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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기사승인 2020.09.23  14: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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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에베소서 해설(22)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김정훈 교수

새 사람의 영적 무장과 기도의 각성(엡 6:10-20)

바울은 4장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에 관한 교훈에 집중하면서 지금까지 “이미”와 “아직”의 이중종말론적 관점에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충만”(1:23)으로서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성한 분량”(4:13)에까지 성장해야 할 것을 권면하였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그의 가족의 일원이며(2:19) 그의 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들이지만(1:14), 세상에 사는 동안 실천적 삶을 통해 그러한 자신의 영적 신분을 입증해야 한다. 바울은 일찍이 교회 공동체를 “한 새 사람”으로 묘사한 일이 있다(2:15). 그는 이 개념을 믿는 자들 각자에게도 적용시켜 믿는 자는 실천적 삶을 통해 자신이 “새 사람”인 것을 실증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4:24). 그는 이러한 관점을 따라 믿는 자들이 “새 사람”으로서 교회와 사회와 가정에서 어떤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교훈하였다(4:25-6:9). 이토록 믿는 자들의 실천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울은 이제 마지막 당부와 함께 에베소서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는 과연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그가 역점을 두어 강조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새 사람으로서 철저히 영적 무장을 갖추고 기도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본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바울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라]”(10절)라는 명령문으로 마무리 단락을 시작한다. 이 단락의 원문은 네 개의 마침표를 가지고 있는데(10, 12, 17, 20절), 그중 첫 번째 것이 10절에 있는 것이다. 이 단락의 도입어인 “끝으로”는 에베소서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보통 편지를 쓸 때 마지막 말은 글을 매듭짓기 위한 형식어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바울은 이 단락에서 지금까지 자기가 한 말들을 근거로 수신자들에게 간곡한 당부를 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마지막 단락 또한 이전의 진술들 못지않게 중요성을 갖는다. 바울의 간곡한 호소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지라는 것이다. “그 힘”이 원문에는 “그의 힘”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 이것은 “주의 힘”을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나약함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다. 허약함을 미덕으로 여기며 무방비 상태로 사는 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강한 힘으로 무장해야 한다. 바울이 볼 때 믿는 자들은 세상의 악과 싸우며 살아야 할 뿐 아니라 그 배후의 조종자들인 악한 영들과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믿는 자들의 힘의 원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다. 그들은 주께로부터 나오는 “그의 힘의 능력”으로 충전될 때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의 가장 적극적인 의미는 그분께 사로잡히는 것이다(참조. 빌 3:12). 그리스도는 모든 악한 영들 위에 뛰어나신 분이시며, 만물 위에 뛰어나신 분이시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영적 군인들로서 완전무장을 해야 할 것을 호소한다(11-17절). 그는 서론적으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1절)라고 강권한다. 믿는 자들의 주적(主敵)은 마귀다. 믿는 자들이 마귀의 술책을 알고 치밀한 전략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 술책에 능하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감히 피조세계의 왕적 신분인 아담에게 접근하여 그를 타락시켰을 뿐 아니라,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기까지 하였다. 마귀는 지금도 여전히 불순종하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으로(엡 2:2)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며,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며(요 8:44), 악령들의 우두머리로 처음부터 범죄한 자이며(요일 3:8), 온 천하를 속이는 자다(계 12:9; 20:2). 믿는 자들이 이런 존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과중한 책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으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니 신경 끄고 있어라. 그냥 흐름 따라 살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 한다(롬 12:2). 그는 믿는 자들에게 이방인들처럼 마음의 허망함과 무감각, 무지, 완고함 가운데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정욕을 좇아 더러운 일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엡 4:17-19). 그는 또한 “거짓된 욕망을 따라 구습을 좇아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며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따라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고 교훈 한다(엡 4:22-24). 이러한 교훈을 실천에 옮기는 삶이 바로 마귀를 대적하는 삶이다.

마귀를 대적하는 삶을 살려면 우선적으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와 또한 마귀의 교활한 술책을 포착할 수 있는 감지력을 가져야 한다. 마귀는 무궁무진한 전략으로 인간을 현혹하고 파멸로 이끌어 간다. 그것은 악의 세력들의 우두머리로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전신갑주”(파노플리아)는 전투장비 일체로 중무장한 보병의 전투복장을 가리키는 용어다. 바울은 아마도 “전신갑주”라는 용어에 대해 수신자들이 자연스럽게 당시 로마 병사들의 전투복장을 연상할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자기가 구약성경에서 통찰을 얻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언급하는 군장(軍裝) 품목들은 부분적으로 이사야 11:4 하-5; 59:17(LXX)의 내용과 겹치기 때문이다(지혜서 5:17-20도 참조할 것). 바울은 이러한 구약 본문들을 배경에 두고 1세기 군인들의 군장을 떠올리면서 믿는 자들의 영적 무장에 대해 보다 풍부한 설명을 시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장동수, “그리스도의 군대,” 『프로에클레시아 』, Vol. 15[2009, 봄], 215-33).

바울은 자기가 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12절). 이것은 11절의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에 대한 주석적 언급이다. 믿는 자의 전투는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악한 영의 세력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바울은 1:21에서 “통치,” “권세,” “능력,” “주권,”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이라는 악령들의 명칭을 언급하였고, 2:2에서는 “공 중의 권세 잡은 자”를, 3:10에서는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4:27에서는 “마귀”(사탄)를 언급하였다(참조. 롬 8:38; 고전 15:24; 골 1:16; 2:10, 15도 볼 것). 지금 6:12에서는 “통치자들,”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언급하고 있다(참 조. Clinton E. Arnold, Power and Magic: The Concept of power in Ephesians[Grand Rapids: Baker Books, 1992]; 그레이엄 H. 트웰프트리, 『초기 기독교와 축귀사역』, 이용중 옮김[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공중의 권세 잡은 자마귀는 악한 영들의 정점에 있는 최고 우두머리인 사탄을 가리킨다. 나머지들은 이 우두머리의 지휘를 받는 참모들 정도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들은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악한 천사적 존재들로 보인다(유다서 6). 바울의 다른 서신서에는 귀신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최하위급 잡신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귀신은 주로 우상을 이용하며 인간의 종교성을 왜곡시키고(고전 10:20-21), 인간의 건전한 이성의 활동을 훼방하기도 한다(딤전 4:1). 복음서에 보면 귀신들은 사람들을 병마에 시달리게도 하고, 괴상한 행동을 하게도 하고, 복음 전파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보다 강하고 지략이 뛰어난 악한 영들 곧 마귀와 그의 참모들과 더러운 잡신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전신갑주곧 하나님이 제작해 주신 무장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은 이 사실이 너무 중요하기에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이와 같이 완전무장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바울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13절). “악한 날”은 우리가 끊임없이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으며 사는 현세대를 가리킨다.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다 마치고 승리한 후에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바울은 악한 영들과의 대접전이 끝난 이후까지를 전망하고 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항목별로 제시한다(14-17절). 그가 제시하는 군장 품목은 여섯 가지인데, 다섯 가지는 방어용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공격용이다.

첫째, 진리의 허리띠로 무장해야 한다. 원문에 허리띠 개념이 직접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진리로 허리를 동이라고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진술은 허리띠 이미지(image)를 상정하는 것이 분명하다.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파한 복음 진리와 이 진리를 받아들인 믿는 자들의 마음과 행동의 진실성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심령이 변화되고, 정결한 마음을 품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진리로 허리를 동인 사람이다.

둘째, 의의 호심경으로 무장해야 한다. “호심경”(쏘락스)은 구약시대에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이 심장 보호를 위해 왼쪽 가슴에 부착했던 철제 보호대를 뜻한다(사 59:17 LXX. 여기서도 같은 단어 ‘쏘락스’를 씀. 한글개역개정은 ‘갑옷’이라고 번역하나 다소 부적절함). 1세기에 로마 군인들도 전투에 임할 때 심장 부위에 “쏘락스”라 하는 놋쇠로 만든 호신용(護身用) 보호대를 찼다. “의의 호심경”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를 가리킨다. 믿는 자가 하나님의 의로 자기의 심장을 감싸고 그 의를 실천하며 산다면 그는 어떤 사탄의 공격도 막아내고 자기의 영적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발로 무장해야 한다. 원문에 신발이나 군화 개념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원문은 단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함을 발에 신고”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진술은 신발이나 군화 개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신발 개념을 넣어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믿는 자가 영적 전쟁에 나서며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된 신발을 신는 것은 군화를 착용하는 것과 같다. “평안의 복음”은 복음의 핵심 기능이 화평케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복음은 죄악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가 청산된 것과 다른 사람과의 증오 관계가 해소된 것을 선언한다. 복음의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은 아름다운 발이다(참조. 사 52:7). 복음의 신발이 아닌 다른 신발을 착용한 자는 전쟁터를 누비고 다 닐 수 없다. 복음의 신발보다 더 성능이 좋은 신발은 없다. 복음을 바로 알면 알수록 믿는 자의 행보는 더욱 힘있게 될 것이다.

넷째, 믿음의 방패로 무장해야 한다. “방패”는 로마 군인들이 사용했던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호신용 군장품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반응으로써 선택/예정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신비적 행위와 만물통일이라고 하는 그의 원대한 뜻과 계획을 이해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와 영원한 하늘 유업의 상속에 대한 성령의 보증을 믿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믿음의 방패를 가질 때 우리는 적들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로 무장해야 한다. “투구”(페리케팔라이아)는 로마 군인들이 착용했던 청동으로 만든 머리 보호용 군장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이사야 59:17의 여호와의 투구를 생각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이미 실현되었다고 선언하며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이루라고 교훈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성취된 사실을 확신하고, 이 구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해 나간다면 우리는 악한 영들의 맹렬한 공격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칭의가 유보되었다거나 주의 재림 때 가보아야 우리의 구원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주장은 믿는 자들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오해하고 윤리적 실천을 통한 하나님의 의의 실현이라고 하는 거룩한 소명을 도외시한 채 이중적이고 위선적 행위를 자행해 온 데 대한 반대급부적 질책처럼 들린다. 우리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회개하며 삶을 통한 구원의 실현이라고 하는 엄숙한 명령 앞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무장 중 유일한 공격용 무기다. “검”(마카이라)는 로마 군인들이 사용했던, 예리한 단칼을 가리킨다. 화살을 쏘는 것이 아니라 단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것은 적병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령의 검”이란 “성령의 능력이 역사(役事)하는 검”이란 뜻이다. 바울은 “성령의 검”을 언급한 후에 그것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석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권능으로 역사하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 있을 때(히 4: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검과 같이 사용하여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신다. 악한 영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가공할 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수도 없이 고백하면서 그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그보다 더 큰 모순은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 여섯 가지 품목을 제시한 바울은 수신자들이기도 가운데 각성할 것을 당부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18절). 원문으로부터 이 절을 번역해 보면 이와 같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성도에 대한 간구로써 깨어있[으라].” 믿는 자들은 영적 군인들로서 경계태세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최신예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군인이 잠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 실제로 군대에서 한밤중에도 초병을 세우는 것은 경계태세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악한 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기도”는 포괄적 의미의 기원을, “간구”는 간청이나 탄원을 의미한다. “기도와 간구” 앞에 “모든”을 붙인 것은 크고 작은 모든 일에 항상 기도할 것을 당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를 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성령의 인도와 상관없이 내 의사를 따라 내 뜻대로 하는 기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도가 아니다. “이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성도에 대한 간구로써 깨어 있으라”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향제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 군인으로서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인내와 다른 성도들을 위한 간구로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바울은 추가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19절). 부탁 내용은 그의 사도적 사명과 관련된 것으로, 주께서 자기에게 계속 말씀을 주셔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바울은 사실 말씀의 은사가 충만한 사도로서 지금까지 목숨을 바쳐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해 온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계속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기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얼마나 겸손한 태도인가? 바울의 겸손은 그가 개척한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가 개척하지 않은 교회의 성도들에게까지도 그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동아줄과 같은 것이었다. 복음 전파에 관한 한 바울은 30년 넘게 사역해 온 베테랑(veteran)이다. 그러나 그는 순간 순간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말씀을 증언할 수 있기를 사모하였다. “복음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하게 하는 사역을 통해 교회의 구성원들인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 없이 한 믿음의 토대 위에서 구원받는 진리를 가리킨다. 그들은 과거에 원수관계에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한 새 사람,” “한 몸”이 되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된 존재들이다. 바울은 앞의 여러 장들에서 이미 “그[하나님의] 뜻의 비밀”(1:9), “계시로... 비밀”(3:3), “그리스도의 비밀”(3:4),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3:9), “이 비밀”(5:32)이란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으로 “복음”과 관련된 것들이다. 복음의 비밀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이미 드러난 것이지만 믿는 않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바울은 얼마나 복음 전파 사역에 충실하였는지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사신(使臣)이 된 것은 주께서 복음 진리를 담대하게 전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20절).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그는 쇠사슬에 매인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감금된 것은 감옥을 지키는 감시병들과 그곳에서 만나는 자들까지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네로 황제 앞에서 재판받을 일을 예상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무장을 다짐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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