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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여, 아버지다워라

기사승인 2019.06.20  10: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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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통제보다 격려와 이끔 다해야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예전엔 아버지의 근엄한 교훈이나 꾸중이 가족의 심경에 변화를 가져오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한 편의 설교보다는 한 가지의 모범--그것이 가족들이 아빠에게 우선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돼 갈까? 불어나는 가족 황폐화 현상 때문이다. 미국은 6월에 아버지의 날을 지킨다. 이를 기해 쓴 칼럼니스트 셰인 아이들먼의 글을 간추린다.

   
  아버지가 가정의 바른 리더로서 서야 할 때다.

우리 사역처엔 절망적으로 애소하는 아내와 엄마들의 이메일이 날아들곤 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요새 도무지 어쩔 바를 모르겠네요. '크리스천' 남편이란 작자가 말과 폭력으로 저를 괴롭혀요. 우습게도 다 제 탓이라네요. 자신은 바뀔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성구를 읊어가며 제게 복종을 요구하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어요.”

“아빠의 분노는 아이들도 파괴시키고 있어요. 한때는 웃음과 기쁨으로 가득했던 집안이 이젠 공포와 우울로 가득해요. 그가 있으면,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거 같고, 없으면 오히려 기뻐요. 그는 이제 가족보다 포르노를 더 사랑해요. 더 참기가 힘들어요. 난 안으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 죽어있어요.”

요즘 우리는 가장(家長)의 순수한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상처를 그러안고 겸허해진 남편,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함을 두려움 없이 고백하는 남편, 자신의 현 지위나 인지도보다는 자신의 기도가 부족함을 더 우려하는 남편, 자신의 입장보다 하나님께 호소하길 바라는 남편 등.

오늘날 가족의 상태는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남편/아빠들은 가정에서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역할을 잊었거나 저버리고 있다. 사례를 들어보자.

하루 12시간 노동은 '성공'이라고 부르면서, 성경 읽기와 기도는 '광신적'이라 불린다. 경력은 열나게 쌓으면서 부부생활은 소홀히 한다. 회사 중역들은 높여주고, 가장은 빈축을 산다. 부를 축적하면서 가치는 절감한다. 별 등 자연에서 답을 찾으면서 창조주를 무시한다. 프라이드는 자산으로, 겸손은 부담으로 여긴다. 우리의 아내들이나 자녀들보다 운동선수를 더 잘 안다. 교회에서 나오는 모습보다 바에서 나오길 더 즐긴다. 선호하는 구단을 응원하다 예배 때 졸린다.

남편들은 수동적이고 약해 빠지고 결단력 없는 파트너가 아니라, 가족을 보호하고 이끌고, 돌봐줄 부름을 받았다. 남편은 기도도 이끌고 아내를 방어해주고 자녀를 앞장서 인도해 주고, 가정을 성소로 삼아야 할 부름을 받았다. 사탄의 놀이터가 아니라. 적과는 싸워야지 앞에서 내가 도망할 상대가 아니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의연히 일어나 맞싸우는 남편이 아쉽다 못해 기다리기에 지친다. 교회와 나라는 품성을 찾고, 아내들은 지도자다운 가장을, 자녀들은 아빠를 찾고 있다.

남편이여, 어리석은 비디오게임을 그만 해라. 페이스북을 탈피해라. 포르노 보기 악습을 죽여라. 불경건한 친구들에게 복음을 알려라. 가족을 이끌고 사랑하고, 필요하면 가족을 위해 죽기 위하여 그대는 부름 받았다.

나라가 악화되는 이유는 우리 탓이다. 남 핑계하지 마라. 가족이 무너지는 원인도 우리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부 탓만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자. 의롭고 거룩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코앞에 우리는 악취다. 정신차려라! 인생은 싸움터이지 놀이터가 아니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남편들은 격려가 아닌 도전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야 격려가 필요할 것이다. 격려만 해 주고 도전을 하지 않으면 변화되기 어렵다. 남편에게 상냥하게 도전을 주지 않으면, 회개가 일어나지 않고 가족 전체가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느 여성은 저널에다 이렇게 썼다. “난 내 꿈이나 내 삶의 목표를 아랑곳하지 않는 남자랑 잘못 결혼했다. 서로의 별거는 옵션이 아니라서 이걸 그냥 끼고 사는 법을 배워 왔다. 하지만 우리 애들한테까지 그렇게 하도록 놔둘 수 없다.” 그 여성은 바로 내 아내였고, 그 남자는 나였다.

처음엔 그 진실이 아픔을 주었기에 난 격노했다. 그러나 음미할수록 그녀가 절대 옳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가족의 꿈과 소망, 목표 등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의 꿈에 대하여 비열하게 굴진 않았어도, 나는 가족을 통제했다. 나는 “저거 멍청한 짓인데. 미성숙하고, 우스꽝스럽다. 왜 그런 걸 원해?”라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나는 내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져 가족 앞에 용서를 빌었다. 나는 나의 교만으로 가족의 영혼을 허물고 있었고, 마구 쥐고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그 일기를 읽은 것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이젠 가족을 실망시키는 대신, 그들의 꿈을 격려해 준다. 내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상황 비교를 하자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흔히 도전과 문제 앞의 노출을 바라신다는 것을 예로 드는 것이다.

흔히 남편들이 자기 지위 확보, 명성 쌓기, 경력 추구 등을 할 동안, 아내는 기도하고 호소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고 이끌기까지 하기가 일쑤다. 그렇게 해서 남편은 바깥에서 성공하나 집에서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개는 영적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회개가 첫 걸음이다. 지식은 우리가 회개할 필요가 있음을 아는 것이고, 지혜는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실천함에서 발휘된다. 야보고서 1:22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할 것을 알고도 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임을 깨우쳐 준다.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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