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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큰 흐름 중 하나 ‘선교’(5)

기사승인 2020.07.09  14: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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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로 읽는 성경(11)

방동섭 교수 /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석사, 미국 칼빈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미국 리폼드신학교 박사, 전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글로벌비전교회 담임, 저서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선교없이 교회없다> <우리의 선교가 실존입니다>

   
▲ 방동섭 교수

긍휼히 여김

긍휼의 삶은 긍휼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οἱ ἐλεήμονες)라는 표현은 어쩌면 선교적 삶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슨(D. A. Carson)은 ‘긍휼히 여김’에 대해 자신에게 악을 행하거나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대한 ‘용서’(forgiveness)와 동시에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compassion)’을 같이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헨드릭슨(W. Hendriksen)도 “긍휼은 비참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사랑으로 나타나며 죄인을 향하여서는 용서의 정신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렌스키(R. Lenski)는 "은혜는 언제나 죄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면 긍휼은 죄의 결과로 오는 고통, 비참함, 아픔을 다룬다“고 했다. 가고 보내는 선교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죄의 결과로 존재하게 된 고통, 비참함, 아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향해 긍휼을 베풀게 된다. 긍휼은 우선적으로 용서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용서라는 것은 응분의 대가를 주어야 하는 자에게 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픈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야 하지만, 그에게 뭔가 응분의 대가를 들려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용서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용서를 베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인격이 탁월하거나 본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용서를 먼저 체험한 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죄값으로 인해 마땅히 진노를 받아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용서를 베푸셨다. 선교사들은 용서를 먼저 체험한 자로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하는 것이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고통의 절정 속에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고 기도하셨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에게 용서를 베푸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긍휼의 진정한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긍휼이 무엇인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인 십자가상에서 친히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긍휼을 베푸심을 가장 정확하게 배웠던 사람이 있다. 초대 교회가 세웠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다. 그는 자기를 대적하고 돌을 던져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향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 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스데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긍휼 베푸심을 자신도 죽음의 현장에서 실천했던 것이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현장에서 앞장섰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사울이 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일생을 살게 된 것은 이러한 스데반이 베풀었던 긍휼의 열매가 아닌가 생각한다. 보내고 가는 선교사는 이처럼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긍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변의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들을 향해서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긍휼을 베푸는 삶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우선 자기에게 죄를 지은 자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나고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로는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선교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주변에 사는 이웃의 필요를 누구보다 빨리 인식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필요를 인식했을 때 사랑을 베푸는 데도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긍휼이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긍휼이 사라진 이 세상 한복판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향해 적극적으로 긍휼을 베풀어 주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그들을 향해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물론 그렇게 이웃을 향해 긍휼을 베푸는 자신들도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루게 될 것이고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긍휼을 베푸는 자가 종말론적인 측면에서 어떤 미래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긍휼이 심판을 이긴다’는 것은 긍휼을 베풀면서 사는 자에게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어떤 복을 누리게 되는지 보여준 말씀이다. 긍휼을 베풀며 사는 자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매 순간 경험하면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긍휼의 삶은 긍휼을 베푸는 사람과 그 긍휼을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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