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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큰 흐름 중 하나 ‘선교’(5)

기사승인 2020.09.02  21: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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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로 읽는 성경(18)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디아코니아적 선교 공동체
공동체 선교는 교회라는 선교의 공동체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들어가 섬김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다"(요 13:14)는 제자들에게 주셨던 주님의 말씀은 선교 공동체의 삶의 방식과 선교의 원리를 규정해 주시는 말씀이다. 선교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섬김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따라서 세상은 교회가 섬김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알게 된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섬김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게토화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교회 공동체가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체휼의 삶"을 배워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에 대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히4:15). 여기 "체휼하다"(συμπαθεω)는 말은 단지 "심리학적인 동일시"의 의미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동일시"의 의미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약함을 느끼고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친히 경험하시는 존재가 되셨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많은 죄인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그들의 친구가 되셔서 함께 삶을 나누실 수 있었던 것이다(막2:16). 선교는 단지 언어의 교환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같이 나누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섬김의 정신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아픔에 동참하는 방법이 단지 언어가 아니고 물질의 나눔과 공유를 통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대교회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데 있어 매우 탁월한 공동체였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에 지도를 받아 초대 교회 구성원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을 뿐 아니라(행 2:44) 또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행 2:45). 그 결과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는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행 4:34). 공동체 안에 핍절한 사람이 있는 것은 그들의 수치로 여겨질 정도였다.

나누는 삶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행 4:32). 여기 "한 마음과 한 뜻"(καρδια και ψυχη)은 영적인 연합 (a spiritual unity)을 뜻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체휼이 정신과도 연결된다. 부유한 기독교인들이 가난한 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이 자신 안에서 체험될 때 나누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성령은 나눔이 가능하도록 초대 교회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으시고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가난한 자의 아픔, 고통 당하는 이웃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IV. 나가는 글:

지금까지 위에서 다룬 내용은 주로 사도행전의 전반부에 나타나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그 교회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한 선교적인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초대 교회의 선교는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인도 하던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인식이 아니다. 이미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선교를 위해 태어났으며, 출발 처음부터 선교에 헌신했고, 선교를 통해 전진해 갔다. 그러한 사실은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교회의 선교는 교회 성장의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 아니라 교회의 첫 출발부터 실천해야 하는 사역이라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이 "우리 교회는 아직 개척의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선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적인 공동체이며 선교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 측면에서 선교적 몸짓을 잃어버린 교회는 "제도화"된 화석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는 단순히 교회를 관리하는 관리자(maintainer)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꾸준히 침투해 들어가는 선교사(missionary)가 되어야한다. 한 지역 교회가 참 교회 되려면 무엇보다 선교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목사는 그 지역의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몇 사람을 뽑아 그들에게 선교를 맡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모든 교인들이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세상에 보내어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하여야 한다.

셋째, 교회가 선교를 잃어버리면 세상의 물결이 교회로 역류해 들어와 교회는 세속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선교적인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 농도가 높은 액체는 언제나 농도가 낮은 곳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이것을 삼투압의 원리라고 한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것은 농도가 높은 소금이 배추 속으로 들어가 물기를 빨아 내기 때문이다. 교회는 소금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침투해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을 교회 공동체의 선교적 몸짓이라고 부른다. 만일 교회가 이 같은 선교적 움직임을 중단하면 세상이 교회를 세상의 가치관으로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겉모습만 가진 채 세속화의 길을 급속히 걸어가는 게토화된 종교집단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비록 초라하게 시작되었지만 마침내 소금과 같이 세상을 절여내고 변화시켰던 공동체의 선교 이야기를 그려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사도행전은 이 시대에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어떠한 지역 교회라도 만일 성령의 능력에 포로가 된다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선교적인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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