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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사승인 2019.08.16  09: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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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길 목사, 남서울은혜교회 광복주일 설교

홍정길 목사 /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 홍정길 목사

성경 본문: 신명기 15:15 

오늘(8/11)은 광복 74주년과 대한민국 건국 71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이 감사의 날, 모세의 설교 본문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들에게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15절의 말씀은 신명기서 전체의 중심에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여기서 모세는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첫째,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둘째,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였음을 기억하라.

기억하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독일 남부에 있는 유대인 포로수용소를 참관하고 나오다가 출구에서 보았던 문구가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반복이라는 재앙이 반드시 임한다."

영국의 문명 비평가인 웰스(H.G.Wells)는 ‘역사의 비극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계속 곱씹어 볼 말입니다.

   
 

세계 최강 국가들의 패권경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미중(美中) 무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북쪽에는 이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킬 핵무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또 우리는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충돌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하나는 동학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입니다. 현재 정부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은 이 두 사건을 기억해서 작금의 대일 문제에서 승리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정부의 선봉장 같은 한 사람은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들이 부른 노래인 죽창가를 부르자고 합니다. 동학혁명에 깊은 감명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반봉건과 반외세를 기치로 걸고 일어난 동학혁명이 여러 가지 상황에 연결돼 있지만, 동학군이 마지막 국면에 결정적으로 꺾인 것은 조선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에 맞서 격돌한 우금치 전투의 패배입니다.

우금치 전투에서 2만 명의 동학군이 소수의 숫자로 이루어진 조선과 일본의 연합군과 싸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1만 7천명이 넘는 전사자들이 발생하여 동학군이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에 비해 상대편의 희생은 미미했습니다. 혁명군의 지도자들은 동학군에게 부적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일본군이 쏘아대는 총탄을 막을 수 있다고 선동하면서 전쟁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한일합방이라는 쓰라린 식민지의 경험을 온 국민이 감내해야 했습니다. 냉엄한 현실에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대처해야 합니다.

임진왜란은 어떻습니까? 이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답은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세계전쟁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명장입니다. 그는 23전 23승을 한 무패의 장군입니다. 그가 그처럼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패배할 전쟁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승리할 전쟁만 했습니다.

조선의 임금 선조가 잘못된 첩보를 듣고 간신들의 부추김을 받아 이순신 장군에게 전투를 명령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무모한 전쟁은 하지 않았습니다. 왕명을 거역한 것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사형직전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백의종군이라는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오늘은 네 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철저하게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아군의 장점과 적의 장점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전투에 임했습니다. 일본은 전국 시대를 겪으면서 활에서 칼로 또 조총 등의 최신 무기로 무기체계를 전부 변경시켰습니다. 그들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본인들에게 익숙한 조총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여 육전에서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쳐들어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화전과 대포를 전함에 장착했습니다. 해전에서 일본군의 조총보다 몇 배나 긴 사정거리를 가진 무기였습니다. 이로써 이순신 장군은 해전에서 계속 연전연승했습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승리의 요건입니다. 그는 철저히 그것을 지켰습니다.

둘째, 함께 전투하는 지도자들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했습니다.

임진왜란의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정걸 장군의 공로는 수군의 승전에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보다 31살이 더 많은 은퇴한 노장이었습니다. 수군의 가문에서 자라난 정걸은 평생 우수영의 모든 전투에서 해전을 경험한 장수였습니다. 당시의 이해로는 있을 수 없는, 아들보다 더 어린 이순신 장군의 막료로서 평생의 경험을 다 쏟아 해군 생활을 많이 하지 않은 이순신 장군을 힘껏 도왔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전문가들이 보이지 않고 전공자들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전공자는 실험하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극복되어야 합니다.

지혜가 히브리말로 호크마(חָכְמָה)입니다. 이 단어는 ‘나이가 많다’, ‘경험이 많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아들 르호보암 왕에게 나이든 어른들의 지혜를 구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왕이 되자마자 노인들을 모두 쫒아내고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람들을 옆에 두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분열 되는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로마가 1천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 역시 원로원의 지혜에 있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과거 민주당에서 원로로 존경 받으시는 어른을 만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왜 관여하시지 않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을 사람으로 취급합니까?”

씁쓸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나라가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셋째,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들의 생업을 염려하여 최선의 배려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 관할 지역의 백성들에게 땅을 개간하고 경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했습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이것은 정치의 요체입니다. 대통령이면 국민들이 평안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든 국가의 태평을 이룩해야 합니다. 국태민안의 기초가 없는 정치는 어떤 정치든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란 속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본인이 다스리던 지역의 백성들이 윤택하도록 항상 배려했습니다.

임진년부터 정유년까지 7년의 전란 속에서도 오직 전라도 사람들만 배곯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 때문입니다. 그는 장군입니다. 문관도 아니고 경제 전문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생업을 염려하고, 사상자를 내지 않으려 고심했으며, 부상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고, 함께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애도의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애민(愛民) 애족(愛族)이 얼마나 깊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우방에 대해 깊은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이 상전국이라고 갑질을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아군을 어려움에 빠트렸을 때도 이순신 장군은 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투가 끝나면 전공을 진린에게 돌렸습니다. 눈앞에 당면한 적을 이기기 위해 모든 힘을 결집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진정한 적은 누구일까요?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무서운 위협은 북핵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지금 일본과 다투어야 될 때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의 위협은 이 땅의 민족과 산하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 71돌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정말 축하하고 기뻐해야 될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광스러운 날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증오가 기쁜 날을 슬프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맞이하게 합니다. 그것은 집권자들이 ‘우리 100년의 역사는 반칙과 특권의 역사요, 가진 자는 갖지 않은 자를 수탈하는 역사이며, 권력을 장악한 자는 권력을 갖지 않은 자를 핍박하는 역사’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것은 집권세력의 역사관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함석헌 선생께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을 쓰시며 ‘우리 민족처럼 고난이 많은 역사가 없다. 이스라엘 역사처럼 고난의 역사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 그 책을 읽고 그분의 강좌를 들으러 많이 쫒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978년 런던에서 열렸던 세계선교대회에 참석을 하게 되면서 저는 제 눈으로 처음 세계를 마주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리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의 사역지를 방문하고 유학생수련회(KOSTA)를 인도하면서 새로운 인식이 깊어졌습니다.

유럽 보헤미안들의 고난과 폴란드의 수난, 칼빈파 위그노들의 수난사를 보면 그 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하루에 3만 명이 살육 당하고, 이태리 볼로냐에서는 강이 빨갛게 피로 물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지역의 쿠르드족의 문제, 아프리카의 내전과 극심한 가난 등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는 비극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세계 역사 속에서 고난이라는 카드를 내밀 수 없는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난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신채호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의 서럽고 슬픈 시대의 절망과 비분강개를 그렇게 표현했고 사람들이 그런 글들에서 우리 역사를 그렇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현 정권의 몇몇 분들을 만나보면 모두 매우 겸손하고 진실하며 호감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역사를 진단하는 것은 그들 개개인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들이 딛고 서 있는 역사관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정말 우리 지난 100년 역사가 그처럼 비참한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특별히, 해방부터 현재까지는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경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세계 경제의 3대 기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 동경만의 기적, 한강의 기적’ 그러나 앞의 두 나라의 부흥은 기적이 아닙니다. 독일은 두 번이나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일본도 전범국입니다. 그랬던 나라들이 머리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든 것입니다. 일본이 세계를 두고 전쟁한 전범국가라는 것을 아직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 하고 쉽게 말합니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모두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을 제외한 세 나라는 작은 도시국가 정도의 규모입니다. 이들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크게 흩어져 경제력을 확보한 화교들의 자본력과 시장 장악력을 토대로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이야말로 기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우리는 자원이 없었고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70년 만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던 나라였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에 앞서서 생존권입니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생존권이 해결된 것은 4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고 기적입니다.

정치적인 발전은 어떻습니까? 저는 제 시대에 정말 자유를 누리는 축복을 계속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많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군부독재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틀인 법치를 확립하여, 잘못하면 최고 통수권자라 할지라도 잘못하면 법의 심판을 받아 교도소에 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은 국가적으로 치욕이지만 또한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스포츠,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단기간에 세계적인 인재가 배출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모든 발전에 정신적인 기초를 놓아주었습니다. 100만 성도가 1,000만 성도로, 59,000마을마다 교회가 우뚝 서며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찬란한 역사를 적폐로 점철된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적폐로부터 스스로 극복하여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어 가는데도 그 비참한 압제 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노래를 하고 있고, 세계 역사 속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발전을 이룬 우리는 ‘우리는 불행해요’라고 읊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받고 힘들었을 때의 역사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하신 사실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기쁨과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는 시각이요, 진실일 것입니다. 적폐가 있다면 한국정치가 가장 적폐가 심한 현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는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작금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대하 7장 14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여기서부터 시작합시다. 하나님 없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가 공산주의, 그 무서운 흉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총이었습니다. 세계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어떤 한 나라의 자유를 위해서 죽어준 나라는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UN이 많은 결의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소비에트연방의 비신스키(A.Y.Vyshinskii)가 회의에 불참함으로써 한국전쟁 참전이 결의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기적처럼 이 나라가 건국이 되었고 발전돼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또다시 힘겨운 삼각파도가 우리나라를 난파시키려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망하게 하려고 우리나라를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엄청난 기적을 베푸셔서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지 않으십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이 그 분의 도움이라면, 그 손길이 내년에는 얼마나 또 기적 같은 결론을 주실지, 10년 후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들어가게 하실지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세워 주셨는데, 조금 소유한 것에 매혹되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을 봅니다. 교회들도 복을 주어 후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기억함으로 기도합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서 있는 악한 자리에서 돌이키고 이 땅을 고쳐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 이 땅을 고쳐 달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 속에 있는 악을 먼저 고하십시다. 도무지 잘난 것 없는 우리가 교만할 처지도 아닌데, 열등감이 교만으로 표출된 우리 민족의 모습들을 보면서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갑시다. 그리고 이 민족을, 이 땅을 고쳐 달라고 진실하게 기도합시다. 이 땅에서 미움의 풍토가 사라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과 사랑의 풍토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달라고 우리 모두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홍정길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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