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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론’이란 무엇인가(1)

기사승인 2020.09.10  14: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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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방동섭 교수 /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제1장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

최근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용어가 전 세계에서 출판되는 신학 저술이나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신학적 토론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도 신학을 연구하는 서클이나 학자들이 이에 관한 신학적인 논문 혹은 저술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2014년 한국선교신학회에서도 이 주제의 시대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특집을 다룬 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 내부에서 '선교적 교회론'이라는 용어가 잘못 사용되고 있거나, 그 용어가 내포하는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혼선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용어의 지지자들 사이에도 용어 사용은 일정하지 않고 혼선을 일으키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의미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용어가 내포하는 개념과 사용에 있어서 혼동을 일으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 용어 사용의 혼동의 원인: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 사용이 교회 안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우선 역사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이 용어가 신학이라는 무대와 교회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 시간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념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용어가 처음 신학이라는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990년 대 이전의 신학적인 저술이나 역사의 기록을 찾아보면 우리는 이 용어를 거의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용어가 교회의 신학적인 토론이나 저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대럴 구더(Darrell L. Guder)가 편집하여 출판했던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책이 나온 이후부터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북미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복음과 문화 네트워크'(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의 진지한 토론과 신학적 연구의 결과로 출판되었다.

   
 

그렇다면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가 이렇게 교회 내부에서 갑자기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최근 서구 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쇠퇴하는 데서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기독교 국가라고 불렸던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교회가 쇠퇴하면서 기독교 후기 사회로 들어가고 있고, 심지어 반기독교적인 사회로 변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구의 선교학자, 신학자,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교회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인 신학적인 토론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런 토론 과정을 통해 서구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교회 정체성 회복과 위기 극복의 목적으로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용어가 활발하게 사용된 신학적 배경에는 영국의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의 사상적인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에 그의 지도력으로 인해 '복음과 이 시대의 문화'(the Gospel and Our Culture)의 대화가 영국에서 태동하게 되었고, 곧 이어 미국 신학계로 그 무대가 옮겨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조오지 헌스버거(George Hunsberger)를 중심으로 1990년 초 '복음과 이 시대의 문화 네트워크'(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가 형성되었고 선교적 교회에 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면서 이 용어는 더욱 깊은 신학적인 토론과 함께 실천적 적용을 활발하게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기독교 내부에서 상당수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비교적 최근에 신학계에 등장하게 된 이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우선 이 분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용어가 함의하고 있는 신학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충분하게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도 교회 지도자들이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상태로 볼 때 이 용어가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신학적으로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했고, 확실한 개념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마치 유행어처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용어 사용에 있어 혼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선교적 교회'에 대한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자리매김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선교 신학자들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지도자들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에 정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 사용에 있어서 혼동을 일으키게 된 또 다른 원인이 있다면 교회 내부에서 오랫동안 관용적으로 사용되었던 '선교하는 교회'라는 용어 때문이라고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와 선교적인 실천의 관계를 설명할 때 혹은 교회의 선교적인 사명을 강조할 때 '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 혹은 '선교 마인드의 교회'(Mission-Minded Church)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해 왔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인들에게 선교적인 도전을 강하게 주기 위해 설교나 강의를 통해서 이런 용어들을 자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서구의 기독교가 20세기에 들어와 기독교 후기 사회적 상황에 직면하면서 교회는 심각한 선교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선교하는 교회' '선교 마인드를 가진 교회'라는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아무리 선교를 강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선교적인 도전을 받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하는 교회' 혹은 '선교 마인드를 가진 교회'라는 용어를 아무리 강조해도 사람들에게 선교적인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의 선교적인 움직임과 헌신이 현저하게 축소되는 위기적 상황 속에서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그 대응책을 모색하게 되었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새롭게 일깨우기 위해 함께 노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교회 내부에서 새롭게 등장하게 된 선교 신학적인 개념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최근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라는 개념이다.

문제는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게 된 이 용어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처음부터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가 교회 내부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오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기존에 사용하고 있었던 '선교하는 교회' 혹은 '선교 마인드의 교회'라는 용어와 동일한 의미로 혼용하게 되었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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