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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큰 흐름 중 하나 ‘선교’(2)

기사승인 2020.06.19  1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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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로 읽는 성경(8)

방동섭 교수 /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석사, 미국 칼빈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 전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글로벌비전교회 담임, 저서로는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선교없이 교회없다> <우리의 선교가 실존입니다>

   
▲ 방동섭 교수

애통함: 보내는 선교사와 가는 선교사 모두는 두 가지를 위해 울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의 죄악성을 보고 울 수 있어야 하고, 죄로 물든 선교지의 영혼을 바라보며 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반드시 “애통하는 자이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심령이 가난한 것’과 ‘애통하는 것’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대부분 애 통하는 자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οπε νθοντες)는 단지 슬퍼서 우는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죄와 관련하여 우는 자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죄의 심각성과 죄가 가져온 결과를 직시하고 안타까워서 우는 것이다. 특히 죄로 인해 무너진 자신의 모습과 세상 속에 깊이 파고든 죄악의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워 우는 것이다.

그들이 일하는 현장은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보다는 대부분 인간의 죄악이 가져온 상상하지 못했던 참상과 그로 인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선교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단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자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의 죄악성과 자기 파괴적인 경향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슬픔은 ‘직접적이든지 혹은 간접적이든지 죄와 연관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현장에 깊이 스며든 이러한 죄악의 참상과 죄로 인해 찾아오는 깊은 고통을 바라보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보내고 가는 선교사는 두 가지를 위해 울어야 한다. 우선 자신의 내면에 거하는 지독한 죄악성을 보고 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스타트(John Stott)는 ‘애통’을 ‘회개의 슬픔’으로 해석한다. 로이드 존스는 “자신을 진솔하게 직면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검토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반드시 슬퍼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제일 먼저 남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악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에 거하고 있는 죄악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체험한 후 탄식하며 말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다”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거룩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누추한 죄악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 앞에 드러나지 않을 죄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선 자는 누구나 자기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발견하는 체험을 가진다. 남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악이 보이고, 지금까지 거짓으로 살고,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남을 공격하고, 입술과 마음으로 범죄 했던 자기의 추한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애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자신은 전혀 죄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사악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또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볼 수 없다면 그의 사역은 바로 거기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역자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정확하게 만나고 그의 거룩함을 체험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깊은 죄악 가운데 머물고 있었는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선교 현장에서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이런 기도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보았을 때는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된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게 되고 회개하는 자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천국의 실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 기독교 선교의 활동이 침체되고 무너지는 이유는 모든 형태의 사역자들이 현장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사역을 잘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매일 매일 다가오는 수많은 일로 인해 진이 빠질 정도로 열심을 내고 수고의 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때로 자신의 죄악된 것과 부패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현장은 서서히 침체되어 가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백성들 앞에 나서기 전에 우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목도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악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인간의 죄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 순간 하나님께 엎드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회개하였고 용서를 받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수시로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는 자세만이 그들의 영적 침체를 막는 길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악한 모습을 직시하고 애통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에서 죄악의 노예로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도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애통하는 마음이 선교사역자의 마음에 가득 차고 넘쳐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매일 매일 죄에 빠져 얼룩진 불쌍한 영혼들을 만날 때 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이런 애통하는 마음이 한 영혼이라도 더 건지려는 구령의 열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Lloyd Jones)는 진정한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누구든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그는 “전 세계가 건강하지 못하고, 불행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죄로 인해 일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애통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사실 이러한 애통하는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오셔서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의 결과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애통하면서 회개하는 자에게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 그 위로가 무엇인가? 이사야가 성전에서 회개할 때 하나님은 핀 숯을 그의 입에 대시고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해졌다"고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용서함을 받는 경험이야말로 하나님이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이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는 이렇게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그의 위로를 체험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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