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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타락하는 7가지 원인과 대책

기사승인 2019.02.21  15: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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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 전후의 필수적인 자세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지도자들의 타락이 요즘 흔해 빠진 뉴스나 가십의 하나가 돼버렸다. 지난 몇 주 동안에도 세계 교계의 여러 지도자들이 쓰러졌다. 또 수시로 넘어지고 또 넘어갈 것이다.

   
제임스 맥도날드 목사. 부적절한 말 때문에 하베스트 교회 담임목사직에서 해임됐다

영어의 fall과 fallen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묘하다. '쓰러지다', '넘어지다', '떨어지다' 등과 더불어 '유혹에 넘어가다'나 '타락하다'는 뜻도 있다. 'Fallen'의 범주에 일단 들어가 버리면 다시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말만의 회개로는 fallen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전에 fall하지 않도록 적극 삼가거나 조심하는 길밖엔 없다.

제임스 맥도날드 목사(말씀 속에 걷기=Walk in the Word, WIW 대표)는 최근 듣기 어려운 목청이 됐다. Fallen의 범주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를 기해 쉐인 아이들먼(웨스트사이드크리스천펠로십교회=WCF 지도목사)이 '지도자들이 넘어지는 7가지 원인'이라는 글을 썼다. 이를 간추려 본다.

(제임스 맥도날드의 넘어짐에) 실망했지만, 내 믿음이 흔들리진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반석만 나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목사는 이제 해야 할 옳은 것을 하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다시 우리 모두의 모범이 되길.

지도자들이 왜 넘어지는가? 모든 신자들이 넘어짐과 같은 원인 탓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유혹받는다. 담대한 목회자는 동시에 교만해지기가 쉽다. 그런 A형(Type A) 개성은 길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죄가 생성되지 않게 일깨어야 한다(야고보서 1:14-15). 죄는 평생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우리가 그것을 먹이거나 굶기기에 따라 자라거나 시들어버리는 사이클 말이다.

청교도 저술가 존 오웬(John Owen)은 "죄를 죽이고 있어라. 안 그러면 죄가 당신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귀는 새로운 꾀를 쓰기보다 늘 같은 트릭을 반복한다. 그게 효과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마귀가 늘 사용하는 지도자 타락의 7가지 원인을 찾아보자.

1. "나라면 그런 실수는 안 해"

고린도전서 10:12은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해준다. 잠언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일러준다. 교만은 "나, 간음한 적 없어.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속삭인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버텨왔어. 하지만 실족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고백한다. 바울은 내가 약할 때 강하다(고후 12:10)고 선언한다.

교만은 타협과 어리석은 결정 쪽으로 문을 열어준다. 굳은 확신을 간과한다. 확신은 늘 머리통에 해머 같진 않다. 마음 귀 앞에 세미한 작은 소리일 수 있다. 슬프게도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길이)참으심을 오히려 승인으로 착각한다. 스퍼전은 말한다. "우리가 겸손하다고 생각할 때 교만해질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내가 그러기엔 너무 바빠"

우리는 모두 사역을 첫째, 하나님을 둘째로 삼기 쉽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모시는 기도생활의 습관을 일구기엔 너무도 일에 바쁘다면 우리는 정말 너무 바쁜 것이다. 기도를 더 잘 하면 더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너무 바쁘다. 바운스(E.M. Bounds)는 "믿음이 기도하길 그치면, 삶도 그친다"라고 경고했다. 늘 무릎을 꿇고 살면, 넘어질 것도 별로 없다. 말씀과 그에 대한 순종 속에 늘 지내면서 상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의 삶 속에는 도덕적 나락이나 영적인 남용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약 1:22). 지도자가 타락할 때, 십중팔구는 의미있는 기도 생활이나 경건 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3. 성결을 타협하게 될 수 있다.

원수는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표준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침대에서 수시로 굴러 떨어지는 소년이 "제가 왜 자꾸 이럴까요?"라고 엄마에게 여쭸다. 엄마는 "충분히 안쪽에 눕지 않기 때문이란다"라고 대답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다수가 유혹받아 죄짓는 이유는 성결을 통한 보호가 보장되는 하나님의 안전지대 안에 충분히 깊이 들어가 지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잭 와츠(찬송가 작가)는 말한다. "참된 기독교가 마음을 지배하면, 삶 속에서 순결로 나타나게 돼 있다."

성경에 그려진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 중 거룩함은 가장 흔히 나타난다. 성결은 원수의 공격을 막는 가장 치명적인 방어무기다(엡 6:14). 그러나 성결은 율법주의가 아닌 상한 마음과 겸손으로부터 와야 한다. 성결을 낮잡아 보다간 도덕성이 으레 망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기보다 타협해 버린다. 슬프게도 홀리스피릿(성령)보다 할리우드가 더 영향을 끼친다. 한 주 내내 어둠으로 마음을 채웠다가 주일날만 그리스도의 광채를 바랄 순 없지 않겠는가?

4. 이성과의 불건전한 관계가 다반사이다.

우리 모두 이 분야에 특별한 경각심과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마귀는 상담 약속을 핑계댄 둘만의 만남, 오피스에서의 비밀, 사적인 친교 등에서 비롯된 도덕적 나락으로 오는 고통과 후회의 나날을 좀체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 단지 "상대방을 도울 뿐"이라는 변명, 거짓된 자유의식과 보장 없는 '안전감'을 갖게 한다.

기혼자로서 이성에게 매료되거나 그럴 만한 잠재성이 있다면, 얼른 그 환경을 벗어나라. 간통은 작은 타협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함정에 마구 빠져드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타협과 잘못된 선택으로 점점 빠져들다 보면 바닥을 치기란 쉽다. 성적 욕망과 싸우기보다, 욕망을 갖고 노닥거리지 말아야 한다(참고: 고전 6:18).

5. 우리는 흔히 약점을 강화하지 못한다.

그밖에도 우리는 알코올과 도박, 과식 등의 유혹을 받는다. 이 모두에 우리는 높은 경계 담을 쌓아야 옳다. 원수는 그런 기회를 하나님께로부터 멀리하도록 적절히 악용한다. 우리가 그 선을 넘었는지조차 분명치 않게 경계선이 얄팍하다.

마약와 섹스의 유혹, 알코올이나 진통제 탐닉, 분노와 부부 다툼 등등 그런 것들이 원수의 공격의 '호기'가 되기 일쑤다. 이런 것들을 회개로 노출시켜 안전망과 책임성을 재강화해야 옳다. 사전경계가 곧 사전무장이다. 우울과 스트레스, 걱정도 역시 우리를 해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안전망도 필요하다.

6. 책임감은 흔히 침해 또는 최소화된다.

책임의식은 안전망의 하나이지만, '방탄용'은 못 된다. 남에게 "내 대신 책임져 주라"고 할 만큼 '레알'하지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높여 존중하는 데 마음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책임감은 단지, 죄와의 싸움에서 안전 레벨을 한 단계 높여주는 구실 정도를 한다. 우리가 믿는 대상자에겐 "제가 이 부분에서 씨름하고 있는데요. 기도 좀 해 주실래요? 때때로 센 질문을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건강하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속아지내는 것을 원수는 되레 사랑한다. 반면, 당신의 갑옷에 벌어진 틈새는 남들이 지켜보고 지적해주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내게는, 내가 방문한 모든 웹사이트를 아내에게 이메일로 일일이 보고해 주는 안전빵 소프트웨어가 있다. 겉보기엔 아무리 순진해 뵈는 사이트도 의식적으로 조심하게 해주는 일종의 억제제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원수가 훔치고 빼앗고 죽이고 파괴하는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영적으로, 재정적으로, 관계적으로 우리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에 대한 책임감도 커져야 맞다.

7. 외로움을 핑계로 댈 수 있다.

사역은 어렵고도 엉뚱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부여받은 권리는 흔히,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는 단초가 되곤 한다. 우리는, '재미난 모든 것'을 즐기는 남을 질투하거나 단죄하기가 쉽다. 오즈월드 체임버스는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남녀들을 하찮은 일 무더기 속에 묻어버리시곤, 묘비조차 세우시지 않는다. 그들이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보여선 안 될 장소에 가 있기 때문에 간과하신다."

누가복음 17:10은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 위에 우러나는 감사는 지으려던 죄도 잠재울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분을 섬기고, 그 분의 진리를 선포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나락의 절벽 가장자리에 섰거나 이미 나락했다면 지금 짬을 내어 회개하라. 물론 상처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회개의 열매의 기쁨은 노출의 아픔을 훨씬 능가한다(민수기 32:23). 뉘우침의 사람은 죄로부터 떠날 줄 안다. 남을 비난하거나 원망하거나 쓴 뿌리를 품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조건이나 따짐이 없는 용서를 구하게 된다.

회개가 순수하면 '하지만'이란 게 없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십시오"가 치유의 말이 되고 회개의 표지(signs)가 된다. 치유가 있기 전, 변명은 삼가라.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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