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이사야의 교훈

기사승인 2019.07.03  13:45:42

공유
default_news_ad1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 박봉수 목사

이사야의 교훈(사 6:1-5)

구약성경시대에는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던 사람들 가운데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 사무엘로부터 마지막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 말라기까지 대략 500년 정도 많은 사람들이 선지자로서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선지자들을 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을 기록한 ‘성경선지자’와 다른 하나는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사역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성경선지자들을 또 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록한 성경의 분량이 큰 선지자로 ‘대선지자’라고 부르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 이 네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의 분량이 작은 선지자로 ‘소선지자’라고 부르고, 호세아를 비롯해서 12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지자들 가운데 성경선지자에 속하며, 성경선지자 가운데 대선지자에 속합니다. 그리고 대선지자 가운데서도 첫 번째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쓴 예언서가 예언서들 중에 첫 번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많은 경우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살았고, 맡겨주신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은 ‘여호와께 구한다’는 뜻인데, 실제로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엘리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사야도 그렇습니다. 이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가 역사적으로 위태로운 때 선지자로서 사역을 했습니다. 이 때 그가 전한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며 선지자의 사역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사야라는 인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소명을 받았다 

이사야가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소명 때문입니다.

사 6장을 보면 이사야는 자신이 소명 받을 때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선 이사야는 환상을 봅니다. 성전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이사야는 자신의 죄가 사해지는 체험을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 때문에 두려워 떱니다. 이 때 한 스랍이 제단의 핀 숯을 입술에 대주면서 죄가 사해졌다는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난 뒤의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듣습니다. 이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답을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소명사건 이후에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이사야는 왕들과 가까운 친척으로 왕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권력을 추구하고 세상적 성공을 꿈꾸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명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많은 것이 달라야 하는데,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인생의 방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자기가 바라고 기대하는 목표를 향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소명을 향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폴 손이라는 분이 쓴 [청년의 시간](Quater Life Calling)이란 책을 보면 자신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 이야기를 써놓았습니다.

이분은 20대 중반에 세계 최대 항공사인 보잉사에 입사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자신도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회사생활이 힘이 듭니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회의가 듭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왜 살고 있나?”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마음이 힘이 들까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그런데 기도 중에 그런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폴! 네 질문이 잘못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묻기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일들을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어.” 이때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즉 소명을 생각하게 됐고, 그러면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힘이 드는 이유는 많은 경우 우리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원, 자신의 기대에 인생의 방향을 맞추고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기대에 인생의 방향을 맞추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 살기가 힘들다고 여겨질 때는 한 번 우리 인생의 방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내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어있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사야의 소명사건에서 한 가지 주목해 보는 대목이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사야가 눈으로 환상을 보았을 뿐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입술입니다. 아마도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서면서 자신이 그동안 했던 말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보실 때 부끄러운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떨 때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입술을 만져주셨습니다. 그의 말을 교정해 주신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거룩한 어루만짐’ (divine touch)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하나님의 거룩한 어루만짐을 체험했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도 하나님께서 그 입술에 손을 대주셨습니다. 엘리야도 어루만져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도 만져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어루만짐을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소명의 길로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남편을 만나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0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어서 부부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해산의 날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아이가 뇌성마비 장애아였습니다. 부부의 기쁨과 감사는 한 순간에 눈물과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너무 큰 슬픔에 쓰러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압도하며 감싸는 체험을 했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됐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 아픔을 나도 안단다. 그런데 이 아이를 맡길 사람을 10년 동안 찾다가 너희가 나의 사랑으로 이 아이를 사랑 할 수 있기에 내가 너희에게 맡긴 것이란다.”

그 후 아이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받고 새롭게 주님의 소명을 깨닫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에게 소명을 주실 때 우리 힘으로 그 소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강건케 해 주십니다. 특히 우리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 주셔서 그 소명의 길을 당당하게 걸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어루만짐을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셔서 그 마음이 뜨거워지게 해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한 육체를 어루만지셔서 질병을 낫게 해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은사를 어루만지셔서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하십니다.

* 끝까지 소명을 지켜냈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은 때 그의 나이가 20세 쯤 되었습니다. 이때가 주전 739년입니다. 그리고 그가 순교한 때는 므낫세 왕 때로 주전 680년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후에 59년을 선지자로서 소명을 감당했습니다. 왕이 네 번 바뀌는 긴 세월동안 굳건하게 선지자의 자리를 지키며 소명을 끝까지 감당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사야는 자기관리에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에 소명을 받고 거의 80이 되도록 선지자로서 그 소임을 다했다는 것은 이사야가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않고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은 어땠을까요? 지금도 80까지 현역으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2700년 전에 그랬다는 것은 너무도 특별한 일입니다.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정은 또 어땠을까요? 이사야는 결혼하여 한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가정 문제에 대한 특이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가정이 선지자 사역에 걸림돌이 된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관리도 철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한 눈 팔지 않았습니다. 왕족으로서 얼마든지 정치에 한 눈 팔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돈벌이하는 일에도 얼마든지 수완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적인 유혹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오직 소명만 바라보고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이런 이사야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소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참 유능한 사람인데 도중하차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직에 발탁되어 나가려 할 때 과거 잘못된 처신이 구설수에 올라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리 도덕적 문제로 지탄을 받으며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평상시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더욱 자기관리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내 몸, 내 삶, 내 가정, 내 일터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청지기로서 잘 관리할 때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 소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사야는 일관된 믿음으로 끝까지 소명을 감당했다는 점입니다.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고 사역을 시작할 즈음 남왕국 유다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앗수르라는 초강대국이 패권을 장악하며 등장했습니다. 나라가 망할 것을 두려워하던 아람과 북왕국이 동맹을 맺고 남왕국 유다를 침공해왔습니다. 자기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와 맞서자는 것입니다. 유다왕 아하스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때 이사야는 아하스 왕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힘 있는 나라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사 8: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그리고 사 7:9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안타깝게도 아하스 왕은 이사야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앗수르가 쳐들어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이제 유다마저도 언제 침략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히스기야가 왕으로 통치할 때 더 심각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애굽이 앗수르와 맞서기 위해 주변국들과 동맹을 맺으려 했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 이사야가 나섰습니다. 사 28:15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반앗수르 동맹이 잘못된 것이라는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 30: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시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분명한 믿음으로 외쳤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왕이 네 번 바뀌고, 공격해 오는 적들이 바뀌고, 시대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도 일관된 믿음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정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므낫세 왕이 등극한 뒤 악을 저질렀습니다. 나라도 위기인데 왕마저 악을 저지르자 이사야는 서슴없이 왕을 책망하며 무서운 예언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므낫세가 이사야 선지자를 회유합니다. 전했던 예언의 말씀을 철회하면 존경받는 자리에 앉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므낫세는 이사야를 체포하라 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전해내려 오는 구전에 의하면, 이 때 이사야는 체포됐고, 나무통속에 갇힌 채 톱으로 켜져서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을 다 감당했습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지켜간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선지자 사역을 보면 한 마디로 초지일관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정말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라”는 이 뜻을 지켜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절이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합니다. 눈에 보이는 도시모습, 건물들, 사람들의 모습들 너무도 빠르게 변합니다. 기술발전으로 삶의 환경도 빠르게 변합니다. 사람들의 의식도 빠르게 변합니다. 자칫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 우리의 믿음도 흔들리고 변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처럼 초지일관의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는 이 믿음을 지켜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해도 이 믿음만은 변하지 않게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는 소명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분명하고 확실하게 소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사야처럼 소명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소명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고 우리의 정체성을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소명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초지일관의 믿음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