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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있는 두 가지 도성

기사승인 2020.02.03  15: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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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 Joyful Korean Community Church(Texas, Dallas) 담임

   
▲ 김세권 목사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창 19:1-3)

  <길라잡이 >

1.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 고대 가나안 성벽을 보면, 성문에 방이 붙어있다. 그 방에는 사람이 앉는 의자가 다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에 성에 사는 주요 인물이 모여서 회합을 가지거나, 중요한 계약을 맺었다.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건, 그가 거기서 어느 정도 출세했음을 뜻한다. 아마도 지나가는 외지인을 맞는 역할을 했음직하다.

- 후기 유대주의의 문학적 산물 가운데 ‘토셉타’(Tosefta)가 있다. 주후 2세기 경에 완성된 구전 율법 해석서이며, 미쉬나의 부록. 미쉬나를 만든 ‘타나임 랍비’(Tannaim)들이 쓴 책이다. 그걸 읽어보면, “소돔의 부유한 원주민들은 낯선 방문객이 그곳에 찾아오면, 그들이 소유한 재물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날 것을 우려해서 손님들을 겁박하고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는 내용이 있다. 토셉타 역시 신빙성이 있는 문헌이니,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

   
 

- 외부인을 향한 배타적인 소돔 문화와 그들을 맞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단 사실은 서로 충돌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성문에서 외지인을 맞는 역할은 일종의 한직이거나 혹은 방문 목적을 염탐하는 목적을 가진 일이었을 거다. 롯은 거기서 인정을 받았으나, 중요한 위치에 올라서진 못했다. 나중에 롯이 사는 집에 성 사람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린 걸 보면, 롯은 어쩌면 이용당하고 살았다.

2.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 어쨌거나 고대 가나안 사람들은 외지인을 영접하는 것이 아주 흔한 풍습이었다. 롯의 환대를 그것 이상으로 해석할 순 없다. 롯이 천사들에게 대접한 것도 아브라함이 준비한 음식과는 달랐다. 그저 무교병이 고작이었다.

 <묵 상 >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롯이 소돔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외부인을 맞는 위치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소돔 사람이 지녔던 외부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로 보아, 그가 맡은 일은 어쩌면 그저 한직에 불과했거나, 아니면 방문 목적 염탐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외지인으로서 어떻게 그곳에서 이런 정도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나보다.

롯은 일단 성격이 좋았던 걸로 보인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이 헤맬 때에 롯이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한 기억이 성경에는 없다. 또한 아브라함과 동거하면서 재산 때문에 종들이 서로 다투는 형편이 되었지만, 둘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둘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둘 다 사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도 그랬겠지만, 롯 역시 성품이 괜찮았듯 보인다.

성품과 상관없이, 이주자가 타지에서 거주할 때는 누구라도 ‘낄끼빠빠’(낄 곳은 끼고, 빠질 곳은 빠짐)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외지인으로서 원주민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니 말이다. 롯이 추구하던 것이 풍요로움이었다면, 롯 역시 그곳 주민들과 충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했다.

이리 본다면, 롯은 소돔이 멸망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고 해야 한다. 그는 물질이 좋아서 하나님의 동산처럼 보이는 곳을 찾아 헤메던 끝에 소돔까지 왔다. 거기서 피땀을 흘려가며 낄끼빠빠 한 끝에 어느 정도 원하던 것을 얻었다. 그의 속마음에는 혹시 탄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걸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중에 소돔에서 도망하다가 뒤를 돌아본 그의 아내는 롯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실하게 하나님에게 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걸어서 소돔에 갔다. 그들은 반나절 동안 헤브론에서 사해 남부까지 전부 사십 마일이나 걸어야 했다. 그들의 서두름은 소돔 문제가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롯은 절박하지 않았다. 소돔을 보는 시각이 하나님과 달랐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보다 소돔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서지 않았다. 그가 보인 것은 의례적인 환대와 손님을 향한 책임이었다.

우리 곁에는 하나님 도성(the City of God)과 소돔(Secular Culture)이 함께 존재한다. 올해 나는 어디에 더 가까운 삶을 살 것인가? 오늘 하루 나는 어디에 거주하는가?

김세권 목사 mungmok@gmail.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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