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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

기사승인 2019.09.02  15: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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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길 목사, 생명의빛 예수마을교회 주일 설교

홍정길 목사 /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 홍정길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일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여 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일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말씀이라 함은 대응하는 실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소리에 불과합니다. 탁자라는 말에 실제로 탁자라는 사물이 없다면 그것은 허공에 울리는 소리일 뿐임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인격자라는 말은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격자 되심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가 인격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그 말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믿을 만한데 말은 못 믿겠다’라는 표현은 불가능합니다. 말이 곧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말씀대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예수님을 이 땅에 처음 소개한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앞에서 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인격자이신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은 그냥 서술된 글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됐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책과 차별을 두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말씀. 바로 우리가 붙잡은 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야기 하려면 반드시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인생에 대한 교훈, 책망,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함으로 역사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교훈을 줍니다. 이 교훈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드는 길이 성경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실제로 살아보면 내가 말했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인생이 나인 것을 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옳은 생각을 했다고 자기가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생각을 하지만 나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런 우리를 성경은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줍니다. 이는 성경이 갖는 놀라운 능력이고 힘이며 권세입니다.

오늘은 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훈과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이 역사에서 어떻게 실제로 드러나고 검증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과 생명으로 삼아 이상적인 사회에 근접한 국가를 이룬 나라들이 있습니다. 일부 유럽의 국가들과 미국입니다. 이들은 복음주의 루터파와 칼빈파 개혁주의 교회 그리고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이상적인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몇 백 년의 과정을 통해서 차츰 변모되고 발전했습니다. 때로는 전쟁 때문에 엄청난 피해와 고통이 있었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음속에 품었던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염원했던 국가의 모습은 크게 네 가지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정치입니다.

미국이 독립한다고 했을 때 유럽의 많은 나라가 걱정했습니다. 왕이 없는데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몹시 걱정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곧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투표를 하여 선출된 당선자를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세웠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치 못한 법으로 국가를 경영했기에 사람들은 왕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습니다.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임기 당시에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하며 대통령의 자녀가 임직을 이어 받든지, 아니면 크롬웰처럼 당신의 대 때까지 만이라도 다스려 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교회 헌법은 임직 기간이 3년입니다. 장로나 목사가 투표에서 위임이 되면 3년 후 재투표를 합니다. 대통령 임기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당시 미국의 교회는 임기 후에 재신임되지 않으면 다시 직분을 맡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교회의 전통이 곧 미국 정치에도 적용되어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 직을 두 번 역임하고 물러납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미합중국의 시작입니다. 미국은 그들에게 익숙한 교회의 삶과 규범을 사회와 정치의 근간으로 삼아 가장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따랐던 순종의 열매입니다.

두 번째로 경제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2절에 ‘선한 청지기’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청지기란 ‘맡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에 많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사를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맡기신 일을 행해야 합니다.

세상 이치에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면 그 돈은 내 것입니다. 여기 세계 3대 상인이라 불리는 재리에 밝은 대표적인 상인들이 있습니다. 중국 상인, 아라비아 상인, 인도 상인 입니다. 이들은 장사 수단이 매우 뛰어났을 뿐 아니라, 돈을 버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했기에 예로부터 해당 국가는 수학이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에 비교하여 네덜란드 개혁교회 청교도들은 돈을 잘 버는 과정을 상세하고 오류 없이 기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돈이 내 것이 아니라 여기며 청지기의 자세로 수익의 사용처도 기록하여 재물을 바르게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유럽의 많은 부유한 상인들이 이들의 투명한 경영 자세를 보고 자산을 맡겨 투자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모든 것을 기록하여 투명하게 하니까 사람들이 신뢰합니다. 이 신뢰는 어떤 재산보다 큰 재산이 되어서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부가 모여들어 세계를 관리하는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본인이 대학 당시에 읽었던 막스 웨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인들의 철두철미한 청지기 정신은 오늘 세계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교육입니다.

코메니우스(Johann Comenius)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목사로 사역하다가, 30년 전쟁으로 황폐하게 된 보헤미아에 거주하면서 그곳에 모여든 고아들을 모아 함께 생활하며 교육을 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영혼이 상하거나 노엽지 않도록 했습니다. 코메니우스 이전까지 교육이란 수도원에 맡겨져 매로 엄하게 다스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코메니우스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는 말씀을 교육을 통해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200년 후에 스위스에서 페스탈로치가 그 정신을 계승하여 교육을 발전시킵니다. 이렇듯 현대교육은 코메니우스에 의해서 발전되었는데 이는 성경 말씀의 실제적인 적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넷째, 이전 세계는 노예의 나라였습니다.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노예가 존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 전 국민의 40%가 종의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노예는 물건처럼 사고파는 것이었고, 주인이 어떤 학대를 해도 도무지 문제가 되지 않는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소유물이었습니다.

노예제도의 부조리함은 백인 노예 문제 해결로 점차 개선된 듯했으나,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데려와 일을 시켰던 흑인 노예들의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엄청난 학대로 얻게 된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영국은 근대산업사회의 시작인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번성한 산업을 바탕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식민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노예는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이런 사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합니다. 그러자 그는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공상주의자이자 매국노라 불리며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1789년 5월 12일 윌버포스가 노예제도 폐지를 하원에서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숱한 노력으로 1807년에는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통과되고, 마침내 1833년 7월 26일, 영국의 모든 노예를 1년 내에 해방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병상에서 이 소식을 듣게 된 윌버포스는 있는 힘을 다하여 침대에서 일어나 “주여, 이 날을 나로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쁨 속에서 사흘 뒤에 소천했습니다.

1863년 1월 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은 노예제도 폐지를 결정하는 선언문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평생에 이 선언서에 서명한 것보다 더 옳은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음이 선언된 날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주님의 말씀이 이런 신실한 사람들의 헌신 된 생애를 통해서 역사, 곧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큰 업적을 이룬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명기 30:14)

사실 사회-삶의 문제란 불가사의하고도 신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이 보통의 삶이 바뀌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엄청난 비밀을 몰라서 잘못 사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며 누구든지 아는 것들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던 정치, 경제, 교육, 신분제도 이 네 가지 분야에서만 봐도 결국 개념으로만 있었지 실제로 우리 안에서 이 귀한 것들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말은 말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괴리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실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국민의 문화를 지배하고 삶의 바탕이 됐을 때 비로소 귀하고 아름다운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참된 기독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가진 자에게 베풀라고 가르친다. 권력자에게 겸허하게 직책에 맞는 책임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겸허한 마음을 가져 부유함을 자랑하지 말며, 권력을 남용하지 말 것이다. 그러면 불평등으로 사회가 갈등을 겪는 일이 줄어든다. … 기독교는 또한 장차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 하지만 이름뿐인 기독교는 이런 일을 실천할 수 없다. 참된 기독교만이 그럴 수 있다. 겉보기로의 기독교가 아니라, 속으로의 기독교가 그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선한 일들이 실현되고, 정치가 부패하지 않게 하려면, 참된 믿음을 배양해야만 한다.”

한국교회가 성경공부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아름다운 것과 영광스러운 것이 따로, 우리의 불순종이 따로,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되지 못 하는 것처럼 모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 말씀이 육신이 된 우리 주님처럼 우리의 삶 속에 실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발을 씻겨주신 다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나를 본받아서 발을 씻겨주는 인생을 살아라.”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삶은 이론에 의해서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본에 의해서 전수됩니다. 성경의 많은 위대한 왕과 제사장들의 자녀들이 부모와 매일 함께하며 본으로 가르침을 받는 이 삶이 없어 실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삶을 주고받고 전수했던 한 가족이 있습니다. 이 가족이 삶을 전수하는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도다.’

우리가 바로 사는 것의 유무는 우리 자식들이 제일 잘 압니다. 바통터치를 하려고 했는데 아니거든요?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믿음의 선배나 아빠, 엄마가 터치하는 복음이 진짜가 아니라고 여겨지기에 교회를, 성경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더 말씀에 참여합시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축복을 전수하고 싶으십니까? 그 축복은 말씀이 드러난 삶의 본으로만 전해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 가정은 복될 것이고, 이 나라는 영광스러운 나라로, 구원이 필요한 세상의 빛이 되는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홍정길 목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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