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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무죄석방된 이의 고백 "모두가 복!"

기사승인 2019.02.27  1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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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중서 신학학위 취득..수백억 배상도

   
39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난 현재의 콜리 씨. 재소중 신학 학위를 취득한 억척 인생이다. 출처 ST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억울한 살인범 누명을 쓰고 무려 39년간 수감돼있던 크리스천에게 캘리포니아 시미밸리 시가 2,100만 달러(약235억원)를 배상했다.
크레이그 리처드 콜리(Craig Richard Coley) 씨는 2월 23일 시미밸리 시청에서 배상 통지를 받고, 자신을 구출하고 배상금까지 받도록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 감격했다. 또한 자신의 경찰관직을 잃으면서까지 28년간의 사건 추적과 노력 끝에 결국 그의 결백이 입증되도록 도와준 전직형사 마이크 벤더 씨에게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콜리 씨는 배상금에 대해 "내 나이 70이지만, 이제 전혀 새로운 시작이다"며 "이 돈이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감 당시 23세의 핸섬한 장발 청년이었던 콜리는 이젠 백발이 듬성듬성한 노인이 되었다.

콜리는 1978년 11월 11일, 시미밸리의 바이어스 스트리트에 살던 자신의 전 여친 론다 윅트와 그녀의 아들 다널드 윅트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윅트 여인은 자수용 노끈으로 목 졸려 숨졌고, 아들은 질식사한 채 침대 위에서 발견됐다. 콜리는 그날 오후 '혐의자'로 체포됐다.

   
28년간 콜리의 석방을 위해 헌신한 벤더 씨의 가족과 콜리

콜리는 자신이 한 로스앤젤레스 경찰관의 아들이자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으로, 일차 이혼한 뒤 여러 식당의 매니저로 일하다가 자신보다 한 살 연상인 웨이트리스인 윅트와 단지 한때 잠시 데이트를 한 사이였다.

체포된 뒤 2번 재판이 열렸는데, 콜리가 혐의를 받은 주된 요인은 초동수사를 한 형사의 오판과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잘못된 주배심 결과 탓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대배심은 1979년 4월 13일 10대2 표결로 그의 '살해' 혐의를 굳혔다. 이듬해인 1980년 1월 3일 열린 두 번째 재판은 그를 '유죄'로 만들었고, 2월 26일 보석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재소 기간 내내 그를 슬퍼하며 지내던 그의 양친이 모두 죽는 슬픔도 겪어야 했다.

9년이 지난 1989년, 당시 시미밸리 경찰국에 근무중이던 벤더 형사가 과거 사건기록을 보고 관심을 갖다가 수많은 의혹점들을 발견했다. 콜리의 알리바이가 거의 완전했던 것. 딴 용의자가 몇 있었건만 경찰은 전혀 추적하지 않았고, 머리털과 지문 등의 증거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 멋대로의 수사를 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체포될 당시의 콜리(당시 23세)

2년 후 벤더는 옥중의 콜리를 방문해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의 결백성을 느꼈다. 벤더는 경찰국에 자신의 소견을 알렸지만 아무 것도 실행되지 않았다. 1991년 벤더의 상관들은 그에게 콜리 건을 "상관하지 말라"며 안 그러면 정직 당할 것을 각오하라고 했다. 그래서 경찰관직을 내놓고 대신 도난사건을 추적하는 사립탐정이 됐다.

콜리의 석방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벤더는 그렇게 28년간 콜리의 자유를 위해 뛰면서 캘리포니아 주검찰, 연방수사국(FBI)과 벤추라 시 검찰과 주 대배심 등에게 호소했다. 이에 공감한 경찰은 옛 사건의 재수사에 돌입했고 당시 결정적인 증거였어야 할 콜리의 DNA가 없음을 찾아냈다.

사실 벤더는 2003년에 캘리포니아 칼스배드로 이사를 하면서 여가 시간에 콜리 사건을 재차 추적하기 시작했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5년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오피스는 사건의 공식 재조사에 동의했다.

법원은 한때 윅트 모자 살인건의 물리적 증거가 "이미 파괴되었다"고 엉뚱한 추정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데이빗 리빙스턴 경찰국장은 미제사건 담당형사에게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배당했다. 알아보니 법원 주장과는 달리 당시 증거는 그때까지 파괴되지 않고 있었다.

파괴됐으리라 추정했던 DNA 증거를 찾았고 실험에 들어갔다. 사건 당시 현장의 침대 시트와 옷가지 등에서 다른 남자의 DNA가 발견된 것. 모든 증거가 콜리의 무죄를 외치고 있었다.

마침내 브라운 주지사는 2017년 11월 추수감사절날에 콜리의 무죄를 공식 선언했다. 석방 전 벤추라 카운티 검찰의 그렉 토튼 검사는 콜리가 "사실상 무죄하다"고 선언했다. 석방 이후 콜리는 벤더 가족의 일부가 돼 있을 정도로 그 집에서 함께 살아왔다.

콜리가 수감된 39년은 캘리포니아에선 최장, 전국에선 10번째 긴 형기였다. 모질고 긴 기간을 그가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 힘의 바탕은 신앙에 있었다. 2005년께 그는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 2011년엔 옥중 성경공부 그룹을 이끌기 시작했고, 훗날 신학과 성경공부, 성경상담학 등의 학위를 몇 개 취득하기까지 했다.

"나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콜리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이 날 위해 비축해 두신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은 복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브라운 주지사는 말한다. "콜리 씨와 함께 한 신의 은총이 그를 이 억울한 긴 형기 동안 남다른 인내로 견디게 했다"고.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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