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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라, 하와이!”

기사승인 2019.06.12  1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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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 Joyful Korean Community Church(Texas, Dallas) 담임

   

▲ 김세권 목사

        성령 강림절 / 요한복음 11장 5-13절

  고래 사냥

어떤 가수가 오디션에 나와서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불렀다. 심사위원 한 명이 평을 했다. 이 노래 악보를 보면 무지 단순하다. 그런데 이걸 가슴에 와 닿게 부르는 게 감성이고 음악성이다.

성경말씀을 겉으로 보면, 단순하다. 이걸 살아있는 말씀으로 읽으려면 말씀 감수성이 필요하다. 말씀 감수성을 끌어내는 방법이 묵상이다.

말씀 감수성을 키우려면, 한 spot을 선택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마음과 눈이 필요하다. 오늘 spot: 11절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그런 분이 친구로 부른 사람이 있었다. 그가 나사로였다.

"니가 가라, 하와이"

   
 

‘친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말이다. ‘친구’와 ‘Friend’라는 개념에는 차이가 있는가? 미국 출신 헤드 헌터,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는 은진기 씨가 이걸 재미있게 표현했다. 영어의 ‘Friend’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뭐든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반면, 한국의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다. Friend 보다 조금 깊은 개념이다.

미국은 나라가 넓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평생친구’라는 개념이 한국보다 약하다. 회사, 학교,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과 거리낌 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초대해서 식사 대접하고 쉽게 가까워지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경우가 많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존재하며, 이런 거리 속에서 우정을 나눈다. 예를 들어, 새벽 6시에 공항에 엄마 픽업 가달라는 부탁을 한국 친구에게는 하지만, 미국 친구에게는 급박하지 않으면 못한다(물론 미국사람들도 어렸을 때부터 사귄 평생친구가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덜 그렇단 얘기다).

INSEAD(인씨아드/유럽, 아시아, 중동에서 MBA를 주는 교육기관)에서 비교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인 Erin Meyer가 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차이를 설명했다. 처음에 친해지기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문화권은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코코넛 문화다.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할 정도로 쉽게 친해지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문화권은 겉은 무르지만 속에 딱딱한 씨가 있는 복숭아에 비유할 수 있다. 같은 서양이라도 유럽권은 코코넛이 많고, 미국이나 남미는 복숭아 문화권이다. 한국은, 겉도 속도 단단한 복숭아다.

둘 다 단단한 복숭아는 변치 않고 오래 가는가? 세월이 흐르고, 이익이 끼면 달라지기도 한다. <친구>라는 영화 본 적이 있는가? 장동건과 유오성이 거기 나온다. 둘은 고등학교 때 껄렁거리고 다닌 친구였다. 성장해서 서로 소속된 조폭 그룹이 달라 이해관계가 얽힌다. 우여곡절 끝에 유오성이 장동건을 만나 하와이에 잠깐 가 있으라 한다. 그 말을 들은 장동건이 그런다.

“니가 가라, 하와이”
조건이 안 맞으면, 변한다. 이유가 뭘까? 기본이 에로스(자기애)이기 때문이다. 내게 맞지 않으면 마음이 바뀌는 거다. 이거도 사랑 종류에 들어간다.

필로스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라 부르셨다. 이건 어떤 친구인가? φίλος(필로스)가 우리 성경에서 친구로 번역된 말이다. 헬라 사람은 사랑을 몇 개로 분류했다. 아가페, 필로스, 에로스 등이 거기 속한다. 잘은 모르지만 아가페가 최고인 건 누구나 안다. 그럼 필로스는 어떤가?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사랑이 필로스다. 아가페는 흉내 못내는 거고, 필로스만 해도 사실 대단 한 거다. 이게 친구란 의미를 가진다.

필로스는 완벽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다. 나사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릴 정도로 사랑했다 나사로가 완벽해서 그랬던 건가? 아니다. 그냥 사랑하셨다. 그의 최선이 어찌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충분했을까? 주님은 그가 부족하지만 사랑하시고 친구로 부르셨다.

친구가 보낸 글을 소개한다. “장점을 보고 친구가 되었으면, 단점을 보고 돌아서지 마라.” 뼈 때리는 말이다. 부족함을 끌어안는 게 진짜 친구 아니던가? 주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다.

연애할 때 거짓말: 1위 (네가 첫 사랑이야); 2위 (첫 눈에 반했어); 3위 (연락 온 지 몰랐어). 이런 거짓말은 상대방이 다 안다. 그래도 상관없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벧전4:8)
사랑은 모든 죄를 덮는다”(잠10:12)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의자는 앉으면 옆의 모니터에 몸무게 나타난다고 한다.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드물단다. 한참 생각했다. 앉으면 신앙계수가 나타나는 의자는 없을까? 있다면, 거기 오래 버티고 앉아있을까? 나부터 자신이 없다.

주님이 우리를 친구로 부르시는 것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은혜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신다. 우리의 완벽함 여부와 상관없이, 주님이 나를 친구로 부르시니 참으로 감사하다.

파라클레이토스

오늘은 성령 강림절이다. 요한복음은 성령님을 파라클레이토스로 부른다. 뜻은 위로자이다. 나는 이걸 친구로 해석한다. 성령님은 함께 이야기하고, 힘든 것도 털어놓고, 어려운 일도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이시다. 그분도 우리가 부족해도 친구로 삼아 주신다. 예수님 대신해서 오셨으니, 이런 면에서도 연결성이 있는 게 맞다.

우리는 예수님과 친구 맞는가? 그러면 성령님과도 친구인가? 그분과 친구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김세권 목사 mungm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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