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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론’이란 무엇인가?(4)

기사승인 2020.10.08  14: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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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방동섭 교수 /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제2장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방향성
2. 선교적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선교적 교회’를 다룰 때 놓쳐서는 안 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선교적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성이다. 앤드류 컥(J. Andrew Kirk)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통치 혹은 주권을 철저하게 다루지 않은 채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는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의 선교학 연구 분야에서 학자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와 선교의 관계성을 다루는 것임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선교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나 지도자들이 선교적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성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선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벤엥겐(Charles Van Engen)은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하여 교회를 볼 수 없다면 교회의 선교의 넓이와 깊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교회의 선교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하는 것처럼 주장을 하거나 하나님의 나라 어떤 영적 권세를 가진 것처럼 과도하게 자신을 나타내고 행동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성을 갖고 있는가? 우선 교회의 기원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통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지상에서 존재하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의 표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준다. “교회는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들에 대한 도구이며 표지이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종으로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해스팅스(Ross Hastings)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성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나라의 공동체이며, 그 나라의 종, 그 나라의 표지, 그 나라의 최종적 완성의 예표이다”라고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죄악성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때로 불완전하고 연약하며 심지어 타락한 모습까지 보이게 된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좌의 위치에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현재적으로 또 분명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표지로써 그 나라를 대표 하는 이런 교회가 선교에 헌신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선교에 헌신할 때 교회는 가시적으로 성장하거나 그 힘이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의 선교는 “교회 성장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와 관련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선교에 헌신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가 선교의 출발점이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해야 한다. 물론 지상의 교회가 선교적인 실천에 헌신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종 교회가 선교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혹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런 표현들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에 관하여 ‘세운다’ 혹은 ‘확장한다’는 신약의 어법은 발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약의 어법은 받는다혹은 들어간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 주인이신 주권적인 하나님께서만이 세우실 수 있고, 확장하실 수 있고, 완성하시게 될 것이다. 교회는 다만 선교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가 무엇인지 세상에 증거하고 알리는 사명이 있을 뿐이다. 앤드류 컥(J. Andrew Kirk)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련성에 대해 매우 적절하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나라의 의미와 관련성을 의식적으로 전파한다”고 하였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선교적인 실천에 헌신할 때 교회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단지 힘 있고 부유한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나 돈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는 선교를 실천할 때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측면을 이해하면서 긍휼과 자비의 사역, 치료와 회복의 사역, 정의와 개혁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선교적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하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단지 어떤 종교적인 조직이나 단체가 선교 프로그램이나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을 매순간 경험하는 공동체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증거하는 공동체이다. 그 결과 이 세상 사람들은 ‘선교적 교회’의 증거와 삶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증거의 사역과 선교의 실천은 “우주의 재창조를 위한 새로운 인류의 표상인 교회, 즉 하나님의 나라의 표지이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종인 교회에 의해서만 실천될 수 있다.”

교회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는 소망 속에 살아간다. 교회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바라보며 종말론적인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면 선교의 실천이다. “선교에 헌신하고 있을 때 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기에 이 땅에서 그 나라가 무엇인지, 그 나라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선교의 사명에 헌신하게 된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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