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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교회다

기사승인 2020.05.06  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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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코로나 진단

방동섭 교수 /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석사, 미국 칼빈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 전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글로벌비전교회 담임, 저서로는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선교없이 교회없다> <우리의 선교가 실존입니다>

   
▲ 방동섭 교수

최근 지구촌에 닥쳐온 재앙 수준의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교회가 공적 예배를 중단하고 인터넷 중계나 유튜브 예배로 대신하고 있다. 일부 교인들은 "예배의 장소가 뭐 중요한가?" 하면서 "인터넷 예배가 편하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예배는 '사적 예배'도 있지만 믿는 자들이 한 곳에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 예배'도 있다. '사적 예배'가 '공적 예배'를 대신할 수 없다.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이 체험하는 특별한 은혜는 사적인 예배를 통해 체험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드리는 예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중에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만족해하기도 한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인터넷 교회와 인터넷 예배는 조심스럽게 존재하였고 현대인의 트렌드와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던 추세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여 이제는 기성 교회들도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인터넷 교회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예배는 교인들의 마음속에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예배를 보는 개념으로 고착시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시간을 정하고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공적 예배가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 결과 공동체로 함께 드리는 거룩한 공적 예배 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인간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인간은 한마디로 ‘문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인간은 특정한 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동시에 특정한 문화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성경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문화 창조가 가능한 “문화적인 존재”로 살아가도록 지으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고 하신 것은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인데 이것을 '문화적 명령’(cultural mandate)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땅에서 단순히 생물학적인 종족 번식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독특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섞일 수 없는 독특한 질적 차이라고 본다. 인간이 이 사명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인간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문화가 없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문화가 없다면 더 이상 공동체는 없다.

문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화란 “어느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일정 기간을 통해 형성하거나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 공유된 사상, 감정, 가치, 행동 양식의 통합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실패하였던 가인과 그 후손들이 세워 갔던 공유된 사상, 감정, 가치, 행동 양식의 통합된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어떤 문화의 옷을 입고 있었던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 가인과 그 후손들이 추구하던 문화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하나님을 떠나는 문화” 혹은 “인간이 스스로 법과 원칙이 되는 자율적 문화였다”고 볼 수 있다. 창세기4:16절은 이 사실을 단적으로 표현하면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났다”(Cain went out from the Lord's presence)고 하였다. 따라서 가인이 문화를 더욱 발전시킬수록 가인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 떠나 예배 없는 세속 문화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처음 주신 문화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문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거룩한 예배 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이 처음 이 세상에 존재할 때는 이 거룩한 문화 외에 다른 문화는 없었다. 그러나 가인의 때에 이르러 서서히 거룩한 예배 문화에 도전하는 하나님 없는 문화, 하나님을 떠나는 반역의 문화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그 발전 속도는 가속화되어 세상에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21세기의 크리스천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문화의 홍수 속에 포로가 되어 그 영향권 아래 살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조차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매일 같이 하나님 없는 죽음의 세속 문화를 숨쉬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의 영적 전투의 현장은 바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세속 문화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 없는 죽음의 문화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이다. 그 문화는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므로 에덴동산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오래되고 낡은 무신론적 문화가 현대인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무신론적 거짓 문화를 대항하여 거룩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피 흘리며 싸워온 것이 사실 공적인 예배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거룩한 공적 예배를 지키기 위해 많은 성도들이 순교하였던 것이다.

지금 이 무신론적 예배 문화가 이제는 교회 안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래서 예배는 존재하고 있지만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는 듯하다. 예배의 중심은 사람이 되었고, 교인들은 그저 예배라는 종교 행위에 참여하는 자로 전락되고 있다. 예배의 성공 여부는 예배자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만족했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예배를 어떻게 받으셨는가에 달려있다.

예배가 사람을 만족시키는 종교적 엔터테인먼트의 수준으로 내려간다면 이런 예배는 이교도의 종교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예배를 드릴수록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예배는 공적인 절차와 순서를 따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시간인데. 현대인의 예배는 사람의 감정과 편리함, 자신의 종교적 만족을 위해 자신을 섬기는 편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종교개혁자 칼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선교의 장애물 혹은 선교의 불을 꺼버린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의 선교지는 예배가 무너진 가톨릭교회였다.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교회 안에서 우상 예배로 무너진 것을 보았다. 그런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그가 강조했던 선교의 중심 과제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 이 시대에도 교회가 공동화되고 선교지 현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교회 안에서 진정한 예배 문화는 무너지고 교회 없는 사적인 예배, 더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이교적인 예배 확산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지는 예배가 무너진 사람들 가운데 있으며, 우리는 이 시대에 그런 사람들을 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만나고 있다. 교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품을 떠나 자율적으로 종교 생활하는 자가 점점 늘고 있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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