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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큰 흐름 중 하나 ‘선교’(3)

기사승인 2020.06.03  17: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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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로 읽는 성경(6)

방동섭 교수 /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석사, 미국 칼빈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 전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글로벌비전교회 담임, 저서로는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선교없이 교회없다> <우리의 선교가 실존입니다>

   
▲ 방동섭 교수

바울의 복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바울이 로마서 서론에서 다루고 있는 두 번째 큰 주제는 복음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선교 현장에서 전하는 복음의 기원이 무엇이며, 그 내용과 성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때 우리는 바울이 시도하는 선교의 방향성과 목표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자 여러 번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고 하였다. 바울에게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가 시도하려는 선교의 계획도 때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로 가는 길도 결국 열리기는 했지만 죄수의 신분으로 가야만 했다. 그나마 그가 로마로 가는 항해마저 순적하지 않았다. 바다 한 복판에서 광풍을 만나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극적으로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로 가는 길은 바울에게 이처럼 험난하고 어려웠다.

중요한 것은 로마로 가는 길이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을 때에도 바울은 로마와 스페인을 향한 선교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 방문이 그의 예상 밖에 지체가 되자 그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서신을 로마 교회에 보내는 것이었다. 언젠가 하나님이 로마로 가는 길을 그에게 열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 서신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그의 편지 서두에는 선교적 차원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과 함께 그가 전하려는 복음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정체성은 바울 선교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가 선교 현장에서 전하기를 원했던 복음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1) 복음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선 바울이 전했던 복음이 어디서 왔는지 그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음의 기원에 관해서는 바울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신적 기원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의 궁극적인 기원이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표현은 복음의 신적 기원성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 그의 지식이나 사상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므로 복음의 신임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하나님'이라는 단어이다. 로마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는 로마서가 하나님에 관한 책이고, 이 책에 하나님이라는 단어처럼 자주 반복되어 나타나는 단어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바레트(C. K. Barrett)는 "바울의 신학은 하나님이 구원의 근거이시고 또 복음의 근거도 마찬가지라는 차원에서 하나님 중심적이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로마서에서 바울이 모든 주제를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관을 시키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선교 현장에서 전하는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복음을 하나님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John Stott)는 복음에 대해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2)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바울의 복음의 핵심은 '아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복음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결정한다. 칼빈은 이에 관하여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복음의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리스도에게서 한 발짝만 물러나도 복음으로 부터 떠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복음의 핵심인 아들의 자격에 대하여 우선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했다. 주전 650년 경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것임을 예언한바 있다.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도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따라서 선지자들이 예언 한 대로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이 땅에 오는 '아들'이 아니면 그는 결코 구원의 메시야가 될 수 없을 것이다.여기 나타나는 '육신'(σαρξ)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육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이어야 한다. 십자가의 고난은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고난당한 것처럼 보인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인성을 가진자가 실제적으로 당하는 고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칼빈의 적절한 지적처럼 그의 신성의 능력과 생명이 그의 인성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구원의 메시야의 자격은 단지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으로만 충분하지 않다. 바울은 그 '아들'에 관하여 또 다른 자격을 말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다. '다윗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메시야의 육신적인 자격을 말한다면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것'은 영적인 자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하여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므로 하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의 공개적인 실행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고 하였다. 여기 '성결의 영'은 '성령'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다윗의 후손으로 육신을 얻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했지만, '성령'을 통해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였다. 죽음을 정복한 자가 아니면 사람에게 온전한 구원을 줄 수 없다. 기독교와 일반 종교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세상 종교의 창시자는 모두 죽음으로 끝났지만, 기독교의 주인이신 그 '아들' 예수는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였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경험했던 초대 교회의 지도자 베드로가 처음 전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 바로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부활의 메시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이 복음의 핵심이다.

(3) 복음의 역사성은 무엇인가?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의 정체성 대해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다. '미리 약속하다'(προεπαγγειλατο)는 동사는 중간태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약속의 주체인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약속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강조하므로 약속의 신실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약속하다'에 '미리'(προ)라는 전치사를 접두어로 사용하면서 복음 안에 '약속'과 '성취'라는 시간적 연속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기에 그가 전하는 복음이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말씀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두 가지 채녈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선지자들로 말미암아'(δια των προφητων αυτου)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는 과정 속에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참여가 있음을 강조해 주는 것이다. 둘째, '성경에' (εν γρα φαις αγιαις) 약속하셨다고 했다. 바울이 '성경에'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공인된 기록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 '성경'은 바울에게는 구약 성경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 새롭게 나타난 것이라기보다는 구약 성경과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복음의 정체성이 구약 성경의 메시지의 연 속성과 성취성을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복음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통해 오랜 역사의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며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울 에게 맡겨주신 복음에는 역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소개된 것으로 의심 받는 가르침은 그 권위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바울은 복음의 신임성을 역사성에 의해 확립하고 있다"고 하였다. 칼빈의 이런 주장은 당시 카톨릭 교회가 만들어 낸 거짓된 가르침이나 교리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가르침이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이 문제가 되는 결정적인 요인은 역사성을 결여한 급조된 사상이라는 것이다.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날 세상에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다.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셨지만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실 것에 대해서는 선지자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전해졌다. 선지자들이 미리 오실 것을 예언하고 그 예언한대로 오신 자의 복음이 아니면 그 어떤 가르침도 결코 구원의 복음이 될 수 없다.

(4) 복음의 능력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바울이 전했던 그 '아들'에 관한 복음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중요한가? 바로 그 복음을 통해서만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믿었다. 여기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δουναμις Θεου)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바울에 따르면 복음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방향은 그 목표가 정확하다. 단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주거나,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첫째는 유대인 또한 헬라인이라"고 하였다. 모리스(Leon Morris)는 이에 관하여 여기 나타나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이 조합은 인류의 총체성을 제시한다. 복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인종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기 '유대인'과 '헬라인'을 함께 언급한 것은 구원의 가능성에 있어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구원의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방인을 향해 담대하게 나갈 수 있도록 분명한 선교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복음의 보편성'이지 '구원의 보편성'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누구에게나 혹은 어느 종교를 추종 하든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모든'이라는 단어에 한 가지 분명한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믿는 모든 자에 게'(παντι τω πιστευοντι)만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믿음을 통해서만 동등한 구원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거절하거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복음과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υωη θεου)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과 '하나님의 의'라는 두 개념의 관계성을 다루면서 논리적인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복음이 구원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불의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능력이다.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의를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의'의 복음이기에 인간은 이 복음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신적 속성'(attribute)과 '하나님의 의로우신 활동'(activity)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먼저 '하나님의 신적 속성'(attribute)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의로우시다’ 것을 의미하며,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결코 균등하게 보실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의 의의 속성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의 속성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구원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시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의로운 신분(a right standing)을 주시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활동의 결과 인간에게 '의로운 성취'가 다가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바울 서신에서 '하나님의 의' 개념은 하나님이 스스로 의로우실 뿐 아니라 동시에 죄인에게 의로운 신분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칼빈은 “복음 외에 다른 수단으로부터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 서론에서 이러한 적극적인 '하나님 의'가 그가 전하는 복음 안에 분명하게 제시되었음을 강조하면서 로마서 전체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다루게 되는 로마서의 대부분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 그가 서론에서 다루었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중심 메시지를 보다 자세하게 이해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바울은 로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그가 전하는 복음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미래의 선교 사역을 그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준비시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선교적인 계획을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 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로마서를 기록했다. 특히 바울은 로마서 서론을 통해 선교와 관계하여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선교적인 정체성이다.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다. '종'과 '사도'라는 바울의 이중적인 정체성은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을 향한 그의 선교적인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모두 필요한 것이다. '종'은 그의 헌신과 섬김을 의미한다면 '사도'는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감독하는 권위를 의미한다. '종'은 자신의 것을 전혀 주장하지 않는 겸손과 낮아짐이고 '사도'는 주님이 공식적으로 그에게 부여하신 '영적 권위'를 뜻한다.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모든 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사도'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 바울에게 주신 '특별한 정체성'이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바울에게 주신 특별한 영적 권위이다.

둘째, 복음의 정체성이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정체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가 진행하는 선교의 방향성과 목표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그가 선교 현장에서 전하려고 했던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그 '아들' 예수가 중심에 있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또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정복한 부활 생명이 약동하는 복음이다. 바울이 이 복음을 전했던 이유는 한 가지이다. 이 복음을 믿을 때 사람들에게 구원을 얻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확신했던 바울은 그 '아들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이 보여준 선교사의 정체성과 복음의 정체성은 이 시대의 선교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요청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에 헌신한다고 하지만 복음 선교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그들이 전하려는 복음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선교사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의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선교의 고귀한 직무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로마서 서론에서 보여준 바울의 핵심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인본주의적 선교가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신본주의적 선교가 있다. 사람의 선택으로 시작된 선교는 종교 단체를 세울 수는 있어도 주님의 참 교회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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