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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성경신학자 하워드 마샬 교수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0.09.07  1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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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지도자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다(9)

올해는 세계적인 신약학자셨던 하워드 마샬(Ian Howard Marshall) 교수의 5주기이다. 이를 기념하며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기 위해 그가 생존시 '복음연맹' (thegospelcoaliation.org)과 대담을 나누었던 내용을 한국교회 최초로 공개한다. 사회는 당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교수로 봉직하였고 현재는 그로브 씨티 컬리지(Grove City College)의 종교학과 교수로 있는 칼 트루먼(Carl R. Trueman) 교수가 맡았다. <편집자 주>

   
▲ 하워드 마샬의 생전 모습

사회: 칼 트루먼 교수 /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학사, 영국 스코틀랜드 아버딘 대학교 박사, 아버딘 대학교 교수 역임, 노팅엄 대학교 교수 역임,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현재 그로브 씨티 컬리지 교수

대담: 하워드 마샬 교수 / 캠브릿지 대학교 학사, 아버딘 대학교 신학사, 석사, 박사, 아버딘 대학교 신약학 교수와 명예 교수, 에즈베리 대학교 명예 신학박사, 성경학과 신학 연구를 위한 틴데일 펠로우쉽 의장, 38권이 넘는 저서와 120편이 넘는 논문과 에세이가 있다.

편집: 최은수 교수

칼 트루먼 교수: 하워드 마샬 교수님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워드 마샬 교수: 대개 이런 질문을 받고 사람들은 '제가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고요' 같은 말로 자신의 신앙 여정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하지만 이런 가정 배경이 저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지는 못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기독교적인 가정 배경과 부모님이 저를 데리고 간 교회를 통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고 좋은 환경에서 신앙인으로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12세쯤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스코틀랜드의 북부도시인 아버딘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저는 아버딘에서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 제가 참석했던 한두 군데의 복음적인 청소년 단체를 통해 인격적으로 제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식석상에서 제 신앙고백을 함으로 정식 기독교인이 되었지요. 1946년에 알란 레드패스(Alan Redpath)가 연사로 나선 신앙 모임을 통해 제가 진정한 기독교인인가에 대한 모든 의심들을 날려 버리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고 확고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강의하는 생전의 하워드 마샬 교수

칼 트루먼 교수: 교수님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신 과정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언제 그리고 왜 복음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는 소명을 받으셨는지요?

하워드 마샬 교수: 제가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에 고전어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어를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 이미 신앙적인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드는 생각이 그리스어를 제대로 배우면 성경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들이 점점 발전하면서 제가 캠브릿지 대학으로 진학할 때 수학 대신에 고전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지역교회 목사가 되기보다는 신학 교수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칼 트루먼 교수: 교수님이 신약학 교수가 되는 것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는지요?

하워드 마샬 교수: 예 분명히 확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문은 학문이지 학문하면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얼마 전 미국 풀러신학교의 데이빗 허바드 교수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우연히 학자가 되기 위한 제자가 아니라, 우리는 우연히 제자가 되기 위한 학자이다.' 저는 이 말이 맞다고 보아요. 저처럼 일단 대학 내에 있는 신학부에서 교수하며 연구하는 학자일지라도 분명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신학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칼 트루먼 교수: 아주 오래된 주제이기도 한데요. 사람들은 머리의 생각과 뜨거운 심장의 열정을 일치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즉, 인간 이성, 또는 지성과 신앙과의 관계 말입니다. 교수님은 신약학 학자로서의 입장과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입장을 어떻게 조화롭게 일치시켜 나가고 계신지요?

하워드 마샬 교수: 저는 제가 얼마나 이런 일치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과 신약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상호 간 갈등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학문을 하다 보면 결론 부분에서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어서 갈등하는 경우는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저의 완고한 교만과 너무 보수적인 신앙으로 말미암아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학자라도 좋은 교회를 통해 동료 신앙인들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 기도도 요청하고 지지도 받으면서 이런 약간의 갈등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는 학문적으로 해야 하는 본문을 다루면서 기독교 신앙과의 긴장을 가질 때 좀 힘들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학문은 학문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학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학문적인 방법론을 사용한다고 해서 제 신앙을 포기하거나 약해지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하여튼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칼 트루먼 교수: 교수님이 지성과 신앙의 일치를 위해 구체적으로 하신 예가 있는지요? 그렇게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경험하신 경우는요?

   
▲ 사회를 맡은 칼 트루먼 교수

하워드 마샬 교수: 저는 아버딘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 사역을 했습니다. 또한 학생들과 함께 미션 트립도 함께 했는데 참으로 좋은 추억으로 남아요. 저는 교인들을 위해 신앙에 도움이 되는 쉬운 글들을 쓰기도 하고요. 교회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을 돕기 위해 글을 쓰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이해하면서 함께 하려고 해요. 저는 항상 신학하는 사람들이 목회 현장을 바라보며 막중한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칼 트루먼 교수: 교수님이 지성과 신앙의 균형을 잃으셨다거나 해서 혹시 후회가 되는 일은 없는지요?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하워드 마샬 교수: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신약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며 성경을 해석하고 글을 쓰는 것과 이런 일들이 과연 교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봅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주후 1세기를 연구하면서, '이런 연구들이 21세기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어떻게 설교하지?' '이런 내용들과 오늘날의 문제들을 어떻게 연결시키지?' 등의 질문을 하며 성경 본문과 현실적인 상황들을 연결시키기 위한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은 실천신학을 하는 신학자들의 몫이기도 하고요. 1세기와 21세기와의 시차는 항상 양 시대에 대한 정확한 연구를 통해 연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1세기만을 깊이 있게 연구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21세기의 당면한 상황만을 심도 깊게 연구해도 안 되며, 이 둘을 모두 제대로 연구하는 가운데 접촉점을 찾아야 하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강조해서 자주 합니다: '여기에 기초(신약 본문과 배경 연구)를 잘 닦아 놓았으니 이제는 이 위에다 어떻게 집(설교)을 지을 지 연구해 봅시다.'

칼 트루먼 교수: 이제 우리의 주제를 좀 바꿔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젊은 세대들은 올리버 바클레이나 존 웬함 같은 저자들이 기록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복음주의 계열의 저자들로서 세계 2차대전 이후 복음주의권의 학문적 태도가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교수님도 복음주의권의 내부에서 학문을 논하는 일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된 흐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교수님이 경험하셨던 이러한 변화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서,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제시해 주시고, 아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그저 작은 변화일 뿐이라면 어째서 그런지 알려주시지요?

하워드 마샬 교수: 성경학 연구와 관련하여, 지난 4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학문적으로 복음주의적인 신앙이 성경과 신학 연구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세계 어디에서든지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 되었다고 봅니다. 그들에 의해 복음주의적인 서적들도 다수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하고 지금의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제가 공부할 때는 읽을만한 복음주의적인 서적이 많지 않았고, 있더라도 수준이 낮았어요. 지금 우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서적들과 교과서들을 대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론의 계발로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있으며, 상당수의 서적들이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학자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복음주의권의 사람들이 지성적인 부분, 즉 학문적인 접근을 무시하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복음주의 학자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학문을 하며 지성적으로 전혀 뒤쳐지지도 않고 모든 진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어요. 이 말은 우리가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거나, 모든 문제들을 만능으로 풀 수 있다거나, 우리 스스로가 자랑하고 교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학문적인 업적을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생각을 달리하는 학자들로부터도 존중과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주의 학자들도 자신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결과물들을 통해 장점과 가치를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 진영의 학자들이 상호간에 폭넓은 이해를 하고 있으며, 관계들이 증진되었으며, 공통된 관심사를 논하고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할만큼 발전했다고 봅니다. 현재의 복음주의자들은 40년, 50년, 아니 100년 전 보다 훨씬 생각의 폭이 넓어졌어요. 과거에는 복음주의자들이 무조건 무시하려고 하거나 쓸데없는 일에 더 신경을 쓰기도 했지요. 저의 경우만 보아도 제가 사춘기 때 복음서의 저자들이 기록된 자료들을 근거로 이용해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어요. 나는 공관복음서 문제를 다루면서도 보수적인 선입견에 붙들리어 발전이 없었어요. 제가 철이 들어가면서 반지성적인 접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칼 트루먼 교수: 교수님의 경험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가 한 가지 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너무 세부적인 전공으로 분화되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대학에서 전공 분야들이 세분화되고 핵분열처럼 작은 조각으로 분산되고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자들이 성경학 전문가들과 학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고, 더욱이 성경학 교수들도 바울 전공이니 복음서 전공이니 해서 점점 학문적인 교류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이런 세분화되고 있는 신학 각 분야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며 학문적으로 복음주의 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하워드 마샬 교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성경학 연구 분야도 폭발적인 지식의 증가를 목격하고 있어요. 사람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분야를 하기도 쉽지 않은데 다른 분야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아요. 제가 캠브릿지에 재학할 때 그리스어로 신약 성경 전체를 심도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이런 기회를 가졌던 것에 대하여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지식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불가능할 거에요. 전문적인 연구자들이 아닌 이상, 가르치며 연구하는 교수로서의 학자들은 전체적인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봐요. 조직 신학 교수도 성경학에 조예가 깊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성경학 교수도 조직 신학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엄청난 양의 지식을 통달할 수는 없습니다.

칼 트루먼 교수: 대담의 주제를 바꿔 보도록 하지요. 교수님은 현재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하워드 마샬 교수: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가 직면한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서구의 기독교권이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현재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 전락해 가고 있으며, 교회의 생명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약해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런 기독교의 침체기를 맞이하여 교회는 이 난국을 타계하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선교와 복음 전도의 사안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거의 반세기가 넘도록 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되기 위해 수많은 대화와 노력들이 있어 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제도적인 교회의 일치보다는 우선 선교적인 차원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서구의 기독교권은 쇠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냉철하게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하고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는 교회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선포하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철저히 반성하고 이룩할 수 있는 목적을 세우고 전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교회의 쇠락을 막을 수 있고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칼 트루먼 교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 대담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편집후기: 편집자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할 때도 하워드 마샬 교수님의 학적, 신앙적, 인격적 모습들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교수님이 현직에 있을 동안 회자되던 말이 있었는데, 스코틀랜드 북부 도시인 아버딘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대부분이 한 부류는 북해산 브렌트유라는 석유 관련 업종의 사람들이었고, 다른 부류는 하워드 마샬 교수님께 배우고자 하는 외국 학생들이었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였다.

스코틀랜드의 엘긴 출신으로 아버딘 대학교를 졸업하고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평생 교수를 하셨던 전설적인 브루스 (F.F. Bruce) 교수님의 후계자답게 하워드 마샬 교수님은 모든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브루스 교수님은 신약 성경 전체를 그리스어로 암기할 정도로 탁월한 기억력을 소유하셨다. 천재적인 학문성과 수많은 저작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을 미치셨다. 브루스 교수님의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의 학문성은 수 많은 학생들을 맨체스터로 불러 모았다. 브루스 교수님의 이런 모습이 거의 하워드 마샬 교수님의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하워드 마샬 교수님은 겸손이 몸에 베어서 삶 자체가 되었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위트가 넘쳤고, 무엇보다도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마음가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는 세계적인 신학회에 참여해서도 동료 교수들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교회를 돕는 신학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학회가 시작할 때, 기도 먼저 하고 시작하자며 제안할 정도로 신학과 신앙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하워드 마샬 교수님은 신약 성경을 연구하면서 현장의 목회자들을 돕기 위한 작업을 지속하였고, 목회자들이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를 잘 할 수 있도록 글과 강의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였다. 교수님은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자신의 신앙을 변호하고 유혹을 이기며 성장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전설적인 브루스 교수님도 하늘의 부르심을 오랜 전에 받으셨고, 그의 후계자인 하워드 마샬 교수님도 췌장암으로 소천하셨다. 이 두 분에게서 사사 받은 제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그들의 가르침대로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는 신학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분에 필적할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처럼 교회가 난관에 봉착하고 침체의 시기를 지날 때일수록 그분들이 더욱 그리워지며, 두 분이 소천하셨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분들이 남기신 저작들과 신학적 유산들을 통해 현재의 난제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하워드 마샬 교수님의 교회를 위한 신학이 특히 한국에서 제대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볼 때, 어떤 신학대학원에서는 신학 교수들이 교회를 사랑함이 과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문적인 신학함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목회 현장의 담임목사로 떠나 버림으로 신학 교육의 지장은 물론이거니와 학맥이 난맥상에 빠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어떤 신학대학원에서는 일단의 교수들이 현장 목회의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이론적인 신학 타령만 한다든지, 더 가관인 것은 신학의 역동성을 죽여버리고 그곳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 죽은 신학을 가르침으로 백해무익한 쓰레기 신학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장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에서는 하워드 마샬 교수님의 유지를 명심하고 교회와 성도를 살리는 일에 영성과 지성의 조화로 무장하여 실천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바이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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