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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기사승인 2020.10.07  10: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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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예년 같으면 지금쯤의 산하는 하루가 다르게 울긋불긋해졌는데 올해는 아직도 푸른빛이 더 많다. 여름이 가기 싫어 그런 것인지 가을이 오기 싫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올 여름은 코로나19가 허가 없이 지구촌을 엄습해서 여름다운 여름을 보내지 못한 듯 서운함이 있다. 더위도 그리 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마도 유래 없이 길었고 태풍의 방문도 잦았다. 비의 덕도 본 듯 올 가을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며 한가하고 여유롭게 내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안긴다. 비록 나뭇잎으로는 가을을 느끼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소슬한 바람과 푸른 하늘은 역시 가을임을 알려준다.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된다. 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지를 만들었는데 그때 나는 <깊어가는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인생을 얼마 살지 않은, 인생으로 치면 막 봄을 맞으려는 애송이 소녀가 가을에 대한 정서를 얼마나 가지고 있어 그런 글을 썼을까?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지금은 아득하지만 가을이 주는 선선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가 주는 정서를 나름 표현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 마지막 부분에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라고 썼던 것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말없음표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지금도 나에게 말 없음으로 말하고 있다. 50여 년 전인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지금도 깊어가는 가을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다.

   
 

이상하게도 해마다 여름 끝자락에 이르면 곧 다가올 가을에 대해 욕심이 생긴다. 세월가는대로 그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숙제를 잔뜩 안은 것만 같다. 그것은 가을이 실제로 주는 멋보다 더 멋지게 보내고 싶은 기대감과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조용한 명령의 부담감인지도 모르겠다. 기대 속에 가을을 맞이하고 그 기대가 나를 충족시켜 줄 것을 또 기대하다 보면 어느 새 가을은 가고 겨울이 내 맘을 두드린다. 그렇게 가을 맞기를 얼마나 했을까? 올해도 별다른 이변 없이 이제껏 해 오던 대로 가을을 맞고 또 지금도 막연한 어떤 기대 속에 가을을 보내고 있다.

여름을 잘 보낸 사람은 찾아온 가을이 즐거울 것이고 그 즐거움은 또한 겨울로 이어질 것이지만 여름이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은 가을을 기대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가을도 마찬가지일진대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지난여름은 코로나19로 인해 조금은 힘들고 우울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가을이 벌써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비록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있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또 한 번의 여름을 잘 보냈음을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잘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가을의 대명사인 푸른 하늘과 소슬한 바람과 이따금씩 철 이르게 떨어지는 나뭇잎과 점점 변해가는 산과 들의 정경들이 완벽한 가을의 한 중앙에 있음을 자연스레 알리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이 저 멀리서 손짓하며 달려오고 있다. 그 손짓은 가슴에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너울지듯 밀려오고 가을의 상념들이 애잔함을 남긴다.

화분의 국화꽃 속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창밖의 나무 모습도 가을이 익어감을 알리고 있다.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은 익어가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다. 선선한 바람과 높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면 문득 발걸음이 멈춰진다. 갑자기 달력 위로 눈이 간다. 그냥 무심코 보던 달력이건만 새삼스럽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어느 새 인생 가을 속에 있는 내가 보인다. 나를 세상에 보내신 주님이 기대하는 나의 가을은 제대로 맞은 것일까? 과실나무는 제각기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뽐내며 가을을 맞는데 인생 가을인 나는 어떠한가. 그리고 올 한 해에 맺힌 나의 열매는 무엇인가. 한낱 미물도 작은 열매를 맺어 그 주인에게 기쁨을 주건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나는 무슨 열매를 드릴 것인가? 많은 생각이 나 자신을 보게 한다.

이렇듯 깊어가는 가을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그 생각들이 내 맘을 자극한다. 높아 가는 가을 하늘만큼만 나의 모든 삶의 것들이 높아지기를, 선선하고 온화한 날씨만큼만 나의 모든 것이 순탄하기를, 들판에 익어 가는 곡식만큼 겸손해지기를 이 가을에 다시 주문한다.

슬슬 한 해를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저물어가는 한 해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여 온다. 이제 곧 겨울이 오리라는 암시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금 나는 깊어가는 인생의 가을 속으로 열심히 걷고 있다. 그리고 곧 겨울을 만날 것이다.

거울을 본다. 웬 할미 한 사람이 거기에 서 있다. 깜짝 놀라 물었다. “당신 누구요?” 그 할미는 말이 없다. 다만 잎이 무성한 싱그러운 나무 같은 젊음의 앞모습을 자랑하던 때를 지나, 모든 잎이 다 떨어져 없는 겨울의 나목 같은, 쳐다보라고 말해야 가까스로 바라보게 되는 나의 뒷모습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답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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