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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적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교수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0.08.24  1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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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신학자들에게 한국교회 길을 묻는다(6)

사회: 피터 윌리암스 교수(Peter J. Williams) /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박사, 아버딘 대학교 교수 역임, 캠브릿지 대학교 신학부 신약학 교수 및 틴데일 하우스 학장, 국제 그리스어 신약성경 편찬위원회 의장

대담: 웨인 그루뎀 교수(Wayne Grudem) / 미국 하버드 대학교 학사,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박사

편집: 최은수 교수

   

▲ 웨인 그루뎀

피터 윌리암스 교수: 유럽 교회 지도자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적인 조직신학자이신 웨인 그루뎀 교수님과 대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수님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20년 넘게 교수로 봉직하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교수님은 복음주의 신학회 회장, 영어표준역(ESV) 번역위원회 멤버이자 이 번역본의 해설성경 총편집인, 수백 편의 사설과 논문들을 쓰셨고, 20권이 넘는 저술을 하셨으며, 특히 대작으로 손꼽히는 조직신학 총론을 저술하시어 성경학적인 조직신학을 소개하는데 혁혁한 기여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시카고 트리니티에서 은퇴하신 후 아리조나주 스캇츠데일에 위치한 피닉스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및 성경학 연구 교수로 계십니다. 먼저, 교수님의 성장 과정과 신앙 배경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겠습니까?

웨인 그루뎀 교수: 저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성장하였는데, 우리 집은 기독교 가정이었고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믿음에 대한 확신도 없이 남들이 다 하니까 세례도 받고 형식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내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미니아폴리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고 나의 삶을 다시금 주를 위해 체험적으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니 제가 아주 어린 나이에 성경을 읽고 놀이터에서 기도와 찬양하기도 했으며 당시에 이미 놀라운 신앙 경험들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그랬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여튼 굉장히 이른 시기였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 사회자 피터 윌리암스 교수

피터 윌리암스 교수: 그럼 교수님이 영국 캠브릿지에 오셔서 성경신학으로 박사학위를 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웨인 그루뎀 교수: 제가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학부에 진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졸업 후에는 법학대학원을 마치고 정치계에 입문하려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여정을 바꾸셨습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교의 기독교 동아리의 회장을 맡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학원 선교 사역에 빠져들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신학교로 부르신다는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교 3학년 때 이른 결혼을 하게 되었고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환상적인 시간들을 보내며 신학함의 묘미를 만끽하였습니다. 1973년 그러니까 신학교 졸업반 무렵에 성경학으로 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캠브릿지 신학부에 원서를 냈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경제적인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배를 이용하여 영국으로 갔습니다. 그 무렵 아내는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대단히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캠브릿지에서 3년 동안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아내가 청중석에 앉아 있습니다만, 아내가 영국에서 아이를 출산한 가운데 힘들기도 했지만 가족 모두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들을 쌓아 갔습니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틴데일 하우스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요.

피터 윌리암스 교수: 당시 교수님의 지도교수가 누구셨지요?

웨인 그루뎀 교수: 뮤얼(C.F.D. Moule) 교수님이셨습니다. 그 분의 지도로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예언에 관하여 박사 논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는 자애롭고 친절하셨고 학문적으로 탁월하셨습니다. 제가 그 분과 다른 견해를 피력해도 교수님은 인내하셨고 서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심초사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제자가 된 것에 무한한 자부심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피터 윌리암스 교수: 교수님이 선택하신 주제가 매우 인상적인데요. 어떤 계기로 예언과 같이 성경의 은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 강의하는 그루뎀

웨인 그루뎀 교수: 제가 하버드 대학교에 재학할 당시 카리스마틱, 즉 은사주의적인 동아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저는 원래 칼빈주의에 입각한 침례교회에서 성장했는데 저에게는 사뭇 다른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당시 조직신학 교수였던 프레임 교수가 은사중지론(Cessationism)을 강하게 주장하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레임 교수에 따르면 성경의 계시는 종료되었고 더 이상의 은사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이런 부분에 의문을 품고 캠브릿지에 원서를 냈고 합격을 한 후, 뮤얼 지도교수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저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초대교회 당시 은사나 예언에 관하여 랍비 문헌과 파일로, 죠셉프스 등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먼저 본문 분석부터 하라고 했지요. 저는 고린도전서 13장 후반부를 분석하는 글을 써서 드렸지요.

피터 윌리암스 교수: 교수님은 어떤 해결점에 도달했는지요?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예언은 분명히 다른데 말입니다. 교수님의 견해를 어떻게 전개했는지요?

웨인 그루뎀 교수: 구약의 선지자들은 대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예언들은 각기 다른 교회들에서 목격되었는데 사도 바울은 그런 예언들을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예언하는 것을 막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만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던 것이지요.

피터 윌리암스 교수: 교수님의 은사에 대한 견해를 개진하는데 있어서 캠브릿지 박사 프로그램이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시나요?

웨인 그루뎀 교수: 당시 지도교수님도 캠브릿지 대학의 분위기에서 볼 때 저의 예언 은사에 대한 논지가 거부감을 불러올 것이라고 염려하셨지요. 제 기억으로는 제가 박사 논문을 다 마치고 구두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심사위원 교수님들로부터 이런 지적을 받았습니다. 저는 논문에 대한 수정지시를 받고 많은 생각과 묵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성경에 대하여 더욱 신실한 태도로 접근하게 되었고 모든 과정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였습니다.

피터 윌리암스 교수: 교수님이 학위를 마치고 베델 컬리지에 잠시 계시다가 1981년에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교수로 청빙되었습니다. 트리니티 신학교의 규모나 명성이 자자하였는데, 2001년에 교수님이 비교적 덜 알려지고 규모도 적은 피닉스 신학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웨인 그루뎀 교수: 제가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성경학을 6년 가르쳤고, 조직신학과 기독교 윤리를 12년 교수하였습니다. 당시 제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 부분을 많이 다쳤습니다. 이 결과 아내는 만성적인 목 부위 통증을 호소하였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의 병세가 도무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2001년에 저희 부부는 아리조나를 방문하였습니다. 제 아내는 자신의 상태가 훨씬 좋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아리조나는 사막기후라 덥지만 습기가 없고 건조하고 따뜻한 반면, 시카고는 춥고 습도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피닉스 신학대학원에 전화를 걸어 교수로 갈 수 있는지 문의하였고 학교 측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시카고 지역에서 사역을 했기 때문에 좋은 친구들도 많고 해서 떠나기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로 채워주셨고 좋은 교회와 기독교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이끄셨고 강의도 시카고의 절반 정도만 하고 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좋죠.

피터 윌리암스 교수: 교수님이 2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기록하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 무엇인지요? 제 생각으로는 조직신학 총서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몇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나요?

웨인 그루뎀 교수: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은사를 주셨다고 믿어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제시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을 하고 논쟁을 벌이면서 반론을 하는 등 제가 이 모든 것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언제나 제 서재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십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현재도 다양한 언어로 번역 중인 것으로 압니다. 제가 조직신학 총론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제가 베델 컬리지에서 조직신학을 교수할 때 주로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교재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라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저는 학생들이 보다 쉽게 신학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조직신학 총론을 썼습니다. 아울러 벌코프의 조직신학에는 삶에 적용하는 내용이 없어요. 사도 바울도 로마서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각 장마다 삶에 적용할만한 내용들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성경학이든 무슨 신학 분야를 가르치든 신학과 삶을 연결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윌리암스 교수: 교수님이 저술이나 기타 사역을 통해 후회하는 일은 없었는지요?

웨인 그루뎀 교수: 특별히 없습니다만, 주변의 기도와 권면에 따라 조직신학 총론의 어려운 부분들을 보다 쉽게 교정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없어야 하니 말입니다.

피터 윌리암스 교수: 제가 알기로 교수님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정치와 연관된 언급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원래 정치에 입문하려고 했던 동기가 그런 작용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요?

웨인 그루뎀 교수: 성경에서 보면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언급들이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의 신앙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정치세력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을 억압할 수 없고 신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도 정부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영국에서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제를 폐지하도록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피터 윌리암스 교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대담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후기: 먼저, 웨인 그루뎀 교수님이 신학함의 사명과 목적을 분명하게 천명하신데 대하여 경의를 표한다. 그는 조직신학 총론을 기록하면서 기독교의 핵심교리와 기독교인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고 실천되어야 하는지 올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셨다. 아울러 웨인 그루뎀 교수님이 16세기 종교개혁 정신과 특히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에 기초하여 자신의 학문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가족을 교회로 생각하는 개혁교회 전통에 충실한 가장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웨인 그루뎀 교수님이 아내의 건강을 고려하여 삭막한 사막 위에 세워진 아리조나주 피닉스로 이주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16세기 종교개혁사 연구의 대가셨던 하이코 오베르만(Heiko Oberman) 교수님이 생각이 났다. 오베르만 교수님도 관절염에 좋은 사막기후 때문에 아리조나 주립 대학교로 옮기셨다.

편집자도 웨인 그루뎀 교수님처럼 극단적인 은사중지론에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에서 보수적인 입장의 교회들, 주로 예장 고신과 합신에서 은사중지론을 배웠으면서도, 목회현장에 나가서 그 한계에 부딪혀서 이단 내지 이단성으로 판명된 ‘신사도운동’의 지류격인 미국식 ‘가정교회’ 프로그램을 신봉하는 목회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식 가정교회 프로그램의 부작용은 기도를 강조하면서 직통계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긴급한 선교를 강조하면서 극단적인 세대주의 종말론에 빠지거나 시한부 종말론자로 오해되는 행동들이 보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대형교단인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에서도 이와 같거나 유사한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목회자들을 볼 때, 무조건 은사중지론을 주장하기에는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면면히 흐르는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역사하신 성령님을 제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을 극단적인 은사중지론이라는 인위적인 이론에 가둬 둘 수 있는 피조물들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대로 영을 잘 분별하고 교회 내 질서를 유지하며 이단사이비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본 대담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웨인 그루뎀 교수님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웨인 그루뎀 교수님은 ‘구분적이고 제한적인 남녀평등사상’(Complementarianism)의 옹호자이다. 존 파이퍼가 대표적인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견해는 대다수 보수적인 교회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사상의 핵심은 남성과 여성이 도덕적 가치나 평등한 존재라는 점에서 동등하나, 가장의 자리는 남성에게, 교회 내 지도력에 있어서는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집자는 웨인 그루뎀 교수님과는 다른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구분적이고 제한적인 남녀평등사상완전한 남녀평등사상’(Egalitarianism)의 절충지점이 합리적인 견해라는 점이 편집자의 입장이다. 편집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교회사의 흐름에서 볼 것 같으면, 지상 교회의 시작부터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고, 이 말은 영적으로 여성이 가족 내에서 먼저 신앙을 갖게됨으로 영적 가장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보편적이었다는 데 있다. 현재도 이러한 경향은 변하지 않고 있다. 편집자의 견해로는, 여성이 먼저 신앙을 갖고 가족 내에서 영적 리더쉽을 행사하다가 남편이 신앙을 갖게 되고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그 리더쉽을 이양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필자도 교회 내에서의 여성 리더쉽도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컴플리멘타리아니즘, 즉 구분적이며 배제적인 남녀평등사상에서 발전되고 이갈리태리아니즘, 즉 완전한 남녀평등사상 사이의 타협된 중간형태를 주장하며, 교회 내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평등상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편집자는 웨인 그루뎀 교수님이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강조하여 말씀하신 점에 주목하고 싶다. 현재 한국도 이념 간의 전쟁이라도 할 만큼 상호 입장차가 크고 대립적이어서 사회적 긴장과 불안함이 가중되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적인 원리에 의해 사회 참여에 나섰으면 하는 바램이다. 과연 예수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를 신중히 묵상하며 지혜롭게 사회 참여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기독교는 분명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믿지 않는 자들과는 사뭇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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