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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나니

기사승인 2019.08.28  16: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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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길 목사, 생명의빛 예수마을교회 주일 설교

홍정길 목사 /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 홍정길 목사

성경 본문: 갈라디아서 5:1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4.19를 맞이했습니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유라는 말이 범람하는 시기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자유라는 단어의 허망함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동독의 한 청년이 베를린 장벽을 기어 올라갑니다. 군사들은 총을 겨누며 내려오면 살려준다고 외쳤습니다. 장벽만 넘으면 서독 땅이니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가는 그 청년을 향해 군인들의 저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청년은 총에 맞아 떨어지며 큰 소리로 ‘프라이하이트(Freiheit:자유)!’라고 외쳤습니다.

배우 멜 깁슨이 제작/감독/주연을 맡은 브레이브하트(Braveheart,1995)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인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의 생애를 다룬 내용의 영화입니다. 잉글랜드를 마음대로 농락한 그가 결국 마지막에 붙잡혀 단두대에서 형이 집형되는 순간 외친 단어는 ‘프리덤(Freedom:자유)!' 이었습니다.

   
▲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한 장면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자유를 외친 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영국인 기자 프레더릭 매켄지(Frederick MacKenzie)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1908)’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일본군에 대항해 활약하던 의병들을 취재해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남겼습니다. 대부분 18~26세의 어린 청년이었던 의병들은 푸른 눈의 이방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인으로 죽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이 청년들의 절규는 자유를 향한 목마름입니다.

‘자유’ 사람들은 왜 그처럼 자유를 갈망할까요? 자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이자, 사람에게 언제나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욕구입니다. C.S.루이스는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진정한 자유란 자기를 만든 창조주를 배반할 가능성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일하는 부하에게는 ‘명령’하지만,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권면’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의 인격으로 대우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상대의 자유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축복과 더불어 그분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본분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장 13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본분이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네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너는 나를 의지하고 사는 존재’라 하시고, 그 의지의 표시로 선악과나무를 주시면서 ‘이것 하나만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그 중 단 하나,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먹음으로 단순한 법을 위반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죄를 범하면 죽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대로 죄를 지은 인간에게 죽음의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인간의 비참한 모습이고 창세기에서 말하는 사람의 첫 걸음입니다. 이런 인생을 위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죽음을 대신하시기 위해 그 죄를 대신 지셨고 인류에게 속죄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묻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누가복음 4장 18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이것은 엄청난 선포입니다. 그것을 몰라서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고 자유를 논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앞에 두신 주님께서 외치셨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한복음 8장 36절)

주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얻어진 자유를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타인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최대로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존재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장 1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곧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이 자유를 계속 갈구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W.F. Hegel)은 역사철학 강의에서 ‘역사발전이란 곧 자유의 확신’이라는 말을 쓰면서, 덧붙여 동양의 역사는 국가의 본질인 자유 개념의 의식이 없었기에 세계사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처음에는 오직 왕 한 사람만 자유를 가졌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주에서 귀족으로 그리고 평민에게 자유가 확산되더니 나중에는 노예제도마저 폐지되었습니다. 노예제도폐지는 영국에서는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에 의해 첫 시행되었고,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으로 사라졌습니다. 성경에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차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유가 성숙하면 결국 평등으로 나아갑니다. 성숙한 자유는 나의 자유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자유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회는 나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남의 자유를 존중하여 평등사회를 이룹니다.

자유에서 평등으로 나아가는 데는 두 가지의 방향이 있습니다. 상향평준화를 이루거나 하향평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기본적이면서도 깊은 이기심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공산주의는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다스려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공산화 혁명을 추진하여 당시 세계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등한 국가와 사회 건설’이라는 이상으로 정복해버렸습니다. 모두가 평등할 수 있다는 이 선한 논리와 달리, 평등사회를 위한 혁명의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의 실행과 반대자 숙청으로 러시아에서는 1,500만 명 이상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중국에서는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약 2,000만 명이 죽었다고 마오쩌둥이 자서전에 기록했지만, 실제로 이 사건 이전 인구와 이후의 인구는 약 6,000만 명 정도의 차이를 보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완벽한 공산주의 국가를 만든다는 이유로 전체 인구의 1/3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약 3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많은 외국의 청년들까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비참한 역사는 평등사회를 이룩한다는 정의감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너무나 당당하게 빚어낸 결과입니다.

황장엽 선생을 그가 북한의 조선노동당 국제 비서로 재직하던 시절에 중국의 심양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국전쟁을 주제로 대화를 하던 중 왜 북에서 먼저 남침을 했느냐 질문하니 그는 전쟁은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정의로운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는 한 마디의 대답으로 전쟁을 정의했습니다. 정의감으로 시작되었다는 전쟁, 그런데 그 정의는 대체 누가 결정하는 것입니까?

이 전체주의 사회의 지도자들은 전쟁보다 더 비참한 결과를 만들었지만 아무런 정죄도 받지 않았습니다.

반면 북유럽과 서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상향평준화를 이룬 평등사회를 실현하여 동유럽의 공산 국가들이 그처럼 원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종교개혁 이후 성경이 기반이 된 국가 제도를 확립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자유를 구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자유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자유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경은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굳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Stand firm in your freedom!’

‘Stand firm(단단히 버티다)’은 적군 앞에서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완전무장하여 굳건히 서는 군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어표현입니다. 이 자유를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어떠한 종의 멍에도 메지 말아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결국엔 빼앗깁니다.

몇 해 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한국 백자를 선보이는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고, 세계 어느 나라 박물관에서도 만난 적이 없는 한국의 명품 도자기들이 그 커다란 전시실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작품의 소장처를 확인하니 일본 주택은행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일본을 향해 강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우리를 압제하더니 이렇게 좋은 문화재까지 도둑질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던 만큼 한편으로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돌아와 일본 주택은행 컬렉션에 대해 알아봤더니 소장하는 대부분의 한국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에 가져간 것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에 한국시장에 나온 것들로 정식 절차를 밟고 매입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한국 미술시장에 나왔던 많은 작품들이 엿장수들이 전국을 돌며 엿을 주고 가져온, 가산이 어려워지자 적은 돈이라도 받고 팔았던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가치를 모르면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속박을 당하는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용사들처럼 빼앗으려고 드는 세력 앞에 ‘굳건히 서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라디아서 5장 13절)

최근 한국사회에서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들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기와 부를 가지고 마약에 손을 대고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며 오만방자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치에서도 야당에 있던 것을 잊고 집권하면 과거에 여당이 했던 적폐 못지않거나 더 한 적폐를 만들어내는 현장을 우리는 매일 보고 삽니다. 갑자기 큰 재물을 갖게 된 부자는 그 귀한 재물을 죄를 범하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유명해지지 않거나 권력을 잡지 않고 가난했더라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았을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자유를 가지고 소중한 것들로 죄를 범하는 경우는 교회나 사회가 거의 마찬가지인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주께서는 소중한 자유로 받은 축복을 죄를 범하는 데 사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몇 년 전 하버드대학에서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빌 게이츠(Bill Gates)를 초청하여 토크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수많은 재산을 소유로 여기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는 두 사람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단순명료하게 답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정신입니다!’

미국의 정신이라는 것은 곧 오직 말씀만을 따랐던 신앙의 선배, 곧 청교도의 정신입니다.

셋째,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이 사랑으로 드러나야만 하는 새 인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모든 율법을 믿음으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서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장애인과 어려운 자들에게 손을 내미셨고 그들을 돌보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손양원 목사님, 서서평 선교사님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은 이 땅의 적폐를 딛고, 믿기 어려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곳곳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만들고 보살피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섬겼습니다.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날입니다. 당시 저는 구호 단장의 자격으로 한국교회 300명의 청년들과 함께 재해현장을 찾았습니다. 도우러 간 현장에서 마주한 비참한 현실에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얄로바시가 진앙지였던 터키의 대지진 발생 때에도 얄로바시에 현지 선교사님들과 함께 120여 채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처참한 빈곤의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난민을 보호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재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한국교회에서 ‘남북나눔운동’ 재단을 만들어 북한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대북단체들이 점차 늘어났고 62개의 단체가 대북지원을 했는데, 전체 지원의 60% 많게는 70%를 기독교 단체가 담당했습니다. 저는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나라를 돕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공산주의 힘의 근원은 미움과 압제입니다. 거기에 반하여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자유와 사랑이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종 노릇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를 위하여 그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종으로 오셔서 섬겨주신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혁명과 국가정신은‘자유, 평등, 박애’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또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것은 미국 독립운동에 불씨를 당긴 그의 유명한 연설의 일부분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유산으로 준다고 할지라도 예수 신앙을 주지 못 하면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이고, 내가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저들에게 바른 하나님의 신앙을 주었다면 모든 것을 준 것이다.’

그가 후손에게 주어야 할 위대한 유산으로 꼽은 두 가지는 자유와 신앙이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시작된 미국 건국에 공헌한 패트릭 헨리는 이 두 가지를 후손에게 물려주기는 것이 생애의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해방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사는 우리는 패트릭 헨리가 소중히 여겼던 가치를 든든히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정치가 펼쳐지는지에 따라서 우리와 후손의 삶이 영향 받을 것입니다.

바른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 날 하나님께 선물로 이 나라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바른 나라를 위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확실한 믿음을, 이 나라를 위해서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일으켜서 언젠가는 평등의 나라, 모든 사람이 거리낌 없이 사랑하고 사는 나라, 그리고 북녘 동포들까지 이 사랑 안에 끌어들이는 통일 한국의 꿈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 한국은 우리의 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선교 한국의 나라로 쓰임 받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하나님께 향합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만 온통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힘을 가졌던 삼손을 기억해보십시오. 삼손은 자기 힘을 자랑하고 주어진 영예나 업적에 취해서 하나님을 떠나 머리카락이 잘려 모든 것을 다 잃고 비참해졌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로 이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과 같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후손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바른 신앙을 유산으로 주기 위해서는 다곤 신전의 기둥에 서서 마지막 기도를 했던 삼손의 기도로 하나님 앞에 다시 나가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다시 은총의 머리가 길러져 우리의 우상이었던 다곤 신전을 부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이 교회와 한국교회가 세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홍정길 목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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