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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과 제사법

기사승인 2020.05.19  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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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하 박사의 구약 이야기(3)

김병하 박사/ 연세대, 총신대학원, 영국 University of Sheffield Ph.D, 영국 Manchester International College (University of London) 교수 역임, Leeds Korean Church 담임, 저서 ‘Biblical Jubilee Elements and Their Transformation in the Second Temple Period’ (Sheffield)

   
▲ 김병하 박사

출애굽기는 은혜가운데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건져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신다(19: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도 받는다(19:6).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뒤에는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셔서 성막을 짓게 하신다. 성막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로서 하나님이 백성 삼으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이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성막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건축되고 완성된다(35:1-40:33). 출애굽기는 완성된 성막에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 채워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40:34-38).

   
▲ 성막(손에잡히는성경지도, 부흥과개혁사 캡쳐)

이렇게 출애굽기에서 성막이 완공되고 나서 레위기에서는 그 성막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공동체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레위기를 나타내는 영어는 Leviticus인데 이는 ‘레위인들에 관련된’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어휘는 헬라어 번역 70인경의 Λευιτικόν(Leuitikon)에서 온 영어 단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각종 예전들을 집례하고 성결한 삶을 가르쳐야만 하는 레위인들의 역할과 관련된 내용들이 들어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인 ‘이웃 사랑’에 관련된 여러 가지 법률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시내산 아래의 광야에 장막을 치고 1년 정도 머물고 있을 때에 주어진 말씀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레위기는 시작하고 있다(1:1-2).
 

제사법 

레위기 1-7장에는 번제(1장), 소제(2장), 화목제(3장), 속죄제(4:1-5:13), 속건제(5:14-6:7) 등 다섯 가지 제사법이 기술되어 있다. 크게는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레 1:1-6:7)와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레6:8-7:38)로 나뉘어져 있다. 희생제사는 ‘관계 회복’이라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회복될 수 있는 절차인 제사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거듭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4-45). “…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19:2).

‘거룩함’이라고 하는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막을 지으시고 함께 거하시려고 하신 하나님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삶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를 시작하는 처음 일곱 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고 지은 죄들’을 해결할 방도로서 다섯 가지 제사법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되 자유의지를 가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이것은 인간이 언제든 잘못을 저지르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을 하나님께서 감수하시면서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당신의 인격을 담아서 만드신 것은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자율적인 행동에는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도록 하셨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기로 작정하시면서 그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를 미리 생각하셨을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제사인과 제사장의 역할 

레위기에서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가져오는 제사인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제사인이 가져온 제물을 잡고 제사를 드려주는 주체는 제사장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제물을 가져온 제사인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레위기는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제사에 있어서 이와 같은 제사인이 감당해야 할 역할들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고 크다.

지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제물을 가져온 제사인은 흠 없는 제물을 준비해야만 하고(1:3), 가져온 제물에 안수를 하며(1:4), 제물을 잡고(1:5),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들을 감당해야만 한다(1:6).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리거나 바르는 일을 하고(1:5), 제단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은 뒤에 제물을 불로 태우는 일을 한다(1:8-9). 제사를 드리러 제물을 가져온 제사인은 힘들고 고된 일들의 거의 모든 절차를 감당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알지 못하고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의 과정에서 제사인은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제사를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올려드리는 예배도 일반 성도들이 예배 순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배의 순서들을 담당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가져온 제물을 잡고 껍질을 벗기고 각을 뜨는 처절한 과정을 통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서 얼마나 철저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린 후에는 알지 못하고 짓게 되는 죄들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알지 못하고 지은 죄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을 통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죄는 ‘알지 못하고 지은 죄’들 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알면서 고의적으로 짓는 죄들은 용서함 받을 길을 아예 마련해놓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의 의미를 우리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면서 우리들이 오늘날 얼마나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말씀의 채찍인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모든 경우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값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팔아 산 사람(마 13:44)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비밀을 알지도 못하고 그런 기쁨을 누리고 있지도 못한 ‘값싼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부터는 결코 선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성전 뜰만 밟고 더럽히는 그런 믿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 대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려는’(히 12:4) 단호함이 필요하다.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만이 우리들에게 주실 수 있는 ‘값비싼 구원’을 은혜로 받은 것이라고 하는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값비싼 구원의 은총에 반응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김병하 박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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