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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 그날까지

기사승인 2020.02.10  12: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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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좀 으스스한 저택이 있었다. 지금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의 아주 넓고 웅장한 2층집이었다. 그 집 대문은 안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철 대문으로 대문 안의 마당에는 언제나 사람의 인기척은 없고 바람에 흔들리는 많은 나무들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정확한 소식은 아니지만 풍문에 들리는 말로는 그 집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사람이 살던 집이었는데 우리나라 광복과 함께 일본으로 떠난 후 빈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그 시기까지 왜 빈집으로 있었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오래된 빈집은 언제나 괴상한 소문이 있게 마련이듯이 이 집에 대해서도 귀신이 있다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그 거대한 집을 지나가야만 하는데 어쩌다 해가 진 후, 귀가 하게 되면 늘 공포에 떨었다. 밤이 깊은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해가 서산을 막 넘어간 초저녁이라 해도 걸음걸이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혹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그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은 죽음 같은 공포로 긴장되어 진땀을 빼기에, 등골이 오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에겐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밤길을 갈 때 항상 부르는 지정곡의 찬송이 있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이 찬송은 어디를 가나 밤길을 지켜주는 내 지킴이었다. 그 지킴이 찬송은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반드시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귀신이 있다면 나를 보고 물러가라는 듯 태연함의 여유를 보이면서 불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아무리 찬송을 크게 불러도 무서움은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는 무서운 생각들이 더 들었다. 무서움이 엄습함과 비례로 나는 찬송을 더 크게, 그리고 더 빠르게 부름과 동시에 내 발걸음 또한 더 빨라졌다. 이것은 걷는 것이 아니고 뛰는 것이었다. 빨리 뛰면 뛸수록 숨이 차오르고 내 입에서는 더 빠르게, 더 크게 찬송이 나왔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나 어릴 때의 밤은 지금의 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캄캄했다. 지금처럼 전등이 많지도 않았고 또 켜있는 불빛도 그리 밝지 않았다. 그렇기에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세상은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때는 왜 그렇게 귀신 이야기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많았다. 낮에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이야기도 밤에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나의 풍부한 상상력이 더욱 그것을 부추겼다. 그렇게 무서움을 많이 타면서도 귀신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다. 겁이 많은 나의 모순이었다. 어른이 된 후로는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직도 겁이 많은 편이다. 스스로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반성도 해 보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그렇게 겁이 많기에 자연히 밤에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밤에 나갈 일이 있으면 동생을 구슬려서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것마저 여유롭지 못하고 꼭 나가야 할 일이 있을 경우엔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지킴이 찬송을 부르며 애써 무서움을 달래곤 했다. 캄캄하고 무서운 밤에 나 홀로 걷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손을 잡고 함께해 주심을 상상하며 든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캄캄한 밤이지만 무섭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엄마와 같이 갈 때였다. 비록 달빛도 없는 칠흑처럼 캄캄한 밤일지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날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더욱이 엄마가 나를 업고 갈 때는 무서움은커녕 대낮에 걷는 것보다 더 행복했다.

‘함께’라는 말은 참 가슴 뭉클하고 멋있고 훈훈한 말이다. 또한 혼자라는 말과는 비교가 안 되리만큼 든든함을 준다. 그것도 나를 잘 알고,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함께한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사람들끼리도 그렇다면 하물며 내 인생길에 주님이 동행하신다면 이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없지 않을까? 이렇게 주님이 내 손목을 잡고 내 삶에 동행해 주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일이 순적하게 풀릴 때에는 마치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듯, 도리어 주님과 잡은 손이 갑갑하다고 주님의 손을 슬그머니 놓은 적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님은 언제나 내 손목을 굳게 잡고 계셨고 또 계실 것이니 든든하다.

인생길에 내가 지치고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을 때는 나의 주님은 나를 안고 가실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을 생각하면 감격과 감사의 눈물과 함께 용기가 솟는다.

평생 주님과 동행한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도 평생 주님과 동행한 그 믿음의 선진들 뒤를 따르고 싶다. 그들과 함께 한 주님이 나의 주님이기에 그날까지 동행해 주실 것을 믿는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부러울 것 없다. 주님 잡은 손 놓지 않고 끝까지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그렇게 천국에 가고 싶다.

이 새해엔 한순간도 나 혼자 걷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나의 지킴이 찬송가 가사가 오늘따라 행복과 든든함을 준다.(13.4)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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