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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성육신’인 하나님의 말씀

기사승인 2020.04.21  15: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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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하 박사의 구약 이야기 (1)

김병하 박사 / 연세대 졸업, 총신대학원 졸업, 영국 쉐필드대학교 구약학 Ph.D, Leeds Korean Church 담임

   
▲ 김병하 박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오래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을 받는 그 당시의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를 사용하셨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오늘과는 다른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계는 있지만 가능한 그때 그 당시의 정황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경 많은 곳에 그때 당시의 문화적인 요소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에는 고대 중동 지역의 문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나타난다. 고대 중동의 신관들, 신화적인 요소들, 법률적인 요소들과 같은 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의 뜻을 담아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셨다. 신약에도 그 당시 그레코-로만 사회의 여러 가지 문화적인 코드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그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당시 문화적인 코드를 담고 있는 많은 비유들을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34)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터넷 문화’를 불과 몇 세기 전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려고 한다고 해도 동일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요소들을 사용해서 오늘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설명해보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늘날의 인터넷 문화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시간과 공간에 머물고 있는 인간의 이성이 다차원의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전하시면서 동시에 우리의 믿음을 도우시기 위해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다. 요한은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 10:37-38)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은 성경의 내용이 비합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이성의 제한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는 여러 가지 기원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창세기는 과학적인 지식 차원의 내용들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시작된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창세기에 보면 우주 만물의 기원, 인류의 기원, 죄와 악의 기원, 구원사의 시작, 선민의 시작 등등에 대한 내용들을 볼 수 있다. 창세기의 원 저자는 모세이지만 그 최종 편집은 후대의 어느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11장은 우주와 인류를 만드신 기사와 문화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12~50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사인 족장사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세기 1장의 구조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질서 정연한 계획을 가지고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볼 수 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시고(1:3-5), 둘째 날에 궁창을 만드시고(1:6-8), 셋째 날에 마른 땅과 식물과 바다를 만드시고(1:9-13),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1:14-19), 다섯째 날에 하늘의 새와 큰 바다와 물의 생물을 만드시고(1:20-23), 여섯째 날에 식물을 먹는 육지 동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다(1:24-31). 그리고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2:2-3) 성경은 기록해놓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내용들을 읽다 보면 얼핏 보아서는 그 순서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내용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6일 동안의 창조 과정은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 날과 넷째 날, 둘째 날과 다섯째 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날에서 셋째 날까지는 창조하시는 세상에 형태(form)를 부여해주는 과정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 형태에 내용들을 채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계획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질서 있게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먼저 있어야 될 것과 나중에 있어야 될 것을 질서정연하게 구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질서 있는 그분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민수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출애굽시 성막 주변에 이스라엘 진영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할 것을 명하시는 질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민 2:1-34).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예언에 대해서 “…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 말하고 있다(31절). 그리고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33절)라고 질서의 하나님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이 주는 교훈

성경은 기록될 당시 최고의 학문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 당시 저자의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되는 만큼 성경에 대해서 더욱 깊고 많은 뜻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각자를 향해서도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창세기 1장의 구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각자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뜻이 있다는 말을 우리는 듣곤 한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믿음의 자리에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깨닫게 될 때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삶을 위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분명한 비전을 세우고 매일 매일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고 고백하고 있다. 쏜 살과 같이 신속하게 지나가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경건의 삶 속에서 세워지는 계획들과 더불어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우리 개인을 향한 귀한 꿈들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각자 개인을 위한 계획과 가정을 위한 계획과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계획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아름답고 귀한 삶의 계획들을 세우고 노력하여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된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병하 박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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