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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 사람 나의 외삼촌

기사승인 2019.04.25  14: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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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나라가 온통 꽃 잔치를 하는 양 사방이 꽃으로 가득하다. 굳이 꽃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밖으로 눈을 돌리기만 해도 온통 꽃들이 나를 반긴다. 그런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난 이런 봄이 좋다.

이 봄에 꽃보다 더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내게는 외삼촌 한 분이 계시다. 나의 엄마가 맏이시고 외삼촌은 막내라서 엄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게다가 나도 맏딸이라 나와 외삼촌과의 나이 차이는 그리 많이 나지 않아 때로는 오빠처럼 보이는 삼촌이다. 칠순 중반의 나의 외삼촌의 외모는 60대로도 안 보일 정도로 동안이시다.

아직 봄이라고 말하기엔 조금은 쌀쌀하고 봄빛이 아련한 3월의 어느 날. 나의 외삼촌은 볼 일이 있어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삼촌 집은 분당이고 가려고 하는 곳은 종로3가 낙원상가였으니 한 번 나가면 하루가 다 걸릴 그런 거리다.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종로 1가에서 2가로 가는 길가에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삼촌 눈에 뜨였다. 흐트러진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는 구걸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그 할머니를 보는 순간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작은 성의라도 표시하고 싶었다. 나의 외삼촌은 본성이, 정이 많고 마음이 여려서 가엾은 분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성품인 외삼촌은 그 때도 예외 없이 작은 성의라도 보이려 주머니를 찾아보니 만 원짜리밖에 없었다. 그냥 줄까 하며 주춤하다 기회를 놓쳐 주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를 지나쳐 볼 일을 본 후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잊어졌어야 할 그 할머니가 눈에 밟혔고, 머릿속은 온통 그 할머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 나더니만 급기야 집에 도착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까지도 삼촌의 마음엔 그 할머니 모습으로 가득했다. 무겁고 괴로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내일 다시 그 곳으로 가서 그 할머니에게 주면 되지”라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을 청했는데 이제는 또 다른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할머니가 내일은 그곳에 없어 만나지 못할까 하는 불안함이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기도도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그 할머니를 꼭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간신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오직 그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외숙모와 함께 집을 나섰다. 삼촌 집과 종로 낙원상가까지는 먼 거리임에도 아랑곳 않고 오직 그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떠난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내내 맘속으로 그 할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삼촌은 버스가 명동 성당 부근에 왔을 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내리고 싶어졌다. 어제 그 할머니를 만난 곳은 종로 2가 부근이었기에 그 할머니를 만나려면 종로 2가로 가야하건만 그냥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종로 2가 쪽을 향해 걸었다. 실제로 그 할머니를 만날 가능성은 더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그 할머니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갔고, 발걸음 역시 빨라져만 갔다.

한참을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또 다시 몇 미터 정도 갔을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곳에 삼촌이 그렇게 찾던 그 할머니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삼촌은 눈을 의심해 보았다. 어제 만났던 그곳이 아닌, 어제 만난 곳과 이곳 명동 성당 주변과는 거리가 꽤 먼 거리인데 여기서 그 할머니를 만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혹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다시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분명 어제 그 할머니였다.

   
 

삼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할머니를 불렀다. 그리고는 쾌히 겸연쩍은 모습으로 만 원 짜리 한 장을 그 할머니 손에 쥐어 주고 급히 돌아섰다. 몇 걸음을 걷는 순간, 뭔가 게름직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예수 믿고 천국가시라는 말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던 길을 돌아 서서 그 할머니에게로 다시 갔다. 그리고는 간곡하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서 할머니 손에 만 원 지폐 한 장을 더 쥐어 드렸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삼촌의 얼굴을 감사하다는 듯 찬찬히 바라보았다. 삼촌 역시도 그 할머니를 바라보며 꼭 예수 믿을 것을 강한 눈빛으로 애절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삼촌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 같은 사람의 작은 소원에도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만약에 어제 만난 그곳으로 갔다면 그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로 하여금 먼저 내리게 하여 그 할머니를 만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삼촌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마리아인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삼촌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 것 같아 마음은 기뻤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작은 소자에게 베푼 사랑은 곧 주님께 베푼 것이라고. 어쩌면 나의 삼촌은 주님께 선을 베푼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그저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이야기가 평범하지 않은 시대이기에 평범함이 평범하지 않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나의 삼촌의 그 소박하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지천에 피어 있는 봄꽃보다 더 아름답고 강하게 내 맘에 다가왔다.

봄은 이렇게 오는가 보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야기가 많으면 좋겠다. 

장경애 객원기자 jka9075@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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