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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의 환희를 얼마나 체험해 보았는가?

기사승인 2020.07.06  13: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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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11)

김정훈 교수 / 영국 더람(Durham)에서 제임스 던(James Dunn)의 지도로 석사를, 영국 글라스고(Glasgow)에서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의 지도로 박사를 취득하였고, 백석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다 올해 2월 정년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The Significance of Clothing Imagery in the Pauline Corpus’ (T&T Clark), ‘바울 서신 연구’ ‘사도들의 설교와 신학’ ‘약속, 성취, 그리고 하나님 나라’ ‘작은 구름 한 조각’ 등이 있다. 현재는 B and C Mission Center 대표로 있다.
 

   
▲ 김정훈 교수

바울의 두 번째 기도(엡 3:14-21)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또다시 기도한다. 전체 여섯 장(章)밖에 되지 않는 성경에서 그가 수신자들을 위해 두 번씩이나 기도하는 것은 그의 13개 서신서 중에 이곳이 유일하다. 그는 3장 1절에서 문장을 마무리하지 않고 갑자기 멈추고 2절부터 다른 말로 넘어갔는데 사실 그는 수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를 마음에 품고 있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주(主)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의 육체의 건강과 평안, 위험으로부터 보호, 지혜로운 삶의 경영, 행하는 모든 일의 형통, 물질적 필요의 공급, 목적의 성취 등을 위해 기도하고, 또한 영혼의 건강과 신령한 지혜, 견고한 믿음, 성령 충만, 자기성찰, 변화와 성장, 영적 분별력, 사탄의 유혹으로부터의 보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 환난 중에 인내와 연단, 자기통제, 주와 동행,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소망의 삶,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삶 등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기도하나? 응답의 환희를 얼마나 체험해 보았는가? 우리가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든, 침대에 걸터앉아 스치듯 기도하든, 길을 가며 기도하든, 누워서 신음하며 기도하든, 바닥에 뒹굴며 기도하든, 의자를 부둥켜안고 들었다 놓았다 쾅쾅거리며 기도하든,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씨름하듯 기도하든 ···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응답하기를 기뻐하신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14-15절).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는 믿는 모든 자를 “하나님의 권속”(2:19)이라고 지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가족(식구)이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시고, 우리의 공급자이시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들로서 당신의 식탁에 둘러앉도록 허락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무릎을 꿇고 빈다는 말로 자신의 기도의 자세를 묘사한다. 이것이 은유적 표현이든 아니든 그는 최대의 존경과 겸손, 항복, 간절함, 헌신의 자세로 아버지께 나아간다.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자는 그분의 권세와 위엄과 존귀와 능력과 영광 앞에,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외식적이고, 뻔뻔스럽고, 거만하고, 영혼이 누락된 듯하고, 주술 같은 기도가 난무하고 있는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인지, 천하만국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꼭대기로 납치되어 가서 마귀에게 무릎을 꿇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도가 얼마나 많이 교회당 공기를 때리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부르짖는 하나님은 우주 꼭대기보다도 높으신, 하늘들 위의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존귀를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라고 묘사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인격적 존재들에게 그들의 종족을 따라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이시다. 자녀의 이름은 보통 아버지가 짓는다. 이런 행위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권위를 함의한다. 타락 전의 아담도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짐승들에게 각각의 특징을 따라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던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표를 달고 한 인격체로서 지구 위를 걷고 있는 것은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의 기도 내용은 너무도 영적이고, 너무도 풍성하다. 그가 인간의 물질적 필요를 부인하기에 영적인 기도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로서 에베소 교회의 형편을 살펴볼 때 그들에게 긴급한 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물질적 필요가 긴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빈 깡통처럼 속이 비어있어서 문제인 경우가 허다하다. 영적 빈곤의 필요를 먼저 충당하지 않는다면 물질의 공급은 일회성 처방으로 그칠 경우가 너무도 많다. 기초석을 기둥 꼭대기에 둘 수 없듯이,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인 문제, 내면의 공허가 먼저 해결되어야 물질도, 세상의 명예도, 인간관계도 유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기도는 1:15-19에서처럼 영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복해서 암송하며 간구해야 할 내용이다.

바울은 본문 16-19절에서 기도의 내용을 병렬식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 네 절이 한 문장으로 된 14-19절의 큰 일부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긴 문장이 한 통으로 짜여저 있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기도의 내용을 구분할 것인지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체 내용이 기도문이기 때문에 어느 대목을 주목하든 우리는 영적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원인문이든 귀결문이든 상관없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내용들을 하나씩 분류, 정리하여 6가지 항목으로 열거하고자 한다. 나는 한글개역개정이 헬라어 원문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어 나의 사역(私譯)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따라 해설을 진행하고자 한다.

16 그가 너희에게 그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17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잡히게 되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어, 18 너희가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엇인지 깨닫고,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에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노라.

첫째,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소서. “그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고”(16절). 하나님의 부요하심, 그의 영광의 부요하심은 믿는 사람들을 강하게 만드신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능자이시다. 그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다. 그는 이 모든 부요로 당신의 백성을 견고히 세우신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그들의 속사람을 강하게 하신다. 그는 당신의 영을 믿는 사람들에게 보내시어 영적 생명을 공급하시고, 믿음과 확신을 주시고, 위로와 평강을 주시고, 담대한 마음을 주시고, 용기와 소망을 주시고, 사탄 권세와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속사람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강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려면 속사람이 강해져야 한다.

둘째, 뿌리가 깊어지고 터가 잡히게 하소서.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잡히게 되어”(17절 상). 교회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폭풍우 몰아치고 홍수가 날 때 다 쓸려가 버린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주렁주렁 매달린 복된 열매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공동체나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비결은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고, 생명력 없는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믿는 자 개인이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뿌리를 깊게 내린다는 것은 터가 견고히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그리스도가 그들 마음속에 있게 하소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어”(17절 하). 믿음이 없는 자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수 없다. 그리스도가 믿는 자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가 약속하신 동행을 의미한다(참조. 마 28:20). 믿는 자의 내면에 그의 거하심은 어떤 동행보다도 구체적이고 밀착된 동행이다. “거한다”(카토이케오)는 것은 자리를 잡고 산다는 것인데, 그리스도는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는 한 내 안에 거하실 수 없다. 그는 남의 땅에 불법 건물을 짓듯 내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내 속에 터를 잡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 곧 받아들임을 뜻한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

넷째, 하나님의 비밀을 입체적으로 깨닫게 하소서. “너희가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엇인지 깨닫고”(18절). 이 내용이 한글개역개정에는 19절에 나온다. 하지만 원문에는 정확히 18절에 나온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시행에 관해 깊이 깨닫기를 소원하였다. 우리는 세상에서 수많은 지식을 습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실현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방랑자와 같다. 본문은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엇인지 적시해 주지 않기 때문에 무엇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어구를 한글개역개정을 따라 읽는다면, 이 사중(四重)의 입체도형적 개념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관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는 대로 원문에서 이 어구의 위치가 18절이라면, 이 입체도형적 개념들은 앞에 있는 어떤 중요한 내용에 관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나는 그 개념들이 앞에서 의미심장하게 언급된 “그리스도의 비밀”에 관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바울이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히든 카드(hidden card)인 그리스도의 비밀을 입체적으로, 심도 있게 깨닫게 되기를 간구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의 비밀의 너비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자만이 피조물의 근원과 역사의 의미, 우주의 궁극에 대해 알 수 있고, 사명감을 가진 존재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추가적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이 에베소서 1-2장에 기록된 교회론적 가르침들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 되고, 함께 하나님의 복된 언약의 참여자들이 된 사실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다섯째, 지식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19절 상). “지식을 뛰어넘는”의 뜻은 “지식을 능가하는, 지식을 초월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의 범주에 머무르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어떤 사람이 복음에 대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 지식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복음에 있어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입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의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다(참조. 롬 5:8). 그의 십자가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희생적 죽음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 제물이 되셨다.

여섯째,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히 채워주소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에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노라”(19절 하).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은 그의 존재와 능력과 생명과 영광을 가리킨다. 믿는 자들은 이 모든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믿는 자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져 있을 때 그는 최상의 부요를 누릴 수 있고, 사탄의 침투를 막아낼 수 있고, 세상의 험한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라고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기원한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이”라고 지칭한다(20절). 이 칭호는 기도의 응답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서 능력으로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당신의 영을 통해 성도들에게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의 능력은 성도가 간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반응하신다. 바울은 하나님이 성도가 소원하며 간구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확신한다. 바울은 그러한 하나님께 교회론적이며 기독론적인 송영(doxology)으로 에베소서의 교리적 부분을 마친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병치(倂置)는 에베소서가 교회론에 초점을 맞추며 동시에 기독론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해 계시다. 하나님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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