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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큰 흐름 중 하나 ‘선교’(1)

기사승인 2020.05.22  1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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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로 읽는 성경(4)

방동섭 교수 /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석사, 미국 칼빈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 전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글로벌비전교회 담임, 저서로는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선교없이 교회없다> <우리의 선교가 실존입니다>

   
▲ 방동섭 교수

로마서 1:1-17을 중심으로

성경의 모든 책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지만 특히 로마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과 많은 사랑을 받아온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서에 대해 "광명한 빛이며 성경 전체를 조명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하였다. 성경 전체를 들여다보는 창문으로서 로마서를 이해한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도 유사한 주장을 하였다. 그는 “우리가 이 서신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성경의 가장 심오한 모든 보화로 들어가는 열린 문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복음주의자 존 스타트는 "비단 종교개혁 시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교회가 로마서의 중요성을 인식해 온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한 마디로 로마서가 보여주는 진리의 말씀 위에 존재해 왔다고 할 만큼 로마서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르스(F. F. Bruce)는 로마서가 사람들에게 주었던 지대한 영향력에 대해 "교회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로마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했으며,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복음을 이해하도록 했으며, 영적인 혁명을 시작하도록 했다"고 했다.

   
 

이런 중요성으로 인해 로마서 연구는 매우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로마서 주석 가운데 가장 오랜 된 것은 동방의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 of Alexandria)이 246년경 쓴 주석이다. 그 이후에도 로마서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끊임없이 출판되었고,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로마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와 책들이 이미 출판되었다고 해도 로마서는 그 의미와 해석을 보다 정확하고 새롭게 파악하기 위해 여전히 새로운 연구가 필요한 가운데 있다. 본 논문은 로마서 서론을 중심으로 하여 로마서를 선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는 것이 그 목표이다. 로마서의 서론만 살펴보아도 우리는 그의 서신 전체가 보여주고 있는 선교적 방향성과 함축성을 충분하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II. 로마서의 정체성: 로마서는 어떤 책인가? 우선 로마서의 저자는 선교사로 일생을 살았던 바울이다. 로마서 초두에 그가 이 서신을 기록했던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8)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여 로마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에 보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정도로 확실하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아도 로마서의 바울 저작권에 대해서는 심각한 반대가 거의 없었다. 크랜필드(C. E. B. Cranfield)는 몇몇 학자들이 바울의 로마서 저작권을 부정하고 있지만 호기심을 끄는 정도이고 바울의 로마서의 저작권을 부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논증은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바울의 로마서 저작권은 의심의 대상이나 논쟁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질문은 바울의 저작권보다는 “왜 그가 이 서신을 기록 하여 로마 교회라는 특정한 대상에게 보냈는지” 저작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가 저작 이유의 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 답을 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로마서가 어떤 책인지 정체성에 대해 파악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진 로마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여 살펴본다면 로마서의 저작 동기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큰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복음: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시고 완성하신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로마서 1장 서론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은 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사역의 방향은 하나님의 복음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로마서에 그가 전했던 복음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그가 전했던 복음이 무엇인지 로마서 1장 서론에서부터 다루고 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이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지만 그는 복음의 가장 중요한 성격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관한 것이고, 둘째,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그가 전하는 복음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말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서에 대해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며, 순수하게 표현된 복음이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자주 들었고 많은 두려움을 느꼈던 루터는 1505년 21세의 나이에 에어푸르트(Erfuhrt)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그는 좋은 수도사가 되기 위해 엄격한 규율에 따라 기도와 금식, 금욕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루터에게 수도사의 삶이 천국에 이르는 확실한 길은 아니었다. 루터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길을 알게 된 것은 비텐베르그(Wittenberg) 대학 내에 있었던 어거스틴 수도원의 '탑의 체험'(tower experience)을 통해서이다. 그는 '탑의 체험'을 통해 복음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로마서를 깊이 연구하는 동안 '하나님의 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밤낮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그가 발견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으로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루터는 그 순간에 대해 말하기를 "나 자신 거듭나게 되었고 천국에 이르는 열린 문을 통과한 느낌을 받았다. 성경의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로마서를 깊이 연구하는 동안 마틴 루터는 영적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었고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교회를 향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데 일생을 헌신할 수 있었다.

루터보다 앞서 4세기에 살았던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은 로마서를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삶이 변화되었다. 그가 읽었던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의 고백록을 보면 이 말씀을 읽은 후 그는 "더 이상 읽고 싶지도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모든 의심의 그림자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어거스틴은 방탕한 인생을 끝내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다. 로마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고 변화를 받은 것이다.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마틴 루터(Martin Luther), 웨슬리(John Wesley), 더 나아가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종식시켰던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경험과 에너지를 제공하게 되었던 책이 로마서이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로마서에서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통해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다. 복음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복음을 담고 있는 로마서이기에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교리서신: 많은 학자들이 로마서는 성경 가운데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교리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서의 저작 목적을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려는 의도로 기록한 신학적인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영향을 받았던 필립 멜랑크톤(Philip Melanchthon)은 로마서를 '기독교의 신학적 개요'(a compendium of the Christian religion)라고 했다. 로마서에 대 한 이런 해석학적 전통은 종교개혁 당시에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구원론을 공박하기 위해 '이신칭의'에 기초한 구원론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고 그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서 로마서 해석의 방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요한 칼빈은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볼 수 있는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로마서가 처음부터 공교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조직신학자이면서 로마서 주석을 저술했던 찰스 하지(Charles Hodge)는 로마서를 '조직적인 교리 서신'이라고 하였다. 매튜 블랙(Matthew Black)은 로마서가 당시 사용되던 공식적인 서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신학적 진술이라"고 하였다. 제임스 에드워드(James R. Edwards)는 "성경의 그 어떤 책도 로마서처럼 기독교의 신학과 언어에 족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였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나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로마서를 생각할 때 교리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사도 바울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기록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로마서에는 신론, 죄론, 기독론, 구원론, 성령론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책이 제시하는 것보다도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기독교의 교리의 정수를 담고 있다. 로마서는 일견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기독교 역사의 최초의 조직신학처럼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체계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해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신학 저서를 읽는 것 보다 우선 로마서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교서신: 제임즈 에드워즈(James R. Edward)는 "로마서는 바울의 선교의식 속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서를 선교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할 절실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를 선교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시도는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교리나 조직신학적인 시각으로 로마서를 이해하려는 고정관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회가 이런 고정 관념을 갖게 된 것은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한 로마서에 나타난 교리를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영향이라고 보인다. 물론 로마서에 이신칭의를 비롯한 여러 교리적 진술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이 단지 이런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로마서를 기록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만일 교리를 다루는 어떤 체계적 인 책을 저술하는 것이 바울의 목표였다면 그것은 서신 형태보다는 다른 형태로 저술 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무시간적 교리나 신학 편중적인 시각으로 로마서를 보게 된 이유가 있다면 로마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측면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서신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바울이 활동하던 선교 현장과 그가 진행하던 선교 사역과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로마서는 선교적인 특성을 가진 서신일 수밖에 없으며 만일 로마서를 해석하면서 이 관점을 놓친다면 우리는 로마서를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마서는 선교 현장에서 태동되었고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셨던 새로운 선교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이기 때문이다. 주후 56년에서 57년 경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러 있었다. 고린도에 오기 전에 그는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선교 사역을 했었는데 그의 사역을 통해 우상의 도시였던 에베소에 사는 수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고 그를 높이게 되었고 심지어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마술을 행하는 책들을 불에 태우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우상을 만들어 파는 업자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고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 데메드리오라는 우상 업자가 중심이 되어 그 업에 종사하는 직공들과 업자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그 선동하는 무리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려고 하였지만 제자들과 그의 친구가 되었던 관리들은 그의 안위를 염려하였고 결국 그들의 권유를 따라 몸을 피하게 되었다. 소요가 진정국면에 들어가게 되자 바울은 그곳의 제자들과 작별하고 마게도냐 여러 지역을 거쳐 고린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3개월 머무는 동안 쓴 서신이 바로 로마서였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서가 기록되어진 곳도 주후 1세기 사도 바울의 선교 현장이었던 고린도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당시 바울은 3차에 걸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의 선교를 마무리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A.D. 47년부터 A. D. 57년까지 10년 동안 에게해(the Aegean Sea)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선교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선교 사역이 모두 끝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게해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가 마무리 되면서 그는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 안주하기 보다는 개척자로서 새로운 선교지로 나가기를 원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을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을 넘어 더 넓은 지역으로 전하는 선교 사명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고 그가 선택한 곳은 로마의 서쪽 스페인이었다.

새로운 선교 사역을 위해 준비하면서 그가 생각했던 곳이 제국의 수도 로마에 세워진 교회였다. 그 당시 제국의 수도 로마에 어떻게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바울이 그 곳을 가려고 했다면 그 곳에 교회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누고 그들의 협력을 기초로 당시 그가 로마제국의 서쪽 끝이라고 생각 했던 서바나(스페인)까지 선교하려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갖고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그가 과거에 로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과 공식적인 만남을 위해 로마 방문을 계속 추진했지만 길이 이상하게 막히고 지체되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진정성을 담은 서신을 보내는 것이었다. 바울은 로마서 서론에서 그의 진정성을 보여 주기 위해 비록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지는 못했어도 이미 그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고 친밀한 영적인 교제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로마 방문은 지금 어려운 상태이지만 바울은 언젠가 그곳에 가면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우고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보여주었다. 이런 깊은 영적 교제가 이루어져야 그의 미래 선교 사역에 있어서 로마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 이루어질 그의 로마 방문을 앞두고 바울은 그가 계획하고 있던 새로운 선교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그의 간절한 뜻이 담긴 로마서를 그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바울이라는 사람보다 그의 서신이 먼저 로마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을 담은 서신을 보낸 것은 어떤 면에서 그가 친히 그곳에 간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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