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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정동수 씨(사랑침례교회) ‘예의 주시, 교류 자제’ 규정

기사승인 2020.10.23  1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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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제임스 영어 성경 관련 지나친 극단적 주장 등 문제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장 박영호 목사) 총회가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씨의 사상에 대해 ‘예의 주시, 교류 자제’라는 규정을 내렸다. 고신총회는 지난 10월 20일 고려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정책 총회에서 제 70회 총회(2020년)에 보고된 ‘정동수 씨’에 대한 내용을 그대로 받기로 했다.

   
사랑침례교회(정동수) 홈페이지 화면

고신총회는 정동수 씨의 사상에 대해 “우리는 정동수 목사와 그와 관련된 단체들이 지나친 극단적인 주장들을 삼가하고 올바르고 건전한 견해를 가지게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며 “우리 교단의 성도들이 그런 잘못된 극단적인 주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언급했다.

계속해서 “정동수 목사의 주장과 킹제임스 영어성경의 절대화와 국내 성경의 은연중 비판과 비하는 많은 성도들의 성경관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며 “그러므로 예의주시하고 교류 자제하는 것이 가한 줄로 안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에서도 정동수 씨(사랑침례교회)에 대해 이미 “이단성이 있음으로 예의 주시한다”는 규정을 내린 바 있다(104회, 2019년 총회, 참고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48).

아래는 정동수 씨(사랑침례교회)에 대한 고신 보고서(2020) 전문이다.

 

정동수 목사의 KJV 성경 입장에 대한 연구보고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정동수 목사는 모 대학 기계공학과 교수를 하면서 인천의 사랑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는 원래 기계공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했으며, 미국 펜사콜라크리스천대학의 신학대학원에서 문학석사(M.A.) 과정에서 2년을 공부하여 2001년에 성경강해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01년 미국 Bible for Today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2008년에 현재의 사랑침례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그 교회의 신앙고백은 교회 홈페이지(http://cbck.org)에 “우리의 믿음”이란 제목 하에 게시되어 있는데, 대체로 침례교의 신학적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전통적인 신관, 기독론, 죄론, 구원론 등을 가지고 있다. 교회론에서는 장로 직분이 없고 목사와 집사만 말하고 있으며, 또 침례(침수례)를 강조한다. 시민 정부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사형제도도 지지하고 있다. 종말론에 있어서는 오늘날 다수의 미국 침례교회가 그러한 것처럼 휴거와 7년 환난기와 그 끝에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믿는 등 세대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1. 그의 성경관

정동수 목사의 입장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의 성경관에 있다. 그는 먼저 1647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조 ‘성경 편’의 10개항 전체를 믿으며, 특히 8항에 따라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 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1611년 출간된 이래로 400년 이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널리 보급되었으며 침례교회를 비롯하여 대다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신앙고백의 근간이 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 세상의 대중이 사용하는 통속적인 언어로 번역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그 영어 성경을 신실하게 우리말로 번역한 성경으로서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데 충분한 성경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 읽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암송하고 설교할 때에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정동수 목사가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거의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본에 대한 그의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곧,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보존되어 온 ‘전통 본문’을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그가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성경지킴이(new.keepbible.com) 사이트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사이트의 시작 페이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 사이트는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English King James Bible)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위해 지금까지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바른 성경임을 알리고 동시에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2000년도에 처음 출간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판매/보급하기 위해 정동수 형제(사랑침례교회 목사, 인하대학교 교수, 신학대학원석사, 공학박사)가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성경지킴이에 있는 “우리의 믿음”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순수하게 지키시고 보존하셨음을 말하며, 이 보존된 본문이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며 신약에서는 「그리스어 전통 본문」이라고 본다. 이렇게 순수하게 보존된 두 본문을 가장 충실하고 정확하게 번역한 영어성경이 바로 「권위역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조 8항에서 말하는 ‘성경의 보존’을 오해한 데서 온 것이다. 곧,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 이해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부분 신앙고백의 원문을 직역하면 “(구약과 신약 성경은) 그의 특별한 돌봄과 섭리에 의해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이다. 여기서 ‘순수하게’(pure)란 것은 조금의 실수와 오류도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성경을 손으로 필사했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스럽게 필사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부주의나 실수 또는 고의에 의한 생략이나 첨가, 오류, 변경 등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현존하는 헬라어 사본들 중에 정확하게 서로 일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조금씩 다르고 차이가 있기 때문에 “100% 순수하게” 보존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의 순수한 보존’은 우리가 구원 얻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이 명료하고 충분하게 계시되었다고 하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종교개혁자들이 말한 성경의 ‘명료성’과 ‘충족성’ 교리 참조). 평생 동안 사본을 연구한 벵겔(J. A. Bengel, 1687-1707)의 결론 곧 “상이 독법(variant readings)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적고 또한 복음적 교리의 어떠한 조항도 변경시키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헬라어 사본들만 해도 5천개가 넘으며 역본들까지 합치면 수만 개가 되지만, 그런 다양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오늘날까지 전수되어 오게 하셨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인간의 실수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고 보존하신 결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2. 공인 본문(TR)의 문제

정동수 목사는 그가 ‘전통 본문’이라고 부르는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킹제임스 번역 성경은 이 TR을 가지고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올바른 성경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TR은 전수되어 온 사본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이며 종교개혁 후 수백년 동안 서양 교회의 성경 번역의 바탕이 되었지만, 그 TR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사본은 다 사람이 손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며 완전한 것은 없다. 물론 얼마나 조심스럽게 필사하느냐에 따라 또 그 앞에 가지고 있는 대본이 얼마나 우수하냐에 따라 그 필사본의 좋고 나쁨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문제이며 어느 사본이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원본을 알고 있다면 그 원본에 일치하거나 가까운 사본을 우수하다고 말하고 원본에서 먼 것을 열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본이 사라지고 없는 상황에서 어느 것이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어려우며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큰 것이다.

물론 크게 보면 말씀의 보존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었다고 고백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본들에게 오류가 없다고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완성되고 난 후에는 모든 필사 과정에 오류가 있다. ‘영감’(inspiration)이란 것은 성경의 기록 과정에만 특별하게 역사하는 것이고 그 후의 필사와 번역 과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이 있었다고 고백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인간의 실수와 오류를 배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사본들은 오류가 있고 원본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서로 다른 수 많은 사본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어느 사본들이 우수하고 또 어떤 사본들이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어느 사본들이 좀 더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도 실제로는 어려우며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본에 대해 말할 때 너무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과 자만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3. 킹제임스 번역의 문제

정동수 목사는 킹제임스(King James) 영어성경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거의 절대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번역한 우리말 킹제임스 번역을 예배 시에 사용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KJV을 좋게 생각하며 우수한 번역이라고 인정하지만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위험하다. KJV도 사람이 번역한 성경 중 하나이며 원본이 아니다. 따라서 번역 성경은 완전할 수 없으며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KJV는 17세기 초의 경건한 학자들이 번역했으며 문자적 번역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많은 경우에 성경 원어를 직역함으로써 원어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역을 통해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 영어 단어의 배후에는 어떤 원어가 있겠다고 추측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영어 문체의 위엄과 아름다움은 익히 잘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1611년에 번역된 KJV는 400여 년이 경과한 지금의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우선 고어체 표현들, 특히 고어체 동사 어미는 오늘날 사용하지 않으며 현대인들에게는 어색하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남으로 말미암아 단어의 뜻이 달라지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나 표현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KJV도 인간의 번역이기 때문에, 비록 전체적으로 좋은 번역이기는 하나, 잘못된 번역들이 더러 있다는 사실이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사도행전 19:2과 에베소서 1:13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행 19:2). 그런데 킹제임스 번역은 “Have ye received the Holy Ghost since ye believed?”(너희가 믿은 이후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번역하고 있다. ‘피스튜산테스’(pisteusantes)라는 헬라어 아오리스트 분사(aorist participle)를 영어의 과거 분사처럼 이해하여 하나 앞선 시제로 보고 번역한 것이다. 그리하여 ‘믿은 것’이 먼저이고 그 후에 ‘성령을 받은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니 오순절주의자들이 이 구절에 근거하여 ‘중생’한 신자라 할지라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로교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어쨌든 중생한 후에 성령 세례나 특별한 체험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헬라어의 아오리스트 분사는 영어에서처럼 ‘하나 앞선 시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점 동작’(punctiliar action)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 믿는 동작이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에 믿는 것 곧 회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너희가 처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NKJV는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라고 바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것은 에베소서 1:13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말 개역개정판 성경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KJV는 “In whom ye also trusted, after that ye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in whom also after that ye believed, ye were sealed with that holy Spirit of promise.”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도 헬라어 아오리스트 분사 ‘아쿠산테스’(akousantes, 듣고서)와 ‘피스튜산테스’(pisteusantes, 믿고서)를 하나 앞선 시제로 오해하여 “after that ...”로 번역하였다. 이런 잘못된 번역에 기초하여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오역은 NKJV에서도 고쳐지지 않았으나 ESV에서는 “when you heard ... and believed ...”로 바로 잡았다.

이러한 KJV의 오역은 당시에는 헬라어 시상(時相, aspect)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헬라어 시상에 대한 연구는 1850년경 프라하의 고전어 학자 게오르크 쿠르티우스(Georg Curtius)가 처음으로 그 중요한 열쇠를 발견한 이후에 20세기에 들어와서 헬라어 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400여 년 전인 17세기 초반에는 헬라어 시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아오리스트 분사를 잘못 번역함으로써 오늘날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2) 로마서 7:7

사도 바울은 로마서 7:7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고 말한다(개역한글/개정판). 그러나 여기에 작지만 중요한 오역이 있다.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는 직설법이지만 원문을 바로 이해하면 가정법으로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가 맞다. 그래서 실제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알았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KJV는 이 부분을 개역한글/개정판과 마찬가지로 직설법으로 번역하였다: “I had not known sin, but by the law.” 그러나 NKJV는 이러한 잘못을 깨닫고서 “I would not have known sin except through the law.”로 바로 번역하였다(NIV와 ESV도 바로 번역). 이러한 것은 헬라어의 조건절에 대해 문법적으로 조심스럽게 살피지 않으면 범하기 쉬운 오류로 KJV도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3) 행 14:23

하나 예를 더 들자면, 사도행전 14:23은 장로 선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로교 정치 원리에서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다. 우리말 개역개정판 성경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위탁하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택하고’란 단어의 헬라어는 ‘케이로토네산테스’(cheirotonēsantes)인데 원래 뜻은 ‘손을 들다’이다. 이것이 나중에는 ‘선출하다, 선택하다’(elect, choose) 또는 ‘임명하다, 임직하다’(appoint, install)의 의미로 사용되었다(Bauer 사전).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공직자를 선출할 때 손을 들어 선출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KJV는 이것을 “ordained”(임명하였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1637년에 출판된 화란국역(SV)은 이것을 “손을 들어 선출하였다”로 단어 원래의 뜻을 살려 그대로 번역하였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장로는 감독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하는 장로회 정치 제도가 옳다는 것을 지지해 주는 핵심 구절이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8:19에 보면 사도 바울 일행과 동행하는 자들 중에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은” 형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택함을 받다’는 단어는 사도행전 14:23에 사용된 ‘택함을 받다’와 같은 단어인데,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교회들에 의한, 투표에 의한 선출임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구제 헌금을 가지고 갈 때에 조금의 의혹도 없도록 하기 위해 교회들이 선출한 형제와 함께 동행했던 것이다.

이로 보건대 교회 장로들은 사도들이 주권적으로 임명한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들에 의해 선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로교 정치 원리에 있어서 중요한 사도행전 14:23을 KJV는 ‘임명하였다’(ordained)로 번역함으로써 위계적인 정치 구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킹 제임스 흠정역’(Authorized King James Version)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론

정동수 목사의 신앙과 신학은 대체로 침례교회의 것과 같거나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관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지나치게 고평가하고 절대화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물론 그는 한글개역판 성경도 읽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만 절대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영어 성경이든 우리말 킹제임스 성경이든 또는 개역한글판이든 그런 것들은 다 인간이 만든 번역이며 완전할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의 배후에 있는 사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TR이 숫자가 많고 과거 많은 번역본들의 기초가 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오류가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본이란 다 필사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고 오류가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네슬레-알란트(NA) 판과 세계성서공회(UBS) 판도 문제가 많으며 논란되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 본문(Majority Text) 판과 비잔틴 본문(Byzantine Textform) 판도 나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하나의 판이나 번역을 절대시하면 안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문제점이 있다. KJV도 좋은 번역 중의 하나이지만 그것을 절대화할 때에는 또 다른 중대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역한글판 번역이 오랫동안 사용되고 사랑받아 왔으나 어려운 한자 용어들과 문장들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들이 많이 나왔으나 여전히 문제점이 많고 불만이 많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의 번역으로 참고할 수는 있으나,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며 문제가 많은 것이다.

정동수 목사는 사본론과 성경 번역에 있어서 너무 치우친 주장을 하고 있는 점들이 문제이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직분론과 세대주의적 종말론 등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것들은 침례교회와 또 많은 교회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 때문에 이단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정동수 목사와 그와 관련된 단체들이 지나친 극단적인 주장들을 삼가하고 올바르고 건전한 견해를 가지게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 교단의 성도들이 그런 잘못된 극단적인 주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하여 정동수 목사의 주장과 킹제임스 영어성경의 절대화와 국내 성경의 은연중 비판과 비하는 많은 성도들의 성경관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므로 예의주시하고 교류 자제하는 것이 가한 줄로 안다.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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