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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유감

기사승인 2020.06.05  14: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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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먼저 내 친구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의 친구 중에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청년기까지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봉사도 많이 했다. 특별히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가지고 있어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던 중 그곳에서 배우자를 만나 많은 성도들의 축복 속에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한 친구다. 한동안 못 만났다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해 보니 믿음이 꽤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지금 어느 교회에 출석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이 자기는 현재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권사로서 교회 일, 즉 심방과 교회 주방 봉사와 여전도회 일 등에는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일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자신이 어린 시절 학교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집에 계신 적이 거의 없어 무척 서운했다고 한다. 혼자 식사를 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자신의 엄마를 교회에 빼앗긴 것만 같아 교회가 싫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는 예수는 믿지만 자신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간 교회는 안 나간다고 했다.

   
 

물론 이 일은 친구의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친구의 그릇된 판단이나 오해로 인한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교회에 안 갈 충분한 조건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내 친구 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공공 단체나 집 밖에서의 봉사는 많이 하는데 자기가 기거하는 집 안에서는 전혀 봉사와 멀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기 방은 난장판이 되어도 빗자루 한 번, 걸레 한 번 드는 적이 없는데 거리 청소에는 열성을 다하는 자도 있다. 또한 집안 식구들에게 끼니때가 되어도 밥을 제 때에 해 주지 않으면서 교회의 주방 봉사에는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심지어는 병원 호스피스 일은 열성을 다 해 하는데 자기 집안의 아픈 가족 하나 돌보는 데엔 전혀 무관심하거나 아예 돌보려 하지 않는 사람도 보았다. 왜 그럴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봉사하지 않고 밖에서의 봉사만을 고집하는 것은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봉사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에게 하고 싶어 하며, 자신의 기분과 함께 즐거워야만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느 정도 성취감이 있을 때에 하고 싶다는 점이다. 집안에서의 봉사는 의무화된 것으로 늘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또 소소한 작은 일이라 별로 나타나지도 않고 만족감도 없으며 일상의 일처럼 되다 보니 기쁨으로 하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그 수고를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저 당연시하기 일쑤다. 아니, 설령 공을 치하한다 해도 늘 보는 사람에게 듣는 치하니 별로 기쁘지도 않다. 그러나 모르는 곳에 가서 하면 의무감 없는 순수한 희생 봉사처럼 보이니까 만족감도 생기고, 뿌듯함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일을 마쳤을 때 오는 성취감 또한 클 것이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무슨 일을 이루었다는, 보이는 성취가 더욱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때로는 치하도 들을 것이다. “그 사람 참 봉사를 많이 하는 좋은 사람이야.”

기독교인만큼 봉사라는 단어에 익숙한 사람도 없다. 봉사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을 의미한다. 남을 위하여 일하거나 남을 위해 노력하는 것, 혹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을 포함하여 때로는 상인이 손님에게 헐값으로 물건을 파는 것까지를 봉사 범주에 넣는다.

그렇게 보면 봉사는 기독교인의 필수 과목이다. 그렇기에 봉사를 많이 해야 한다. 나이 들어 갈수록 오래 살려면 더 많은 봉사를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육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우울증에도 안 걸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봉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다 한 후에 봉사를 한다면 봉사할 사람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봉사를 하는 것은 자신의 설 자리와 앉을 자리를 구분 못하는 미련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자신의 가족에게 마음 씀에서나 물질에서나 인색한 사람이 남에게는 아주 호의적이고 물질도 헤프게 쓰는 사람도 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봉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큰 사람, 큰일을 위해 즉 대외명분이 있는 일의 봉사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작은 일과 작은 자를 위한 봉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봉사에는 내가 꼭 해야만 하는, 나밖에 할 사람이 없는 봉사가 있고, 반면에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봉사도 있다.

이 세대의 봉사는 어쩌면 자기만족의 봉사가 만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은 말씀으로만 존재할 뿐 왼손이 하는 일이 자신의 입지를 세워 많은 사람으로 존경을 받으려는 숨은 야심은 없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진정한 봉사란 원래 드러내지 않고 해야 하며, 드러남을 원하지 않아야 하고, 또 자랑할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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