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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행가래 / 꿀잠이 행복이다

기사승인 2020.03.25  10: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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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 송길원 목사

개잠, 얕잠, 등걸잠, 통잠, 온잠, 선잠, 꿀잠, 일잠, 몰잠… 잠의 종류를 이르는 말들이다. 한자어로는 숙면(熟眠) 안면(安眠) 정면(靜眠) 쾌면(快眠)이 있다. 게으름을 피워 잠만 자는 타면(惰眠)과 깜박하고 잠에 빠져드는 기면(嗜眠), 잠이 잘 오지 않는 실면(失眠)이 있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불면(不眠)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잠드는 영면(永眠)이 있다. 영면이 ‘깨어날 수 없는 잠’이라면 잠은 ‘깨어날 수 있는 죽음’이다. 돈키호테는 잠과 죽음이 너무도 흡사해서 두렵다고까지 했다.

잠의 종류는 더 있다. 저승잠, 꽃잠, 노루잠, 발편잠… 이를 아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그만큼 우리는 잠에 무지했다. 먹지 않고는 40일을 버텨도 살 수 있다. 잠은 그렇지 못하다. 동면(冬眠)을 하는 동물과 달리 사람은 매일 자야 한다. 매일의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엿새로 알려져 있다. 엿새만 재우지 않아도 회복불능의 뇌손상이 찾아온다. 스탈린 숙청시대에 개발된 가장 잔인한 고문 방법이 ‘잠 안 재우기 고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잔인한 고문이 우리의 일상에 깔려있다면 믿기라도 할까?

   
 

홍익대 유현준 교수(건축학)는 초·중·고등학교의 건물이 창문 크기 빼놓고는 교도소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 공간에 등·하교가 허용된다. 우리 자녀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12년형을 언도 받은 학습수형자(學習受刑者)들인 셈이다.

교도관은 학교가 아닌 집안에 있다. 부모들이다. 자녀들을 지키고 앉아 있다. 감시는 삼엄하다. 부모 눈을 피해 ‘말뚝잠(꼿꼿이 앉아서 자는 잠)’을 잔다. 교도관은 용케 알고 흔들어 깨운다. 귀신이다. 그리고 내뱉는다. “그 머리에 잠이 오냐?” 그 한마디에 자존감은 무너져 내린다. 비참하다. 잠을 이토록 죄악시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일 수면시간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슬립푸어(sleep poor)들로 넘쳐난다. 직장인은 수면 시간이 6시간 6분에 그쳤다. ‘만성 수면 부족’이다. 수면부족은 주의력, 기억력을 떨어뜨려 교통사고를 낼 확률이 높다. 만성피로와 정서 불안정을 가져온다. 우울증을 동반하고 분노조절 장애를 낳기도 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한다. 관계 장애를 일으킨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심장병, 우울증과 같은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면역력 저하로 각종 병에 걸릴 확률도 높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치매다. 이래서 수면 부족을 현대판 페스트라고도 한다.

이 사실을 간파한 의료계(세계수면학회 WASM, World Association of Sleep Medicine)가 나서 ‘세계 수면의 날’이 제정되었다. 2007년의 일이다. 올해는 3월 20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70여 개 회원국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그 주제도 해마다 바뀐다.

꿀잠으로 하루를 풍성하게!’(2008)로 시작된 슬로건은 ‘단잠이 곧 건강’이란 주제에서 ‘잠으로 건강한 나이 먹기’를 두 차례 다루었다. 호흡도 빠지지 않는 주제다. ‘편안한 호흡으로 숙면을’(2012), ‘평온한 잠, 편안한 숨, 건강한 몸’(2014) 올해는 세상으로 확장되었다. ‘더 나은 잠, 더 나은 인생, 더 나은 세상을!’

잠 못 드는 사회를 규정짓는 말 중에 하나가 ‘피로 사회’다. 피로는 자신을 향한 가장 야비한 폭력이다. 정서폭력·신체폭력·성폭력·경제폭력이 타인을 향한 것이라면 ‘피로’는 자신을 향한 폭력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내가 나를 죄수로 만든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시간이 부족한 ‘타임푸어(time poor)’들을 위해서는 ‘대행업’이 있다. 하지만 ‘슬립푸어(sleep poor)’는 대신해 줄 수 없다. 나를 피로 폭력에서 풀어줄 수 없을까? 잠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잠이 행복이다. 성경에서 단잠(꿀잠)은 축복의 상징이다.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였다.

내가 너희 지친 몸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너희 지친 영혼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때에 내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꿀 같은 단잠이었다!’”(렘 23:25~26, TMB)

꿀잠은 마음의 바이러스도 이기게 한다. 잠이 실력이다.

송길원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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