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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윤리의 비밀

기사승인 2020.09.07  14: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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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20)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새 사람의 가정윤리(2): 부모(엡 6:1-4)

본문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녀와 부모가 "새 사람"으로서 상호 간 어떠한 윤리적 실천 행위를 나타내며 살아야 할 것인지의 주제를 다룬다. 혈연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는 없다. 자녀는 부모의 신비적 결합 속에서 부모의 유전인자와 신체적 특징을 받고 태어난다. 부모와 자녀는 각각 독립된 인격을 가지면서도 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한 혈연 공동체다. 따라서 부모와 자녀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그들의 특별한 관계를 설정해 갈 필요가 있다. 가정 제도는 하나님이 창세 때부터 제정하신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인류의 역사는 흐른다. 이 역사 속에서 성역사(聖歷史) 곧 구원의 역사가 전개된다. 그러므로 믿는 부모와 자녀는 마땅히 창조주의 뜻에 합한 준칙을 따라 가정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본문 내용을 보면 아주 평범하고 지당하신 말씀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현실을 보면 그 안에 담긴 교훈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시대를 살면서, 첨단과학만큼이나 인간의 성품과 도덕성도 진화하였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인간을 겹겹이 휘감고 있는 화려한 옷들을 한꺼풀씩 벗기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라. 얼마나 흉측하고 소름이 돋는지? 친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성폭행을 가하고, 구타하고, 학대하고, 욕설하고, 저주하고, 살해하고, 굶기고, 감금하고, 심지어 자기가 낳은 신생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친자녀가 노부모를 구타하고, 협박하고, 살해하고, 숲속으로 끌고가서 버리고... 너무도 끔찍하여 악마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인간의 현실에서 빚어지고 있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간의 참담한 현실에 접하면 접할수록 믿는 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의 도덕성이 그토록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자녀에게 주는 단 한 가지 교훈과 부모에게 주는 단 한 가지 교훈도 지킬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현대사회의 비정상적 가정을 대상으로 주는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의 해괴망측한 가정을 염두에 둔 교훈이 아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윤리적 실천을 나타내야 할 것인지 그 핵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들이 "새 사람"으로서 어떤 자녀가 되고,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믿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불미스런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전제한 교훈이다. 이런 전제가 없다면 바울은 큰 엄중성과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율법(제5계명)을 인용하여 교훈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착한 부모는 자녀들을 대충 방치해 두어도 자신들처럼 자연히 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가 자기들을 간섭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꽤 윤기가 나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의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인간은 아무리 믿는 자라 할지라도 부모든 자녀든 부패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착하다고 하여 자녀들이 저절로 착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개성이 강하고 독립적이라고 하여 저절로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부모든 자녀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영혼 속에 채워져 그들의 심령을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부모와 자녀가 될 수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그들의 영혼 이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

바울이 믿는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1-3절). 이 세 절의 핵심 포인트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내용들은 부모에 대한 순종 행위의 준거(準據)에 대한 언급과 부모 순종의 실천을 독려하기 위한 첨언들이다.

바울은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한다. 여기서 "자녀들"은 집안의 미성년자들을 가리킨다(크레이크 키너, 『 IVP 성경 배경주석: 신약 』 , 정옥배 외 옮김[서울: 한국기독학생 회출판부, 1998], 641). 하지만 바울의 교훈이 어린 자녀들만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므로 성년 자녀에게도 해당된 말씀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더구나 "자녀들" 언급은 나이의 많고 적음보다는 부모와의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아들들과 딸들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Peter T. O'Brien, The Letter to the Ephesian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ed. D.A. Carson[Grand Rapids: Eerdmans, 1999], 440). 중요한 것은 자녀 된 자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순종하다"의 원어 휘파쿠오는 휘포(아래에)와 아쿠오(듣다)의 합성어로 어원적으로 "아래에서 듣다"라는 뜻이다. 즉, 부모가 하는 말을 겸손한 자세로 듣고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자신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처럼 기쁘고 고마운 일도 없다. 더구나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정상적 부모라면 자녀에게 올바른 말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또한 그들이 자기들의 말을 새겨서 듣고 그대로 이행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은 단순히 인륜적 도덕법칙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주 안에서"라고 하는 영적 준거( 準 據 )를 따라 행해져야 한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크게 3가지 정도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모에게 순종하라.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구약에서 "율법"은 "언약"과 동의어인데 그 이유는 율법 안에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듬뿍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십계명(증거의 판[출 34:29], 언약의 판[신 9:9, 11, 15], 언약의 말씀[신 4:13; 10:4])은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율법의 최종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모법(母法) 이라고 할 수 있다. 십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 20:12)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이 도덕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이 엄중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둘째, 주께 대한 복종을 동기로 부모에게 순종하라. "순종하다"라는 말은 5:21, 24에 나오는 "복종하다"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울서신에서 "복종하다" 또는 "복종"이란 단어는 보통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 복음에 대한 복종,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복종을 언급한다(참조. 휘파쿠오: 롬 6:17; 10:16; 빌 2:12; 살수 1:8; 3:14. 휘파쿠에: 롬 1:5; 5:19; 6:16; 15:18; 16:19, 26; 고후 10:5, 6). 이는 기독교인 자녀들의 부모 순종이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치심에 대한 복종에 동기를 둔 것이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 어떤 의미에서 믿는 자들의 부모 순종은 제자도 실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주의 진리를 따라 부모에게 순종하라. 믿는 자들은 진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모 순종은 말씀 진리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그들의 말이 다 의롭고 공정하고 옳을 수는 없다. 그들의 말은 주의 말씀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주의 진리의 범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제 바울은 자녀들에게 부모 순종을 독려하고자 두 가지 첨언을 한다.
첫째, 그는 부모 순종의 보편적 정당성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이 옳으니라"(1절 하. 투토 가르 에스틴 디카이 온). 바울은 무엇이 상식적으로 올바르고 적합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한다(비교. 빌 4:8; 골 4:1). 자녀가 부모 순종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가정 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보든 인륜적 도덕법적으로 보든 너무도 정당한 일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가정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인류 역사를 전개시키시고 그 안에서 구속 사역을 성취해 가시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다.

둘째, 그는 부모 순종의 언약적 축복에 대해 언급한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2-3절). 이것은 출 20:12; 신 5:16의 인용문으로 바울은 1절의 "부모"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순종하라"를 "공경하라"로 대신하게 한다. 여기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급의 명예로운 호칭이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해 주셨는데, 이 이름의 뜻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이다(창 17:5). 또 그의 아내 사래도 사라라고 개명해 주셨는데, 이 이름의 뜻은 "여러 민족의 어머니"이다 (창 17:15-16). 부모를 대표하는 "아버지"라는 호칭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와 속성에 참여하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시다(고전 8:6; 고후 6:18; 4:6; 1:17; 3:15; 살전 2:11; 비교. 12:7; 벧전 1:17).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의 존 재의 근원이 되시고(고전 8:6), 리를 사랑으로 품어주시며(고전 4:15; 요일 3:1), 영육 간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다(6:31-34; 7:11; 1:17). 바로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에 참여하고 있는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공경하다"(티마오)라는 말은 존경하는 것(롬 12:10),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것(살전 4:4; 히 2:9 상; 벧전 2:7), 값을 인정해 주는 것(참조. 마 27:6), 명예를 지켜주는 것(딤전 5:17)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서 이것을 지키는 자에게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고 하는 점이다. 사실 이 계명은 제 5계명인데 왜 첫 계명이라는 것인가? 십계명의 구조를 보면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이다. 후자에 있어서 제 5계명은 인간관계에 대한 첫 번째 계명이다. 바울은 이 계명에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는 축복의 약속이 첨부되어 있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것은 현세의 축복에 대한 약속으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이 땅에서 형통하고 장수를 누리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솔로몬도 젊은이를 향해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라고 교훈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큰 불상사나 재난 없이 자연은총을 누리며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불행을 즐거워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거나 현세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의 신비한 창조의 능력의 증거이듯이 또한 세상의 교회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의 산물이듯이 (엡 3:10), 우리의 땅에서의 형통과 장수는 궁극적 하늘 유업 상속의 시그널과 같은 것이다. 물론 신자가 기복신앙과 맘몬이즘, 세속주의, 물질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 탐욕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현세의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조롱거리로 여겨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임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인정하고 주어진 모든 기회들을 최선용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힘쓰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가꾸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훈련을 잘 쌓은 사람,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를 갈망하며 신실한 믿음으로 산 사람이 역사의 대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그 나라에 가장 적합한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선과 악이 혼재된 세상에 살고 있을지라도 부모 공경과 그에 따르는 형통과 장수의 복을 받아 누림으로써 대종말이 이를 때까지 인간 사회를 지탱해 가는 역할을 담당하기를 원하신다. 사회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의 갈등이 극도의 불안과 불신을 조장할지라도 역사가 아직도 자기 트렉 위를 달리는 것은 가정 제도를 통해, 특히 믿는 자들의 부모와 자녀 간의 바른 관계를 통해 구원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믿는 부모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동참하는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가진 입장에서 자녀들을 잘 키우라는 것이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4절).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부모에게 자녀를 가르치고 지도할 권위를 부여해 주셨다. 하나님은 부모 된 자가 자기 자녀에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서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워 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것을 열심히 강론하라고 당부하신다(신 6:5-7).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녀들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배를 받도록 열심히 가르치라는 것이다. 바울은 먼저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가르칠 때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격 무시, 편애, 비교, 불공평, 폭언, 억압, 수치심 자극 등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요소들이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은 주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육하여 주의 충만하심에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하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라고 경고한다(잠 10:17).

부모가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려면 자신이 먼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8-9).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을 바로 해야 할 것을 당부하며 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부모의 삶의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부지런히 배우지 않는 부모는 자녀에 대해 교육적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자녀는 부모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고 있는데, 부모가 배움에서 멈추어 있다면, 어느 순간 부모는 자녀에게 추월 당하고, 급성장해 가는 자녀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모도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중단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기 위해 부단히 힘쓰며, 부모라는 두 글자 안에 담긴 명예와 권위와 아름다운 지위를 잘 간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음의 잠언서 말씀들은 좋은 부모, 좋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백신 주사 같은 자극을 준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2, 25).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 10: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 7:1).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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