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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참 스승들은 어디에?

기사승인 2020.06.29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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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10)

김정훈 교수 / 영국 더람(Durham)에서 제임스 던(James Dunn)의 지도로 석사를, 영국 글라스고(Glasgow)에서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의 지도로 박사를 취득하였고, 백석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다 올해 2월 정년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The Significance of Clothing Imagery in the Pauline Corpus’ (T&T Clark), ‘바울 서신 연구’ ‘사도들의 설교와 신학’ ‘약속, 성취, 그리고 하나님 나라’ ‘작은 구름 한 조각’ 등이 있다. 현재는 B and C Mission Center 대표로 있다.

   
▲ 김정훈 교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과 바울의 사명(엡 3:1-13)

바울은 이 본문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과 그 계획 안에서 자신이 놀라운 계시 체험을 통해 복음 사역자가 된 사실에 대해 진술한다. 그는 특히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회론적 통합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교회론적-수평적 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개괄적 이해를 보다 상세한 그림으로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선행 질문이 필요하다.

첫째, 1절과 2절 이하의 문법적 관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한글개역개정은 1절을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말하거니와”라는 동사가 없다. 그렇다면 1절과 2절 이하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학자들은 이런 경우를 다이그레션(digression) 곧 문학적 일탈이라고 본다. 이것은 누가 무슨 말을 하다가 갑자기 다른 말로 전환하여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말을 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부분도 전체적으로는 보충적 기능을 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나는 50년 만에 헤어진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어 한잠도 자지 못했는데, ‘아, 그런데 내가 내려올 당시 선천지역 교회들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어. 교인들은 목사님한테 지금 바로 떠나시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우니···’ 그래서 평양에 도착한 당일에는 어지럼증 때문에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었어···”라고 했다면, 여기서 홑따옴표 부분이 다이그레션이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주어를 꺼냈다가 갑자기 보충하고 싶은 내용(2-13절)이 떠올라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앞의 1-2장에서 기록한 수 많은 이야기들을 이 일탈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체험과 결부시켜 교회론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부기(付記)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둘째, 3절의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가 어떤 기록을 가리키느냐 하는 것이다. 앞에서 암시한 대로 나는 이것이 1-2장 내용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본다. 바울은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는 에베소서 1장 초두에서부터 계시를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우주적 스케일의 신비한 이야기들을 종말론적-교회론적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5장에서는 “이 비밀이 크도다”라는 함축적 언어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묘사한다. 그럼 본문 내용을 살펴보자. 1절은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로마로 압송되어 가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체포되어 2년 정도 가이사랴에서 구금생활을 하던 중에 로마로 보내져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이유를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 된 나”라는 말로 표현한다. 헬라어 원문에는 이 어구가 “그리스도 예수의 수감자인 나”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바울이 문자적으로 신체적 수감 상태를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참조. 몬 1:1, 9; 딤후 1:8). 바울은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로마감옥에서 2년 정도 구금생활을 한다. 당시 유대 종교권력과 로마제국의 정치권력이 복음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얼마나 완강하게 저항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땅에서는 오늘날 그리스도 때문에 신체구금을 당해야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는 지금도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구금과 신체적 위해(危害)를 당하고 심지어 순교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안전한 곳에 사는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1절은 바울이 옥중에서 드리는 이방인 수신자들을 위한 기도의 서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13절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특별 계시를 통해 그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 주셨다고 증언하면서 그 비밀이 무엇인지 밝힌다(2-6절).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비상한 체험을 한 사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서 듣고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체험한 사도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체험한 은혜의 경륜이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난 사건을 가리킨다. “경륜”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의 번역으로 이 단어는 “경영, 관리, 관장”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바울의 인생을 다루셨던 것이다. 사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삶을 경영하신다. 이 경영은 독특한 것이어서 당사자인 우리 자신에게도 공동경영권을 부여하시고 당신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바울의 경우 하나님은 그가 유대교 공권력을 부여받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결정적으로 그의 삶에 개입하시어 그에게 놀라운 비밀을 계시해 주셨다. 바울은 그때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놀라운 비밀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동격 소유격으로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이 어구는 “그리스도가 핵심인 하나님의 비밀,” 또는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장의 카드였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기까지 그리스도는 거의 흙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배와 같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은 다른 세대 곧 구약시대에는 확연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시대가 개막되자 성령께서는 그 비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고, 이들은 그것을 세상에 확연히 드러내어 알렸다. 신약시대에 그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복음전파 사역을 통해 온 인류에게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리스도의 비밀곧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는, 하나님이 숨겨놓으셨던 비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유대인들로부터 소외되었던 이방인들도 이제 복음을 믿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공동상속자들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공동지체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공동참여자들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믿음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가 됨으로써 영적으로 놀라운 신분을 갖게 되었다는 교회론적 진술이다. 교회는 이와 같이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급상승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와 변화, 감사, 헌신, 성장이 필요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만 무슨 영적 특권을 가진 것처럼 행세한다면 그는 복음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자다. 이신칭의를 통한 구원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같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성별적 차이를 초월하여 고도의 조화와 질서 가운데 공동의 영적 특권을 누리며 세워져 간다.

둘째,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그의 비밀을 계시하셨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하여, 자신의 사도적 사명에 대해 언급한다(7-13절).

(1) 바울은 먼저 사도로서의 자신의 자격에 대해 언급한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7절). 이것은 그의 다메섹 체험에 대한 회상으로 자신이 사도로서 확실한 자격을 갖춘 자라는 것을 공언하는 내용이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속에 들어와 꿈틀거리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분이 자기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시어 자기를 복음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선물”이란 신령한 은사를 가리킨다(참조. 엡 4:7). 바울은 여러 가지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특히 지식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가 탁월하였다.

교회에서든 해외에서든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가 목사라고 하거나 선교사라고 할 때, 최소한 그 사람이 정규 신학수업을 밟고 공적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 소속 교단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것은 마땅하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스스로 자기 손을 얹어 안수(?)를 받고 “태평양 노회” 소속 목사가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한 교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교회를 떠난 어떤 사람이 다른 교회로 가서는 장로라고 거짓말하고, 창세기도 찾을 줄 모르는 어떤 여집사는 다른 교회로 가서 자기가 권사라고 소개한단다. 목사의 이름으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 교회도 성경도 모르고 신학에 대해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이 교회의 수장인 것처럼 행세하고 자신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큰소리치는 사람들 중에는 제대로 신학수업을 받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단들의 경우는 이 경우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여 그들의 행동과 글들, 발언들은 너무도 저급하여 유치하다라는 말조차 과분할 정도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도적 인성과 지성과 영성과 실천력을 갖춘 사람을 교회의 일꾼으로 세울 권한과 의무가 있다.

(2)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진술함으로 자신의 사명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를 시도한다.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8절)라고 소개한다. 이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전 15:9)라는 표현이나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라는 표현보다도 더 강한 표현으로, 자기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나 회심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모질게 핍박했던 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부터 나오는 자기 묘사로 보인다. 이러한 지속적 자기성찰과 더불어 바울은 사도라는 직분이 끝없이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직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선봉적 위치에 있었을지라도 마치 만물의 끝자락에 앉은 자 같이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고 바른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가 전도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향해 자신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 하려” 하지 않고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고후 1:24).

그럼 바울은 자기에게 은사를 주어 교회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확신하였나?

첫째,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희생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힌 증오의 담을 제거해 버리고 교회론적 화목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그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 나라 시민권과 하나님의 가족의 신분을 부여해 주신 분이시다. 그는 교회의 머리로서 몸인 교회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빌 2:3). 바울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뜻이라고 확신하였다. 교회의 일꾼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자기가 전하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부요한 분이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지를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신 안에 감추어 두신 “비밀의 경륜”(오이코노미아 투 뮈스테리온) 곧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의 대역사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지 사도들을 통해 알리기 원하셨다. 이것은 “비밀,” “경륜”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1:9-10의 내용과도 에코가 있는 내용이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여전히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의와 구원, 부활, 영생, 영원한 안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먼저 믿는 우리는 사명감과 담대함으로 우리가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입술과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의 비밀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전하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방인 지역에 교회를 세우게 하여 악한 영들(“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당신의 무한한 지혜를 알리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게 함으로 악한 영들에게 자신의 무한한 지혜를 알려 그것들로 공포에 떨게 하고자 하신다. 교회의 존재는 하나님의 사탄 제압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악한 영들에게 승리를 선언하셨을지라도 주의 재림 때까지 그것들은 여전히 활동을 허용받고 있기에, 부패한 인간에게는 패잔병 같은 그것들의 행동도 가공할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므로 교회의 존재를 통해 그것들을 제압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사탄의 영들에게 당신의 초월적 지혜를 알리시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꾼들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복음을 들은 자들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고, 교회를 통해 사탄의 영들을 제압하시는 일 들이 얼마나 신비하고 장엄한가? 교회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고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사악한 행위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 무지의 결과물들이다.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교회 간판을 걸고 인간의 물질적, 종교적 욕구를 채우려는 천박한 행위는 인류 구원이라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숭고한 계획과 성취라는 황금 비단에 낡고 더럽고 냄새나는 천조각을 갖다 대는 저급한 행위이다.

교회야말로 하나님이 세상에 두신 기관들 중 최고의 기관이다. 교회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선언이며 또한 인간이 죄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받고 최상의 존재성을 실현하는 신령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확신 가운데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환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자신의 환난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일제의 탄압과 공산당 치하에서 기개 있는 신앙을 보여준 한국교회 순교자들이 한반도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의 영광인 것처럼 말이다. 복음진리를 곡해하는 거짓 지도자들과 인간의 종교성을 이용하여 교회 이름을 걸고 불의를 자행하는 이단들과 맞서 묵묵히 고난을 감내하는 교회의 참 스승들을 보고 싶어 하는 시대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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