결심을 하고 50m 떨어진 상가로 이사를 했다.

그로부터 3달 뒤, 이번엔 아래층도 아닌 옆 방에 교회가 이사 온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아무리 목회 윤리가 무너졌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어, 이사 온 옆방 목사랑 실갱이를 벌였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교회가 욕먹는 것입니다.” 그 단호한 말을 믿고 참았지만, “기도하는 목사님 한테 안수 받아 보니 이사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 한 마디 말을 끝으로 그는 옆방으로 이사를 왔다. 새벽마다 예배마다 우리보다 더 크게 앰프를 켜놓고 찬송을 부르고 마이크를 입에 갔다 대 놓고 새벽기도를 하는 난감한 모습을 연출하다, 하는 수 없이 손을 먼저 나왔다.

마침, 세종시에서 개척하고자 하는 공주에서 온 목사님이 있어. 월세를 6개월을 내어드리고 남은 계약기간을 사용하라고 교회의 문을 닫았다. 교회의 문을 닫는 날 나는 새로오는 목사님을 마지막 예배에 초청하여 인사를 시켰다.

“자! 앞으로 우리교회 자리에서 새롭게 목회를 하실 귀한 목사남이십니다. 저는 오창에서부터 10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지치고 지쳐서 안식년을 가져야 할 거 같습니다. 지금 제 몸엔 이상 징후가 생겼습니다. 교회 이름은 바뀌고 교단은 바뀌지만 주님은 한 분이십니다. 앞으로 신앙생활 잘 하십시요!”

그리고 나 보다는 조금 열심히 있는 그분께 교회를 맡기고 얼마 후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다. 위를 3분의 2를 절제하고도 다행히 예후(豫後)가 좋아 3년 만에 다시 목회를 하고 있다.

앞으로 세종시에서의 마지막 목회는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세종시 신도심 안에는 100개가 넘는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산재해 있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지(支)교회 형태로 지어 들어오는 대형교회들이 신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100개가 넘는 상가 개척교회들은 신도가 많아야 30명 내외다. 개척교회 신자들 대부분은 충성도가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마음이 상처받아 요동이 심하다. 그러한 연약한 성도들을 섬기느라 작은교회 목회자들은 자녀교육 문제와 함께 이중삼중의 고초를 겪는다. 여기에 보태어 작은 교회들끼리 생존을 위한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고 있다. 오늘의 이 사태를 만든 책임을 가진 교단 정치꾼들은 훗날 주님이 심판 날에 묻겠지만, 문제는 각박한 오늘의 현실이다.

몇 가지 대안을 가지고 기도해 본다. 먼저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교단, 노회 대신에 지역의 기독교연합회가 강력한 시행령을 가지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첫째가 한 마을 한 개 교단 한 개 교회의 개척을 강력 추진하는 것이다. 세종시의 경우 총 6개의 생활권역이 생긴다. 향후 2개 정도의 구로 나눠질 것이다. 한 개의 생활권엔 평균 3개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한 개의 커뮤니티에는 보통 8천에서 1만 세대의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들어온다.

따라서 한 동네당 평균 8천 세대가 들어오면서 공동체와 상권이 형성되게 되어있다. 과유불급! 뭐든지 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8천 세대 정도면 8개 정도의 교회가 들어오는 것이 적당하다. 교단별로 한 개 정도만 들어오면, 천 세대 당 한 개의 교회가 전도의 몫을 담당하면 된다. 그러면 평균 한 교회당 200가정이 영입이 된다. 200가정 400여명이 출석하면 교회는 지역에 대한 전도와 구제, 그리고 선교를 통한 열방의 구원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의 장치를 위해 현재와 같은 친목중심의 연합회가 아닌 위원회 형태의 연합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자금을 모으고, 과도한 개척을 막으며, 구조조정을 위해 교회가 없는 곳으로 개척교회를 옮겨갈 수 있도록 하는 자금까지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지교회 형태로 들어와 있는 교회들을 자제시키는 일이다. 현재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배워야 할 두 가지는 버스를 돌리지 않는 백화점을 배우는 것이고, 회사에 상관없이 거리 제한을 두기로 한 편의점에서 배우는 것이다. 또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의무 휴무를 시행하는 대형마트처럼 대형교회들이 과도한 물량중심의 확장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러한 자정능력이 보이지 않을 때,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물리적으로라도 그들을 제지하는 일일 것이다.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가? 교권을 가지고, 물량을 가지고 선의의 신앙을 가진 자들마저 억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닌가?

어느덧 세종에서 6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벧엘교회 부설 컨벤션, ‘메종드블루’는 지역 교회들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개척을 원하거나 성경공부 모임을 원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미국 교회당들을 빌려 한인 채플을 여는 방법처럼, 우리 컨벤션을 활용하기 바란다. 그리고 연합을 이루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섬기기를 원한다. 한 편으로는 미자립 개척교회 자녀들을 섬기기를 원한다. 이제 시작하지만, 그리스도가 기독이를 이기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싸이즈가 큰 교회들이 전투에서 이겼다고 여기는 순간, 대 사회적인 영적전쟁에서는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성장, 내 교회의 성장이 교회 전체의 공회성(公會性)을 깨지 않도록, 이 한 몸 던져 싸워볼 것이다. 구정! 다시 한 번 주님의 무한한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김재헌 목사 missionc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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