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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거룩하라

기사승인 2020.06.08  13: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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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하 박사의 구약 이야기(4)

김병하 박사 / 연세대, 총신대학원, 영국 쉐필드대학교 구약학 Ph.D, 영국 Manchester International Christian College(University of London) 교수 역임, Leeds Korean Church 담임, 저서 ‘희년 사상의 영성화’

   
▲ 김병하 박사

‘거룩함’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코데쉬(קֹדֶשׁ-qodesh)’인데 이는 ‘구별하다’라는 어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의 사용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영역에 있게 되는 것이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께 구별된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구약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뒤에 그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성막을 만들게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 성막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며 함께 하셨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절기들을 제정하여 기념하도록 하셨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들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야웨 하나님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념하고 이어지는 자손들에게 가르쳐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잊혀진 시간들이 되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공간의 거룩함과 등급

성경은 성막 공간의 거룩함이 그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져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성막 밖에서 성막 안으로 들어갈수록 거룩함의 정도는 커진다. , 성막 뜰에서 성소로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룩함의 정도는 커진다. ‘성막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다가올 수 있는 장소였다. 성막 뜰을 지나서 이르게 되는 ‘성소’에는 금촛대와 떡상과 금향단이 있는 거룩한 장소였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즉, 욤 키푸르( יוֹם Yom כִּיפּוּר Kippur)라고 불리는 대속죄일인 7월 10일에 들어가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는 사역을 감당했던 지극히 거룩한 장소였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나타낸 성막은 지성소를 향하여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거룩함의 정도가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의 거룩함도 그 등급이 나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일상의 평범한 시간에서 절기들과 안식일로 그리고 대속죄제일로 갈수록 거룩함은 더 커졌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상시에 일을 하며 지내는 날들은 일상의 평범한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해나 달을 맞이하는 날이나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과 같은 절기들은 일상의 날들보다는 거룩한 날들로 지켰다. 이름이 붙여져 있는 절기의 날들을 민족적인 기념의 날로 정하고 그 날에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를 나누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였고(레 23:4-8), 칠칠절은 첫 곡식 수확을 할 수 있도록 해빛과 비를 적절히 허락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였으며(레 23:15-22),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동안 헐벗고 굶주리지 않도록 먹이시고 인도해주신 야웨 하나님을 기억하며 온 민족이 지킨 절기였다(레 23:33-43). 안식일은 야웨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을 생각하며 온전히 그분을 예배하는 거룩한 날이었다(출 20:8-11). 그리고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 번 유대력으로 7월 10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야웨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 받는 거룩하고 거룩한 날이었다(레 23:26-32).

이스라엘 백성들과 거룩한 삶

말씀이 보여주고 있는 시공간의 거룩함의 등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들을 주었을 것이다. 하나는 일상에서 지내는 삶 속에서 잊혀지기 쉬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들 가운데 있는 성막을 보면서 그리고 특별한 절기들을 지키면서 끊임없이 되새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를 살피고 자신들의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정결례들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거룩함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웨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과 기념 절기들을 염두에 두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들 자신들도 거룩함을 지키며 은혜 안에 머무르려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율법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하나님 백성으로 머물게 해주는 은혜이면서 동시에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되었다.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에 이방의 우상과 혼합이 되어 우상을 좇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기준이 되었다. 야웨 신앙의 언약적 순수함을 지키지 못했던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그리고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민족적인 슬픔을 겪게 된다.

바벨론 이방 땅에서의 포로민의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하신 야웨 하나님의 백성이 나라를 잃게 된 상황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던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던 잘못을 깨닫고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다시는 이방에게 나라를 잃는 수모의 시간을 가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주어진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 율법에 안정적인 둘레를 치고 그에 대한 해석을 더하게 된다. 이렇게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한 의도와 마음은 귀한 것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율법에 더해진 형식만을 지키려고 하는 일들이 늘어만 갔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신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율법의 본질적인 의미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잊어버린 유대인들의 잘못된 율법관을 꾸짖으신 것이었다(마 23:23).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마음

출애굽 이후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나가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하고 신실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 율법에 안정적인 둘레를 치며 해석을 더해갔던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의 처음 마음도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의 풍요를 동경하며 야웨 신앙을 이방 신앙과 혼합시켜 나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대항해서 높아진 거룩하지 못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한 율법에 둘레를 치며 그 정신을 지키려고 했던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율법의 둘레의 덧붙여진 것들에 대한 해석인 장로들의 유전만을 지키며 높은 마음을 가졌던 후대의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은 거룩하지 못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들 마음 가운데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하는 거룩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시공간 거룩함의 등급이 주는 교훈

오늘날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된 우리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날짜와 절기를 지킬 필요는 없다.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율법적인 요구사항들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엡 2:13-15)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과 관련된 가르침을 주실 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야야 될 것’(마 5:20)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은 버려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마음을 담은 예전들을 모두 부정하라는 가르침은 아닐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정성껏 마음을 담아 드리는 모든 것들은 지금도 우리들이 따라야 할 일들인 것이다. 이런 참된 경건의 모습들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일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만큼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마음을 모으고 준비해서 올려드리는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자유한 우리들은 장소와 날짜와 특별한 절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장소와 시간들이 있다. 교우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예배처소와 주님의 삶과 관련된 기독교 절기들이다. 주님의 백성들은 주일을 맞이하면서 그리고 여러 가지 기독교 절기들을 지나면서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께 예배를 드리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를 귀하게 여기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해서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를 바라보며 거룩하신 야웨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기억해야 할 절기들을 지키면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 역사를 후손들에게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새이스라엘 백성된 우리들도 특별한 시공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며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마 27:51) 막힌 담을 허시고 율법을 이루신(엡 2:14-15) 예수님을 생각하며 경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가지면서도, 그 경건의 형식이 주는 의미들에 감사하는 참된 믿음이 오늘 우리들이 가져야 할 하나님께 구별된 경건한 마음일 것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 마음 가운데 이루어진 성전과 그 마음 성전 속에 임재해 계신 분의 거룩함을 느끼며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분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병하 박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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