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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행 참회하는 일본 학자의 진실

기사승인 2019.03.22  11: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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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비아돌로로사> 타카미추 미라오카 지음

<교회와신앙> 양봉식 기자 자신의 잘못을 들추는 것보다 숨기는 것은 본능적인 몸짓이다. 아담이 죄를 지은 뒤에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뒤로 숨은 것에서 시작된 인간의 몸짓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고백하는 것은 용서와 자유를 얻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의 비아돌로로사>(대한기독교서회)는 그 실제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 가운데 일어난 국가적 죄악, 그리고 그것을 숨기는 후손들, 이런 역사가 인류 가운데는 늘 있어 왔다.

그런데 <나의 비아돌로로사>는 20세기에 일어난 일본의 아시아 침략, 그리고 수탈에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국가적 죄악에 대해 해당 국가의 국민이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인 타카미츠 미라오카 씨는 성서 히브리어 문법에 관한 대작을 비롯해 히브리어 강조어법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 시리아어-아람어 문법, 사해문서 히브리어, 그리고 칠십인역 연구의 신기원을 이룬 최근의 칠십인역 헬라어 사전에 이르기까지 원어학에 특별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국가인 일본이 20세기에 아시아를 대상으로 저지른 침략과 수탈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속죄의 책임을 이행해 가는 노정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국민들에게 국가가 이웃 나라에 저지른 수치스런 죄에 대해 함구하고 또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미라오카의 책은 매우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부끄러운 수치심, 그리고 통렬함과 비참함이라는 고통을 안고, 저자는 한국,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홍콩, 대만, 중국, 보르네오, 태국 등 피해국을 방문하여 참배와 사죄, 자비량 강의를 통해 속죄와 용서를 구하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은 어쩌면 악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콰이강의 다리’라는 글에서 태평양 전쟁 말기 인도네시아와 버마 간의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해 무려 420km에 달하는 철도와 교량 건설에 불법적으로 동원된 포로들과 민간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일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안전 보장도 없는 건설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전쟁포로 6만과 민간인 20만 명이 동원된 이 공사에서 영양실조와 중노동, 전염병, 추락, 폭발물 사고 등으로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시신도 수습되지 않고 명부도 위령비도 보상금도 사과문도 없이 허공에 사라졌다.

   
<나의 비아 돌로로사> 저자 타마미츠 무라오카(오른쪽)씨가 북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은 통역을 맡은 김정우 원장(한국신학정보연구원)

저자는 “일본 정부는 아직도 그들에게 합당한 사과나 보상을 제공한 바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간단한 문장에서 일본의 가해 행위의 규모와 참혹함을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의 감정 이입이 없이 객관적인 내용을 그대로 진술하는 것만으로도 역사 가운데 일어난 일본의 만행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그런 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무감각한 선대들의 무지에 저자는 경악한다. 일본의 식민체제가 그 국가에 선진적인 문명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고마워하거나 그 시절을 좋아하는 이들을 향해 저자는 “당신들이 겪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내 조국 일본이 저지른 죄를 알고 기억하고, 그러고 나서 용서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크든 작든 이미 저질러진 악행은 손쉽게 용서하고 편하게 망각할 수 없다며 참된 은혜의 본질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는 것은 바른 지적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잊고 매이지 말자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값싼 은혜에 기초한 것일 수 있다. 진정한 은혜는 과거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죄를 용서하고 상처를 싸맬 진정한 주체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용서와 치유를 가능케 하시기에, 무라오카는 자신이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대하되, 저질러진 죄악을 기억하는 것과 함께 사죄하고 용서하라고 조언한다.

일본인의 의식을 강력히 지배하는 하나가 원폭 피해의식인데, 히로시마 피폭의 고통을 잊지 않고 “더 이상 히로시마가 없기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이 저지른 난징 유린을 기억하며 “더 이상 난징이 없기를” 다짐하지 않는 자기모순을 히로시마 태생의 무라오카는 통렬히 지적한다.

저자의 이런 지적을 통해 일본의 국가적 만행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국가적 만행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만행이 낳는 것 중에 하나가 가해자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이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이나 일본인들에 대한 혐오가 그 기저에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본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은근히 얕잡아 본다. 국가대항의 야구나 축구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식민지 지배에서 온 생각들이다.

그러나 한국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을 살상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저지른 범죄를 국위선양, 혹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가지려고 하지만, 전쟁에서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한다. 베트남 국민이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지만, 과거의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이 책을, 단순히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을 고발하고 사죄하는 저자의 행동에 감격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반추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그것은 기독교적 가치관으로써 나누어야 할 서로에 연약함과 죄에 대한 고백과 용서이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과 수탈에 유린 당한 비극의 역사 앞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가르쳐야 하며, 일본의 사과와 참회를 받을 권리가 있고 요구할 정당성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가해자였고 수탈자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지속한 길고 가혹한 경제적 차별행위로 고통 받은 화교들에게, 우리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뛰어들었으면서도 불필요하고 잔인한 행위로 피해를 입힌 베트남인들에게, 절대적 약자의 위치에서 노동력 착취와 인권유린을 당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욕망 혹은 애정의 책임을 저버린 한국인 생부를 원망하는 다수의 코피노들에게…국가가 아닌 신앙과 양심을 지닌 성도 개개인으로서의 할 바를 생각하라고 이 책은 촉구한다.

무라오카의 성찰과 도전은 사죄의 행동에서 멈추지 않고, 국가의 죄악을 뒷받침하고 방조한 일본 기독교의 국가주의 노선에 대한 자성과 회개로 나아간다. 우리 한국 교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신사참배를 놓고 찢긴 우리 교회사의 환부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국가권력 집단과 한국 기독교의 밀월 속에 이루어진 거래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교인들 간에 회자되어온 부끄러운 역사는 또한 어찌할 것인가?

반복되는 역사 가운데 진리로 자유하게 하는 복음을 살도록 하는 것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염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역사가 주는 아픔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본성적인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도록 하는 복음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교훈 중 하나는 한국교회사의 사회적 죄악, 그리고 악의적인 교회의 부도덕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통찰도 있다는 사실이다.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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