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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사본(DSS) 연구..초기부터 최근까지

기사승인 2019.05.13  14: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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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모와 의미성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지난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 이하 DSS. 일명 '쿰란동굴사본': QCS)의 발견이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랜(일설에 두 번째로 오랜) 구약성경 사본들이 포함돼 있다.

모양새가 좀 그렇긴 해도, 실제로 가장 오랜 구약사본은 예루살렘 케테프 힌놈에서 발굴된 (민수기 중) 제사장 축도 문서로 기원전 620년경의 것이다. 흥미롭게도 2개의 두루마리 형상의 은제 부적 속에 들어있었다.

   
제4동굴을 비롯한 쿰란의 발굴처와 표지판

1947년 11월, 웨스트 뱅크의 유대광야 동쪽, 사해 북서쪽 해변 둑의 고대 키르벳 쿰란 근처 와디 쿰란 주변의 동굴에서 베두인 목동들이 발견하기 시작한 이래, 1956년까지 쿰란 주변과 11개 동굴에서 히브리 성경을 포함해 총981개 사본(이중 230점이 구약)과 1만 점 넘는 다양한 고대 문서 파편들이 줄줄이 발견돼왔다. 아직 미처 보고되지 않은 사본이 도굴범에 의해 발굴, 유출된 흔적도 있다.

사본 과반수가 히브리어, 나머지 15%는 아람어, (동부 아람어 방언인) 나바테안 아람어, 그리스어로 돼 있었다. 유대평야에서 발견된 일부에는 라틴어와 아랍어 문서도 있었다. 대부분은 양피지에, 일부는 파피루스에 기록됐고, 특이하게도 1개 사본은 구리종이(동판) 위에 새겨졌다.

또한 앞으로도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주변의 어떤 비밀동굴에서든 더 발견될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다. 수백 개의 동굴이 있기 때문이다. 기록연대는 최고(最古) 기원전 350년까지도 올라갈 수 있기에 기독교와 유대교 등에 종교적, 역사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보물이다.

전통적인 학설은 이 문서들이 '에세네' 공동체에서 필사 또는 편집됐다고 보지만, 다양한 반론들이 있어왔다. 예컨대 로버트 아이젠먼의 1세기 반란운동(OM) 공동체 기원설이 그렇다. 에세네와 함께 셀롯 당, 시카리, 나조레안, 에비온 파 등이 이 문서들을 만들었다는 것.

이스라엘 연구가들은 떨어져 나뉜 파편 곧 사본 조각들을 맞추어 연결하여 읽고 번역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보낸 DSS는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IM)의 지상/지하 서사당(書祠堂/헤이칼 하세페르, SOTB)에 소장,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7년 12월초부터 2008년 6월초까지 6개월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특별전시장에서 '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 바 있다. 사해사본재단(DSSF) 등의 주최와 후원으로, 진본 5점을 비롯한 총 8점의 사해사본과 관련 유물 등이 전시됐다.

DSS의 약 40%는 구약 성경 사본들이며 약 30%는 에녹서, 희년서, 토빗서, 시락서 등 제2성전시대의 외경 문서들, 나머지 약 30%는 '공동체 규범(세레크 하야하드)', '전쟁 두루마리' 등 특정 공동체관련 문서들이다.

관련 학자 인터뷰 내용 

이후 73년이 지난 현재, 수많은 관련 학자군이 형성돼 있고, 엄청난 양의 연구결과를 발표해 왔다. 그 가운데 웨스턴 필즈 박사는 1991년부터 DSCF 사무총장 겸 사해사본출판사(DSSP) 총무를 겸직해 왔다. 세계적인 학술연구 출판사인 네덜란드의 '브릴'이 그의 연구서를 펴낸 바 있다.

필즈 박사는 1999년 이래 중동/유럽/미국을 두루 다니며 생존해 있던 1950년대 DSS 발견자들, 1세대 DSS 학자들 및 연구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의 2007-2008년 사해사본 전시회 때 특별 강연도 한 바 있다. TGC(복음연맹) 기사가 최근 인용한, 필즈와의 관련 대담 내용을 간추려 본다(일부 정보는 정정/편집함).

사해사본 발견의 의미는 얼마나 중요한가?
-20세기에 이뤄진 고고학적 사본 발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일 사건이라고 평가된다.

수량은 얼마나 되나?
-1400여 편의 오리지널 문서로, 일부는 완전하거나 (대 이사야 두루마리처럼) 거의 완전하며, 다수는 단편/파편들이다. 총 약10만 점의 파편들이 있다.

두루마리의 크기와 재료와 색깔은?
-가장 큰 것은 9m 이상 길이도 있다. 이사야서는 7m로, 양끝을 서로 이어 꿰맨 17쪽의 양피지로 되어 있다. 대다수의 두루마리는 건조시킨, 갈색 또는 누런색의 동물 가죽이거나 가죽종이로 되어 있다. 상태가 최상인 두루마리는 거의 흰색이다.

이 두루마리들의 역사는?
-쿰란 두루마리들은 대강 주전(BC) 250년(350년설도 있음)에서 주후(AD) 65년 사이의 문서들이고, 기타 위치에서 발견된 것은 주후 135년경까지도 있다.

DSS 발견 전의 최고(最古) 기존 사본은?
-가장 오랜 기존 사본은 서기 800-1000년쯤의 히브리어 성경의 부분 사본이다. 완전한 최고(最古)의 히브리어 성경으로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코덱스'가 있는데, 주후 1008년쯤의 것으로 추산된다. 즉 앞서 발견된 기존 사본들보다 1000년 이상 더 앞서 기록됐다는 얘기다. 따라서 DSS는 현존하는 가장 오랜 사본들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삭지 않은 채 보존됐다는 것이 놀랍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물론 사본 다량은 유구한 기간 동안 부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흙항아리에 담아 동굴 속에 보관했다. 때로는 아마포 겉장으로 싼 것이 보존에 도움 됐다. 두루마리용 가죽이나 양피지는 소금과 가루로 가죽 표피의 털을 없앤 다음 몰식자(沒食子) 또는 오배자/五倍子)의 액체로 무두질한 뒤 가죽 양면을 솔질하거나 액체를 뿌려 건조시켜 만든다. 글씨는 대부분 탄소잉크(炭墨)로 썼는데, 지우기가 꽤 쉽기 때문이었다.

DSS는 구약 전체를 포함하고 있나, 딴 문서들도 있나?
-히브리 성경의 각권의 전체 또는 일부가 들어있다. 단 에스더서는 없다. 또 성경 밖 문서들도 많다(본디 그리스어나 기타 언어로 된 것으로만 알려졌다가 이젠 히브리어로도 발견된 것이다). 또 전엔 알려지지 않았던 문서들도 상당수 있다.

DSS 가운데 완전한 각권들도 있는가?
-이사야서만 유일하게 완전하다. 1947년 쿰란 제1 동굴에서 발견됐는데 주전 약 120년의 것이다.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과 비교할 때 어떤가?
-두루마리 본문은 현재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놀랍게도 히브리어 성경 본문은 지난 2000년간 거의 바뀐 것이 없다.

두루마리는 어떻게 발견됐나?
-대다수는 1947-1956년 사이에 사해 서쪽 해안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쿰란 부근의 11개 동굴이다. 그곳에 에세네(Essenes) 파로 추정되는 유대인 공동체가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예수님 시대를 포함한 제2성전 시대에 걸쳐, 이스라엘 곳곳에서 살았다. 두루마리들은 쿰란 남부와 북부 등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1960년대의 마사다 발굴 당시 발견되기도 했다. 또 최근 10년간에도 몇몇이 발견됐다.

목동들이 사본을 발견한 뒤에 어떻게 됐나? 그 이후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은?
-처음엔 두루마리 7개가 골동품 딜러들에 의해 학자들에게 제공됐다. 이 문서의 고대성(古代性)을 느낀 첫 학자는 고고학자/정치인이었던 이가엘 야딘(전 이스라엘군 합참의장/부총리)의 아버지인 엘르아자르 수케니크 교수였다. 아들의 '야딘'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히브리어로 개칭한 자작명이다.

수케니크 교수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를 위해 두루마리 3개를 획득할 수 있었고, 1948-50년에 그 견본을 출판했다. 아들 야딘은 DSS를 일부 번역하기도 했다. 수케니크는 "그것을 펼쳐든 순간 두 손이 떨려왔다. 몇 문장을 읽어보니, 아름다운 성서 히브리어였다. 언어는 시편 같았으나 내가 모르는 본문이었다. 나는 보고 또 보고 하다가 문득 지난 2000여년간 읽히지 않았던 히브리어 문서를 처음 응시하고 있다는 운명의 특권 감각이 느껴졌다"라고 회고했다.

4개의 다른 두루마리는 발견한 해당 베두인이 베들레헴의 골동품 상인 칸도에게 팔았고, 칸도는 다시 시리아 안티옥 정교회 공동체의 '마르' 아타나시우스 예슈에 사무엘 대주교에게 팔았다. 이 4개 역시 고대의 것으로 인식됐고, 1948년 존 트레버 박사와 윌리엄 브라운리 박사가 예루살렘에서 직접 사진본을 마련했다. (트레버와 브라운리는 미국동양연구학회 대표 밀러 버로우즈의 후학들).

마르 사무엘은 두루마리를 미국으로 가져와서 1949년 처음 전시를 했다. 대 이사야서 두루마리와 하박국서 주석 등의 두 사진본은 1950년 출판됐다. '수련지침서'(세레크 하야드, 약자 1qs) 사진본은 1951년 출판됐다.

1954년, 이스라엘 정부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펄프지 상인이자 은행가인 데이비드 사무엘 고테스만의 기부금으로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구입한 바 있다.

한편 1949년 제럴드 랭카스터 하딩 박사와 롤랑 드 보 신부는 쿰란 제1동굴을 발굴해 70개의 추가 오리지널 두루마리의 파편들을 발견했다. 1951-1962년엔 베두인들이 쿰란 인근과 유대 광야의 기타 지역의 10개 동굴에서 수만 점의 파편들을 추가 발견됐다. 이 광대한 콜렉션을 출판하는 데는 무려 60여년이 걸렸다.

1967년 6일 전쟁 후, 야딘은 DSS 중 '성전 두루마리'를 확보했다. 이스라엘의 동 예루살렘 점령의 결과로, 쿰란 2-11 동굴의 주요 콜렉션과 팔레스타인 고고학 박물관(추후 로커펠러 뮤지엄으로 개칭) 소장품인 와디 무라바트를 이스라엘 사적국 관리 품목으로 확보했다. 예루살렘에 소장되지 못한 유일한 두루마리는 얇은 동판으로 된 '구리 두루마리'와 기타 파편으로, 현재 요르단 암만의 요르단 박물관(JM)에 전시돼 있다.

두루마리로부터 배우는 점은? 그들의 발견이 성서학 연구에 끼쳐온 영향은?
-DSS는 어떻게 성경이 기록되어 대대로 전해졌는지에 관한 엄청난 정보를 학계에 제공해왔다. 현재의 히브리어 성경 본문과도 현저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 DSS와 전통 히브리어 본문 사이의 차이점이 현존 히브리어 성경의 난점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DSS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다. 이 두루마리들은 이 시대의 유대교의 모습이 생각보다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복음서들과 쿰란 문서 사이에 문자적인 공통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당대 유대교 가르침의 교육적인 접촉점들을 몇 가지 보여준다.

현지의 최신 동정과 흐름 

한편 최근에는 사해사본 등을 놓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사이에 문화유산 '보유권' 다툼이 첨예해진 대립 상황이다. 유네스코가 그 중재자 위치에 있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올해 말까지 3년 계획으로 유대 광야 지역의 사해사본과 여타 유물들의 추가 발굴을 하고 있다. 지난 20년래 최초의 대규모 고고학 탐사이다. 정부 고고학팀은 사해 인근에 있는 수백 개의 광야 동굴들을 샅샅이 훑으며 찾고 있다.

탐사 시작 얼마 후인 2017년 2월, 히브리대학교 고고학자들이 12번째 동굴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거기엔 단지에 담긴 백지 양피지 한 점과 깨진 텅 빈 단지, 곡괭이 등이 발견돼 지난 1950년대에 도굴된 흔적으로 보였다.

정부가 직접 나서게 된 동기는 최근 도굴꾼들이 문서를 찾아내어 간다는 보고가 들어왔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유네스코에 사해사본에 대한 보유권을 부정하도록 청원을 올린 바 있다. 사해사본 발견 장소인 동굴들이 '그린 라인'을 넘어섰기에 '도굴품' 내지 '절도'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덧붙여서 였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데이비드 샤르마 하코헨 유네스코 대사는 "역사를 재구성하고 그 땅과 우리의 연계를 지우려는 팔레스타인의 도발적이고 넉살좋은 또 하나의 시도"라며 "DSS는 이스라엘 땅에서의 유대인의 현존에 대한 사실적이고 비중 있는 역사적 증거"라고 단언했다.

팔레스타인은 그밖에도 예루살렘 성전산(TM) 보유권을 유네스코에 공인받는가 하면, 야곱의 아내인 (베들레헴) 라헬의 무덤, 헤브론의 (아브라함/이삭/야곱 등 아내들의) 족장 무덤인 마므레 동굴 등의 보유권 청구를 시도해, 유대교보다 이슬람교가 성경의 주인인 양 주장해왔다.

한편 이스라엘은 연전에 구글과의 협약으로 DSS중 대 이사야서, (빛의 자손과 어둠의 자손의 접전에 관한) '전쟁 두루마리', '하박국서 주석', '성전 두루마리', '공동체규범' 등의 5개 두루마리를 디지털화 하여 웹사이트(dss.collections.imj.org.il/)에 올려놓은 바 있다.

만약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의 DSS 보유권을 공인할 경우, 구글의 이 디지털 사본들도 압류 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가 "사상 최고의 이스라엘 협력정치인"으로 꼽은 트럼프의 미국 안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 대한 찬반론이 분분하다.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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