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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도운 선교사 은퇴

기사승인 2019.10.30  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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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요한 목사, "건강 허락되면 또 하고파"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난 그들을 더 돕고 싶어요!“
여태 300명도 더 되는 탈북민들을 살려내고 은퇴한 선교사가 건강이 허락하면 사역지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의욕과 사명감을 드러냈다.

한국계 미국인인 존 윤 목사(81 한국명 윤요한)는 워싱턴주 린우드의 뉴비전교회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그들을 더 돕고 싶다"고 고백하여 주위를 감동시켰다고 지역방송 KNKX가 보도했다. 탈북민들을 돕는 '고향선교회' 대표인 윤 목사는 평소 "탈북민들은 통일을 위해 보내주신 천사"라고 강조해왔다.

   
▲ 존 윤(윤요한) 목사와 그가 탈북시킨 그레이스 조 양. [사진출처: KNKX]

윤 목사는 북한에서 태어나 6.25 전쟁이 갓 시작되던 1951년, 12살의 몸으로 가족 중 혼자 남한으로 넘어왔다. 그후로는 부모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지 알고 싶어 용문산 기도원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윤 소년의 삶은 영원히 변했다. 기도하는 동안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소년의 잔등 위에 떨어져 그를 불태워버린 듯한 순간,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심을 알게 됐다. 소년은 그날부터 삶을 바쳐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윤 목사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북한의 기근과 굶주림과 절망감에 대해 전해 듣자 식량지원을 하기 시작했으나 부패한 관리들이 엄청난 양을 떼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그지없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또 다른 북한인들 곧 중국으로 나왔어도 전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이들을 발견해 그들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윤 목사는 결국 북한에 되돌아가 '지하열차 운전사'로서, 탈북민들을 국경지대를 거쳐 중국 내륙 깊숙이 내보낸 뒤 태국과 몽골 등으로 탈출시켰다. 물론 그들과 그가 겪은 곤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전한 자유를 얻기까지는, 현지에 도착시키는 족족 체포되기가 쉬웠다.

한때는 32명의 탈북민들을 둘 또는 셋씩 중국에서 태국으로 이끌어가기도 했다. 기차와 버스, 오토바이 등으로 마침내 모두들 방콕의 한국 영사관에 도달해 망명하게 되자, 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국 영사님을 만난 순간, 내 할아버지를 뵙는 듯 했어요!"라고 윤 목사는 회고한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탈북민 그룹들을 피난시켰지만, 그 32명을 특히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즉각 19명 그룹을 탈출시켜, 자신의 아파트에 숨겼다. 하지만 누군가 배신을 했다. 출발하려던 당일, 중국 경찰이 쳐들어와 19명 전원을 체포해 북한으로 귀송시켜 버렸다. 마침 집에 없었던 윤 목사 자신은 미국으로 탈출했으나 곧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원래의 이름과 여권으로는 갈 수 없어 합법적으로 갱신했다. 새 이름은 '필립 준 버크.'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다시 난민들을 태워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낭패를 보기 시작했다. 2005년, 어느 중국계 한국인 가이드를 고용해 탈북민들을 몽골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가이드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빙빙 둘러 안내하는 듯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이들은 몽땅 체포됐다.

윤 목사는 이전에도 탈북 여성을 고용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구금된 뒤 윤 목사를 신고해, 윤 목사 자신도 체포돼 중국 감옥에 15개월 수감돼 있었다. 옥중생활은 한 마디로 지옥 같아서 그는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길 꺼린다. 다행히도 미국 외교관들이 그를 도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이름을 바꿔 중국으로 가고 싶었으나, 이번엔 온 가족이 말렸다. 그러나 그의 탈북 돕기 여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도우려고 힘쓴 가족 중에는 당시 11살이었던 그레이스 조 소녀가 있었다.

조 양은 6살 때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5년을 숨어 살다가 중국 경찰에 체포되고 북송되어 교화소에 있은 다음,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거기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윗 또래 아이들에게 고통과 굶주림, 구타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부상 당한 아이들은 구석에 숨어 담요를 덮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 너무나 슬펐어요. 어떻게 이런 나라가 내 나라일 수 있을까요?"

조의 가족이 국경을 넘을 당시, 크리스천들로서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 모두가 북에선 중범죄에 속한다. 모두 도로 잡힌 그들은 이제 처형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 목사가 북한의 6명의 관리들에게 가족 1명당 1만 달러씩의 뇌물을 주어, 강을 다시 건널 수 있게 했다. 현재 조의 가족은 워싱턴 DC에 살고 있다.

윤 목사의 은퇴식에는 탈북민 28명이 참석했고, 조의 모녀도 끼어 있었다. 탈북민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합창도 했다. 그가 탈출시킨 북한인 300여명 중 다수는 윤 목사처럼 지금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윤목사는 자신처럼 '지하열차'를 운전해 줄 차세대를 열망하고 있다.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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