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카우보이가 된 복음주의자 데이빗 베빙턴 교수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0.09.25  11:05:30

공유
default_news_ad1

- 은퇴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다(12)

본 대담은 미국 남부의 기독교 대학인 베일러 대학교가 데이빗 베빙턴 교수의 복음주의적인 업적을 기념하는 특별 강좌 시리즈를 마련하였고, 그 행사 중간에 진행된 공개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사회: 베리 한킨스(Barry Hankins) 교수 / 미국 텍사스 베일러 대학교(Baylor University) 학사와 석사, 미 캔자스 주립 대학교 박사, 미 루지애나 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베일러 대학교 교회와 국가 관계학 교수, 미 복음주의와 관계된 저서와 글들을 다수 발표했다

대담: 데이빗 베빙턴(David W. Bebbington) 교수 /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학사 및 박사, 캠브릿지 대학교 연구원 역임, 영국 스코틀랜드 스털링 대학교(University of Sterling) 40년 교수 사역, 영국 교회사학회 회장 역임, 스코틀랜드 교회사학회 회장 역임했다. 현재는 스털링 대학교 명예 교수, 미 베일러 대학교 특임 교수, 에딘버러 왕립 학술원(FRSE) 회원, 영국 왕립 역사 학술원(FRHistS) 회원으로 있다

편집: 최은수 교수

   
▲ 데이빗 베빙턴 교수

베리 한킨스 교수: 복음주의와 그 역사에 대하여 평생 연구해 오시고 지구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고 계신 데이빗 베빙톤 교수님과 대담하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교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시카고 휘튼 컬리지에서 열린 학회였는데요. 저는 그 당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루지애나 대학교 조교수로 활동을 시작했던 신출내기 학자였고, 교수님과 마크 놀(Mark Noll) 교수님 등은 이미 권위 있는 학자로서 세계 복음주의 학계에서 정점에 있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교수님이 스털링 대학교에서 은퇴하시고 저와 함께 텍사스주의 한 켠에서 선후배 학자요 동료로서 지낼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교수님이 교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신 교수님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요?

데이빗 베빙턴 교수: 제가 6세 무렵에 저의 이모님이 그림으로 된 잉글랜드의 역사책을 선물해 주셨어요. 그 책을 열어 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전신갑주를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기사를 보고 감탄을 연발하였지요. 사진과 함께 쓰여진 글귀들도 참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제 부모님도 저를 데리고 역사적인 유적지들을 자주 방문 했습니다. 제가 11세 때 부모님과 함께 리버풀 근처에 있는 콘위 성(Conwy Castle)에 갔었는데, 그 성의 위용에 압도되었어요. 콘위 성은 그 앞으로 흐르는 강을 압도했고,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도 품을 정도로 웅장했습니다. 저는 학교로 돌아와서 콘위 성에 대한 에세이를 썼을 정도로 굉장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커져 갔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대한 희열에 사로잡혀 갔습니다.

베리 한킨스 교수: 베빙턴 교수님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세계적으로 명문인 캠브릿지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어떻게 대학 과정부터 시작하여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고, 그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강의나 교수님이 있었는지요? 박사 학위 논문과 관련해서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설교하는 데이빗 베빙턴 교수

데이빗 베빙턴 교수: 제가 캠브릿지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저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에 황무지와도 같았던 비국교도들의 교회와 신앙에 대한 역사 서술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알고 싶었던 비국교도, 즉 넓은 의미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청교도라고 할 수 있고 좁은 의미로는 침례교와 같은 소수파에 대한 기록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이런 연구의 기초가 되는 학부 과정을 공부하면서 저는 캠브릿지의 커리큘럼에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인상 깊게 들었던 정치사상사를 심도 깊게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매우 젊은 학자였던 퀸틴 스키너(Quentin Skinner) 교수님이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상의 발전 과정을 소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키너 교수님은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정치사상의 발전사를 교수하셨지요. 제가 학부 2학년과 3학년에 걸쳐서 강의를 열정적으로 청취하였지요. 스키너 교수님의 강의는 결국 정치사상사가 종교사상사와 연결되고, 더 나아가 기독교 역사관과 역사 서술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주었지요.

베리 한킨스 교수: 교수님이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털링 대학교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계셨을 무렵에 미국의 유수한 대학교들로부터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는 제안들이 교수님께 제시되었는데, 교수님도 이런 제안들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을 보이시면서도 결국에는 스털링 대학교에 남으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베빙턴 교수님께서 미국에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영국에는 비교적 소수의 복음자들이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먼저라고 하시면서 모든 제안들을 고사하셨습니다. 영국 복음주의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데이빗 베빙턴 교수: 제가 그런 제안들을 받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저의 장모님이 많이 아프셔서 저희 부부가 옆에서 돌봐드려야 하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베리 한킨스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당시 제가 보았을 때, 미국에는 각 신학교에서 좋은 교회사 교수님들이 가르치고 계셨고, 일반 대학에 있는 기독교 학과나 종교학과에서도 복음적인 학자들이 다수 포진하여 훌륭한 교육을 펼치고 있었어요. 아울러 복음주의적인 학회들도 모든 면에서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었고요. 하지만 영국의 상황은 좋지 않았어요. 이를테면, 손에 꼽을 정도로 복음주의 학자들이 많지 않았는데, 제가 교수 초년생으로 학회에 갔을 때 학회장으로 계시던 분이 레지 워드 교수님으로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치시고 계셨어요. 워드 교수님은 원시적 감리교회 소속이셨는데 성격이 호탕하고 복음적인 학자셨지요. 또 한 분은 존 브릭스 교수님으로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오래 교수하시면서 침례교 신학교에서도 강의하시던 분이셨지요. 하여튼 미국보다는 훨씬 적은 학자들이 영국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 베리 한킨스 교수

베리 한킨스 교수: 데이빗 베빙톤 교수님 하면 복음주의와 그 운동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중에서는 베빙턴의 복음주의에 대한 네 가지 분류’(Bebbington’s Quadrilateral), 즉 성경주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주의, 회심주의, 그리고 행동주의 등이 세계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런 네 가지 분류를 하시게 된 배경과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데이빗 베빙턴 교수: 제가 영국의 비국교도를 연구해서 캠브릿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 비국교도들이 자연스럽게 복음주의자들이 되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통이며 복음적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복음주의가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복음주의자를 규정하기 위해 네 가지 분류를 하게 된 것이지요. 이 분류를 하고 나서 제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분류한 복음주의의 네 가지 특징들을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작은 시내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베리 한킨스 교수: 베빙턴 교수님이 개인 소장으로는 경이적인 서적과 소장품을 가지고 계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소장품들과 서적들을 구입하시게 되었고, 어디에 보관하고 계신지요?

데이빗 베빙턴 교수: 저의 나이 15세 때 우리 가족이 아름다운 스카보러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어요. 거기서 제가 생애 최초로 중고서점에서 소책자를 구입한 것이 시초입니다. 당시 영국의 수도인 런던에서는 대규모로 중고책을 파는 시장이 열리기도 했는데 저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기차를 타고 여행도 할 겸 해서 제가 관심이 있어 하는 분야의 중고책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들이 무진장 많아졌어요. 제가 스털링 대학교에서 은퇴하기 전부터 정원에 임시 건물을 지어 소규모 도서관처럼 꾸몄고, 차고부터 해서 집 안 구석구석에 책을 소장하고 있지요. 대략 25,000권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베리 한킨스 교수: 베빙턴 교수님이 스털링 대학교에서 기록적인 복무 기록을 남기시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교육 경험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과연 무엇이 이 모든 기록을 가능하게 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데이빗 베빙턴 교수: 제가 정확히 43년 교수로 스털링에서 가르치고 연구를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대학 역사상 두 번째로 장기 복무자라고 합니다. 저보다 1년 더 근무하신 분은 학자가 아니고 직원이기 때문에, 전임 교수로는 제가 유일한 셈입니다. 스털링 대학교는 저에게 정말 많은 기회들을 주었어요. 이를테면, 연구를 하거나 학회에 참석 할 때, 대학에서 저의 모든 경비를 책임져 주었어요.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여행 경비와 제반 비용을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아울러 스털링 대학교는 제가 베일러 대학교에 와서 강의하며 활동하도록 적극 격려하고 돕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했던 교수진들도 모두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제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감사한 일은 만성피로증으로 고생하고 강의를 제대로 못할 때도 저를 이해해 주고 역할을 분담하는 희생을 아끼지 않은 점입니다. 저는 평범한 학생들을 교육시켜서 세계 최고 수준의 능력자로 키워내는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베리 한킨스 교수: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의 미래에 대하여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 복음주의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데이빗 베빙턴 교수: 복음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생명력을 자랑하며 흥왕해 가리라 봅니다. 특히 복음주의에 대한 연구가 각 나라별로 심도 깊게 진행 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각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북미 대륙과 유럽 대륙을 포함하여 다른 지역과의 긴밀한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편집 후기: 편집자가 아는 데이빗 베빙턴 교수님은 교회를 향한 열정과 사랑이 넘쳐 흘렀다. 그는 평생 스털링에 살면서 복음적인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시고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에 재능이 있는 일반 성도에게 주는 강도권을 허락 받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설교하였다.

교수님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스털링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다. 일반적으로 잉글랜드 출신이 스코틀랜드에 와서 살면 외국인처럼 대우받고 적응하기 쉽지 않은데, 교수님은 항상 겸손한 태도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평생 친구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경계심도 많고 배타적이어서 사귀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일단 친구가 되고 나면 성경에 나온 말씀처럼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친구가 된다.

참고로, 편집자가 장로교 본산지인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사를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늘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편집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세계 최초의 노회가 스털링에서 회집하였다. 스털링 성에서 내려오다 보면 정면에 스털링 고문서 보관소가 있는데, 세계 최초의 노회가 회집한 기록이 노회록으로 남아 있다. 편집자는 그 사본을 가지고 있다. 베빙턴 교수님의 스털링에 대한 사랑 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거기서 벌어졌다. 중세시대에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던 스코틀랜드가 윌리엄 월레스의 지도력으로 독립 투쟁의 서막을 올렸고, 급기야는 로버트 브루스라는 국왕의 영도하에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 중심이 바로 스털링이다. 스털링 성 앞 광장에 보면 독립 왕국을 실현한 로버트 브루스가 말을 타고 호령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거기서 반대편으로 멀리 바라보면 또 다른 영웅인 윌리엄 월레스의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라는 작품의 배경도 스털링이었다.

데이빗 베빙턴 교수님의 대담을 편집하면서 교수님의 교회 역사에 대한 소명과 자신의 조국인 영국 복음주의권에 대한 사명감을 통해 큰 감명을 받았다. 실제적으로 미국 학자들의 경우를 볼 것 같으면, 자본주의 생리에 따라서 더 나은 대우를 제시하는 학교로 뒤도 안 돌아보고 이직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미국식 자본주의에 물든 학자들은 베빙턴 교수님의 선택을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그의 교회를 사랑하는 헌신과 열정, 그가 사랑하는 교회의 역사를 사명감으로 기록하고,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교회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의 땀방울들에 자연스럽게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