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김희건 빛 컬럼] 다리 위를 건너가는 삶

기사승인 2019.03.12  15:57:51

공유
default_news_ad1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오래 전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 사람은 다리 하나를 건너는 삶을 산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새벽 시간에도 멀리 창 밖으로 보이는 다리 위로 무수한 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람의 사는 날이 짧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된다. 우리 사는 날들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이 한편은 안도의 마음을 갖게 한다. 광야 인생길이 길면 길수록 우리들은 힘들고 먼 길을 가야 할 텐데 짧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짧은 날들을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지혜일까? 자칫 염려와 근심에 눌려 살 수도 있고, 무슨 성취를 위해 정신을 쏟고 달려갈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은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성경이 그런 삶을 가르치지 않는가?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감사하라 이는 주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 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라.”

신약이나 구약에서 가르치는 삶은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명령’으로 주어지고 있다.

   
 

즐겁게 사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진 말씀이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도둑질, 살인만 죄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삶에 실패하는 것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삶인 것을 알고 있을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고려할 것은 하나님 편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루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셨다. 그 희생의 대가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최상의 삶이어야 한다. 그 최상의 삶을 신약에서는 ‘영생’으로 부른다. 영생이란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 그 백성들이 사는 삶을 일컫는 말이다. 충만한 삶, 감사와 기쁨이 항상 넘치는 삶,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삶이 영생의 내용일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의 희생의 대가로 그 백성 된 우리가 이런 영생의 삶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신약에서 자주 듣는 복된 삶을 가리켜 ‘영생’이라 부른다. 그 영생은 믿음으로 찾고 누리게 된다(요3: 16, 5: 24, 6: 40, 47, 17: 3). 또한 우리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거룩한 삶의 열매로 누리는 삶이라 가르친다 (롬 6: 22). 이 영생에 대한 약속을 주목하면, 그러한 삶이 어떤 외형적인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고 누리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함이나 더 나은 삶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이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실 교회 안에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교인들이 있다.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그 은혜로운 찬송의 내용들이 많은 경우, 역경과 불행을 당한 이들을 통해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반대와 적대 속에서도 “평안은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옥중 서신에서 “주 안에서 기뻐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 삶은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비결은 어디 있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주목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일찍이 다윗도 고백하기를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영생은 믿음으로 사는 삶의 열매라 한다.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는 것이요, 또 그를 바라고 의지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왕이요 구원이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바라보는 삶 속에 염려와 두려움이 끼어들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 영생의 삶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런 요구와 명령 뒤에는 하나님이 치루신 비싼 대가가 있다는 것이요, 그 대가로 우리가 반드시 찾아서 누려야 할 삶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 바로, 영생의 삶이요, 감사와 즐거움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이 땅에서도 영생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만족하신다는 뜻이다. 이런 삶이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치룬 대가의 열매로 그 백성들이 항상 감사의 즐거움의 삶,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기대한다. 이런 하나님의 뜻 안에는 우리를 향한 깊은 배려가 있다. 하나님은 그 백성, 그 자녀 된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서 충만하고 복된 삶을 살기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뜻이 바로 행복하게, 밝게 사는 것 아닌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과 같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면서 웃음을 띄고 사는 것을 기대하시고 명령하신다.

능히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라는 것 아닌가?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표적이 무엇일까? 어렵고 힘든 삶의 자리에서 밝음과 즐거움으로 사는 것 아닐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울하게 눌려 산다면, 누가 그들의 삶을 따라 살려고 할까? 그것은 가정 속의 부모에게도 해당된다. 믿는 부모의 얼굴이 어두우면, 자녀들은 어디서 빛을 찾아 살 수 있을까? 어떤 분이 자녀 문제로 상담을 의뢰해 왔다. 그때 한 말은 “웃으며 사세요”였고, 그 사람이 그런 변화를 추구할 때, 자녀의 마음이 부모에게로 돌아 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길지 않은 삶의 길을 가고 있다. 어느 새 우리의 끝이 멀지 않은 곳에 보인다. 아무리 다리가 길어도 끝은 곧 다가온다. 이 길지 않은 다리를 지날 때, 우리는 어떤 마음, 어떤 표정으로 살아야 할까? 우리 얼굴에 빛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잠시 지나가는 길을 감사와 즐거움으로 보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신앙생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사는 삶이다. 이 믿음에 있어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항상 “현재 형”이러야 한다. 오늘, 이 시간 믿지 않은 것은 믿음이 아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시간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참 믿음이고, 믿음의 열매는 영생임을 분명히 약속하고 있다. 우리 삶의 여정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얼굴로 만날까? 미리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김희건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