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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선물 보따리

기사승인 2020.07.20  14: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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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13)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 대표.

   
▲ 김정훈 교수

교회의 다양성(엡 4:7-10)

이 본문은 교회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단락이다. 이는 앞 단락이 교회의 통일성을 강조한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N극과 S극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요소는 교회가 본유적으로 갖고 있는 양대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요소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쌍란의 두 노른자처럼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바울이 강조하는 교회의 통일성이란 결코 획일적 전체주의가 아니며, 다양성이란 결코 분파적 개인주의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통일성은 다양성을 통한 통일성이고, 다양성은 통일성을 위한 다양성이다.

바울은 4장 1절을 시작할 때 교회의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후 그는 교회의 통일성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토대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그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진술하였다(1-6절). 사실 이러한 기조는 16절까지 계속된다. 이런 맥락에서 7-10절의 은사의 다양성에 대한 언급은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논의의 필요조건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이 네 절에서 커튼 뒤에 있는 교회의 통일성의 신비를 무대 밖으로 불러내어 그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아주 중요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승귀의 주께서 믿는 자 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분여(分與)해 주셨고 이 은사의 작동을 따라 교회가 그리스도를 표준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이미 암시한 대로 우리의 본문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은사의 다양성을 통한 교회의 유기적 통일성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먼저 성도 각 개인이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7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서신에서 “은혜”는 종종 “은사”와 함께 등장하는데, “은사를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은혜”가 “은사”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7절에서 “선물”(도레아) 개념의 등장은, 에베소서 다른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성령의 은사를 가리킨다는 사실(3:7; 4:8; 참조. 약 1:17)을 생각할 때,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는 진술은 은사 분여를 묘사하는 말임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바울이 각 사람이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성도 각 개인이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여 교회의 성장과 활력 유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각 사람에게”라는 말은 교회 성도 가운데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확인해 준다. 그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고 당부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나누어 주시는 여러 은사들 중의 하나다(롬 12:3, 6; 고전 12:9). “믿음의 분량”(메트론 피스티스)은 믿음의 양을 잴 수 있는, 눈금을 가진 계측 용기같은 것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의 수준 또는 정도를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라고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누어 주신”(에메리센)이라는 동사 과거형 때문에 믿음의 정도가 마치 숙명론적으로 정해진 믿음의 절대량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누어 주신”이라는 말은 “분배는 이미 끝났고 더 이상의 분배는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 정도를 현재 시점에서 묘사하는 데서 나온 시제다. 우리는 분량이라는 말이 다소 거북하게 들려도, 그때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타내는 믿음의 정도를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좋다, 좋지 않다”의 표현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바울은 분명하게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연약한 자”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롬 15:1).

교회 현장에서 다양한 수준의 믿음 상태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한때 좋은 믿음을 보이다가도 후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아무튼 성령께서 믿는 자,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확인해 주는 사실이다(고전 12:7, 11도 볼 것). 바울은 각 사람이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 구약을 인용한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8절). 1세기에 구약을 인용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는 방식이다. 즉, 자신의 주장이 아무 근거도 없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이 권위 있게 입증해 주는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방식이다. 인용문은 시편 68:18에서 온 것으로 이 본문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왕(다윗) 이 전쟁에 나가 원수들을 쳐부순 후에 승리의 대열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성(歸城)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대열 뒤에는 포로들이 손이 묶인 채 끌려오고, 그 뒤에는 적국 백성에게서 거둔 전리품들을 가득 실은 병거들이 행렬을 지어 따라온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왕은 자기 백성에게 이 전리품들을 골고루 나누어 준다. 이 전리품에는 적국에서 탈취한 것들과 현지 백성에게서 받은 수많은 선물들이 포함돼 있다.

바울은 이 장면을 그리스도의 승천, 승귀 시에 행하신 신비사역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악한 영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셨다(“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가 바로 이 뜻임).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들 위의 하늘 도성으로 귀성하시면서 당신의 백성 곧 교회의 모든 성도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선물로 나누어 주셨다. 바울은 다윗의 시편 한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귀와 은사의 분여에 대한 예언을 발견했던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구약 본문에는 “주셨다”가 아니라 “받으셨다”인데 바울은 “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본래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동사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시편 본문의 주인공이 정복자로서 포로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 준 것을 생각하면서 사건 결과의 시각에서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로서는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선물들을 받았다고 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바울은 위 인용문의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8절 상)라는 어구를 이렇게 해설한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9-10절 상). 이 해설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 부활·승천, 승귀 전체를 포괄하는 내용이다. 이 해설에는 세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본래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다. 그는 단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다가 에녹처럼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로서(빌 2:6)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다(참조. 요 1:1). 그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실 때도 거기에 계셨던 분이다(엡1 비교). 그가 세상에 오셔서 권세 있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신 일과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신 일들, 곧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심, 귀신축출, 각종 치유사역, 죽은 자를 살리심, 폭풍을 잠잠케 하심, 오병이어 사건, 물 위로 걸으신 사건 등도 그가 본래 하늘에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한다.

둘째,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육신을 입고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시다(참조. 요 1:9-11). 그는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셔서(빌 2:7),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께 복종하셨다(빌 2:8). 그는 육체로 지상에 계실 때 인간의 현실을 보고 민망히 여기기도 하고(막 1:41; 3:5), 한숨을 짓기도 하고(막 7:34; 8:12),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마 9:36; 막 6:34; ), 심히 슬퍼하기도 하고(막 14:33-34),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요 11:35), 심한 통곡을 하기도(히 5:7) 하셨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베드로가 언급하는 지옥강하(地獄降下)까지 포함하는 말일 것이다(벧전 3:19). 나는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라는 말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사역, 십자가 고난, 부활·승천, 승귀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땅 아래 낮은 곳”(타 카토테라 [메레] 테스 게 스)은 땅보다도 더 낮은 곳, 곧 “음부”를 가리킬 것이다. 더구나 “카토테라”는 비교급으로 “더 낮은”이라는 뜻이다.

셋째,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지상사역을 마치신 후에 다시 하늘로 오르신 분이시다. 이것은 이미 밝힌 대로 그리스도의 승귀를 의미한다. 바울은 이 승귀의 위치를 “하나님의 오른편”이라고 묘사하면서(엡 1:20),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케팔레 휘페르 판타) 곧 만물의 통치권자가 되셨다고 선언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적절하게도 9절 끝에서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을 첨가한다. 그는 만물 위에 뛰어나신 위치에서 만물을 자신의 존재와 생명과 권능으로 충만히 채우신다(비교. 엡 1:23). 바울이 그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은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다시 하늘로”이다. 우리가 지상에서 만난 예수는 단지 나와 똑같은 한 인간이 아니라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인간이며, 또한 지상에 머물다가 죽음과 함께 소멸된 인간이 아니라 부활하여 다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히심을 받고 만물을 다스리는 왕이 되신 분이시다. 이는 그가 처음부터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부활 후 “성결의 영”으로서 하늘로 오르신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준다(참조. 롬 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다(요한2서 1:7). 또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왔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떠났다고 하는 영지주의의 주장은 완전히 반성경적이다. 바울은 1세기 교회 주변에 이러한 그릇된 이단사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실을 감지하고 본문(9-10절 상)과 같은 단순하고도 임펙트 강한 메시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지상사역과 승귀를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신령한 은사가 교회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각 사람에게라는 말은 은사의 분야에서 제외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과제는 내게 있는 은사의 효용성을 높이는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지체로서 유의미하게 기능하려면 우리의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의 신앙성숙도가 낮으면 우리의 은사의 효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계속 변화하고 성숙해 가야 한다. 그리스도가 지상사역을 마치고 하늘에 오르시며 행하신 최고의 일들 중에 하나는 믿는 자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선물로 주신 일이다. 그것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신 약속을 이행한 사건이었다. 교회는 은사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유기체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 각 개인은 내가 받은 은사의 교회론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은사를 사용할 때 거룩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교회의 리더십은 성도 각 개인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주어야 한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께서 승귀의 보좌로 오르실 때 우리 각자에게 신비한 선물(은사) 보따리 하나씩을 주고 가신 사실을 기억하자.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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