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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잡은 두 손

기사승인 2020.10.05  13: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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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 /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 송길원 목사

아가, 고맙다. 우리 며느리가 고생이 많았다.”
“뭘요. 어머니가 고생 많으셨지요.”

둘은 손을 놓치지 못했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는 말없이 울고 계셨다. 아침 식탁, 오늘 아침은 아내의 기도 차례였다. 기도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자식들) 하나라도 더 먹이고파 무거운 짐 이고지고 자식들 집 찾아오셨던 어머니, 이젠 허리마저 휘었습니다.”

기도는 울먹임으로 엉켰다. 이어 “아버님은 많이 아프십니다. 집에 머무는 동안에라도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편히 쉬게 해 주세요.” 참고 있던 나도 울컥, 아버지는 며느리를 한없이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서들 드시라’고 서둘러 식사를 재촉했다. 화제는 동생네가 추석 때 마련해 놓고 간 바다 고기 이야기로 이어졌다. ‘음식의 기억’은 무서웠다. 아버지는 괌에서 드셨던 L.A갈비를 잊지 못했다. 아내는 어머니의 나물 솜씨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둘째 동생과 산에서 나무를 해다 끓이던 밥솥을 기억해 냈다. 밥을 먹으면서 밥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의 밥상에 대한 모욕도 경멸도 아니다. 눈앞의 밥상이 옛 밥상을 소환해 낼 때 비로소 성찬이 된다.

   
 

‘밥상’이 ‘밥상’을 낳고… 밥상 복음은 이렇게 탄생한다. 밥을 먹는 게 아니다.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다. 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이야기하는 존재가 인간 말고 또 있는가 말이다. 이래서 인간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삶이 규정된다.

성찬(聖餐)이 그렇다. 빵과 포도주가 아닌 주님이 남기신 이야기를 먹는다. 약속을 먹고 마신다. 이래서 유물론자 포이어바흐가 말했던 ‘인간은 그가 먹는 그것’(Der Mensch ist, was er ißt.)이란 말은 참으로 역설이다.

식사가 마무리 지어질 무렵, 아내의 오래된 편지가 생각났다. 편지글을 아내더러 직접 읽으라했더니 날 더러 읽으란다.

이제 당신 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여자의 기다림은 요리로부터 시작해요. 김칫거리 사러 시장엘 갔더니 가늘지만 작고 단단해 뵈는 한국 쪽파가 있어요. 미국 파는 희멀거니 크기만 컸지 매운 맛도 없고 싱겁기 짝이 없는데 파김치 좋아하는 당신 생각나 반가운 김에 10단을 샀어요. 배추김치도 조금 담그려 했는데 낱개로 사면 포기당 2불이 넘으니 할 수 없이 9불 주고 열 세단 든 것을 박스째 사구요. 쪽파를 일일이 손으로 다듬고 50포기 정도 되는 배추 잘라서, 절이고 씻고 양념하고 그러다 보니 새벽 다섯시더라고요. 밤을 홀딱 샌 거죠.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알아요? 어머님 생각했어요. 파김치, 갓김치, 고들빼기 등등 담궈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야야, 이것 손으로 일일이 다듬느라 날 새는 줄 몰랐다, 난 갑갑해서 일일이 손으로 까고 김치도 그냥 버무리니 피부가 성할 날이 없어 하시면서 갈라 터진 손가락을 펴 보이곤 하셨죠. 마디마디 피부가 허옇게 일어나 까칠한 그 손엔 자식들 한 끼 맛있게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있었어요.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살아온 삶 속에서 부지런히 자식들 좋아하는 먹거리 장만하며 그리움 삭이고, 고구마랑, 토란대, 마늘, 콩, 옥수수, 미역 등으로 광이 점점 차오르고 냉동실에 장어랑 조개, 새우, 아나고, 숭어회 등이 넘쳐날 즈음이면 보따리 여물게 싸서 자식들 집 찾아와 “쌀 땐 많은데 펴놓으면 아무것도 아니여”라고 쑥스러워하시며 한 켠에 접어두었던 그리움과 함께 풀어놓았죠. 그 푸짐한 고향의 맛에 머리 맞대고 한 끼 밥 맛있게 후딱 먹어치우는 자식들 보는 재미로 다가올 헤어짐의 시간들을 견뎌내는 거죠.

매운 냄새에 몇 번이고 눈물을 닦아가면서 그 어머니의 사랑, 여자의 사랑이 대를 이어가며, 대상을 달리 해가며 재현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배추김치를 벌써 4번째 실패했는데 어제는 요리책 펴놓고 “하나님, 남편 와서 한 끼라도 맛있게 먹고 가도록 이번에는 성공하게 해주세요” 기도까지 해가며 담궜는데 그 덕분인지 준이가 익지도 않은 생김치를 “와, 엄마 최고로 맛있다” 칭찬해가며 갈비찜이랑 두 그릇 후딱 비우더라고요. 저장하고 풀어놓을 먹거리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을 요리에 담아내는 건 잦은 헤어짐과 만남의 길을 걸어왔던 한 여성이 다음 세대에 물려준 본능적인 생존 방식인거죠.

그냥 어머님 생각하고 당신 생각했어요.
만날 그날까지 건강 조심하시구요.

사랑해요.
사랑하는 아내 드림

조용히 들으시며 눈물 짓던 어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서로의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아내 손을 붙잡고 내게 당부했다.

“우리 며느리 아껴주어라. 시집와서 고생 많았다.”

맞다. 우리네 인생은 내가 눈 감을 때 마지막으로 내 손 붙잡아 줄 사람 사랑해 살기도 벅차다.

송길원 목사 happyhome1009@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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