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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교회 답게

기사승인 2019.06.25  14: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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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예배 중, 성도들의 아름다운 찬양을 들을 때 갖게 되는 마음의 감동은 형언할 수 없다. 천사의 소리를 듣는 듯, 마음은 깊은 감동과 기쁨을 체험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이 흘러 나와 교회의 가치를 높이 들어 올린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올리는 성도들의 찬양 속에서 교회의 존재 이유 한 가지를 찾게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자기 백성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깊이 다가온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의 찬양이 있고, 땅 위에는 교회 안에서 들려오는 성도들의 찬양이 있어 지으신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사실은 이 교회가 점점 수적으로 위축되어 간다는 것이고, 이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 속에서 가치를 잃어가고 존중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교회로서 가치와 빛을 잃어 가기 때문에 교회가 위축되어 가고,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교회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우리 주 예수님의 교회로서 높임을 받고, 세상 속의 빛으로 교회가 자리 잡을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가 위축되어 가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이 세상이 점점 더 세속화 되어 간다는 것이다. 영생, 천국, 진리와 같은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이 세상의 가치, 곧, 물질적, 육체적 만족과 가치를 더 귀중히 여기고 찾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과 밖을 지배하는 가치가 물질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된 현실을 살아간다. 교회가 얼마나 크고, 헌금이 얼마이고, 이런 관점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닌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가 그런 관점을 가질 때, 교회는 세상을 가르치고 책망할 근거를 잃어버린다.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책망할 수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본질인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전락해 간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간에 오르내리는 교회의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소감은 성공주의, 물질주의가 깊이 배어 있는 설교라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 안에서도 선포되니, 교인들은 부담 없이 그런 교회를 출입할 것이고, 그것이 교회의 외적 성장의 한 가지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현상을 교회의 성장이나 부흥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잘못된 평가일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저락시키는 평가가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교회를 위축시키는 이유에는 신학 교육에 있다. 신학 교육의 목적은 하나님과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 가르침 위에 교회를 세우는 데 있다. 그러나 서구 신학교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의 가치와 권위가 몹시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오늘날 팽배한 자유주의 신학의 근본에는 인간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멀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가르치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으로, 스스로 개선의 가능성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독일의 쉴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주장 뒤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타락과 타락한 성품의 무력함을 가르치는 대신, 사람이 스스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 신학자에게 예수는 구속주가 아니라, 모범자로 증거되고 있다. 사람은 그 모범을 따라 살도록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바로 사람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지적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연약한, 타락의 성품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성경 속에 나오는 병자, 불구자들, 귀신들린 자, 심지어 죽은 자들은 인간의 실상을 조명하는 사람들이요,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주님으로 증거되고 있다. 창조의 주님은 인간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는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은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이시다. 창조, 부활, 의인으로서의 변화, 이 세 가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능력과 구원의 사역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영적으로 죽은 자요, 무의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사실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성경을 바른 관점에서 읽고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교회를 위축시키는 셋째 이유는 교회 지도자의 덕스럽지 못한 행실일 것이다. 특히 세간의 주목을 받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행위는 곧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이름 없이, 빛 없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관심 밖에 존재한다. 오직 하나님이 아시고, 귀히 여기실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이 세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끊이지 않고 들리는 목회자들의 비리, 또는 대형 교회 세습의 이야기, 그들을 두둔하는 목회자들의 언동들은 교회 안과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야기시킨다. 이런 교회 현실은 교회 안에 들어온 물질주의, 돈 숭배의 정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곳 뉴저지, 뉴욕의 소재 교회 안의 갈등의 중심에도 바로 돈을 바로 사용하지 못한 목회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목회자가 돈을 사랑하면서, 교인들에게는 무슨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오늘날 시대의 정신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말한다. 그 정신의 핵심에는 개인 중심, 자기 만족이 있다. 무엇이 진리인가를 아는 데는 관심이 없고, 이 현실 속에서 얻고 누리는 개인적, 감정적 즐거움이 추구의 목적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 정신 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배하는 일은, 시대 정신과 역행하는 것이라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은 삶이 되어 가고 있다. 어느 새 교회 안에도 자기 중심,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시대와 분위기 속에서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첫째는 성경을 다시 읽고, 하나님과 진리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신앙 생활은 성경을 배우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시대 정신을 초월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오직 성경을 바로 배움으로 가능할 것이다.

둘째는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는 삶 속에 존재의 이유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 거룩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세속주의, 물질주의는 이 거룩성을 잃어 버린 것과 맞물려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거룩한 삶의 추구는 하루 하루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셋째는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천을 통해 하나님과 진리를 바로 증거하고, 교회 안과 밖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권위는 그런 삶의 실천을 통해 세워진다. 교인들의 많고 적음에 그 권위가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항상 보며 사는 목회자가 참 목회자이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는 일에 그 마음이 드려진 목회자가 참 목회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건목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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