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성소수자’ 아닌, ‘이상성애자’ 자들의 도시를 위한 기도

기사승인 2020.11.03  11:52:19

공유
default_news_ad1

-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3)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아브라함의 기도(2): 소돔을 위한 중보기도(창 18:16-33)

1) 기도의 정황

아브라함이 헤브론 땅의 마므레 상수리나무 수풀 근처에 거할 때였다(창 3:18; 18:1). 그는 장막문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세 사람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창 18:2). 이 중 한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둘은 천사였다(창 18:13, 17, 19, 20, 22, 26; 1 9:1). 아브라함은 고대 근동 유목민들의 풍속을 따라 예의를 다해 손님들을 영접하였다. 아브라함은 (1) 겸손히 몸을 땅에 굽혀 그들에게 쉬었다 갈 것을 간청하였고, (2) 먼지를 씻어내고 피곤을 풀 수 있도록 발 씻을 물을 제공하겠다고 하였고, (3) 시장기를 해소할 수 있도록 떡을 좀 가져올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18:3-5). 세 사람은 아브라함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아브라함은 자기가 말한 것 이상으로 그들을 환대하였다. 아브라함은 방문자들을 위해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고, 버터와 우유와 함께 고기 요리로 풍성한 상을 차려냈다. 히브리서 기자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라고 진술한다.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찾아온 손님들에게 호의를 베풀 때 처음부터 그들의 신분을 알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사람들이 보통 손님에게 베푸는 호의(好意) 이상의 요소들이 보인다. 그는 스스로를 ”()이라 낮추고 손님들을 ”()라 부르며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18:3)라고 초청한다. 그는 방문자들을 단수 ”(. 아돈)로 호칭하면서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기에게 찾아온 세 사람은 자기가 아는 손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지중에 그들을 대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손님들을 자기 장막으로 영접하는 순간 그들이 단순한 나그네들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였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의 원문은 “내 주여 내가 당신의 눈 앞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면”으로 직역된다. 아브라함이 자기 앞에 서신 분이 누구인지 확연히 알지 못하였지만 그는 그분을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실 분으로 인식하였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 언약의 말씀(창 12:1-3)이나 이에 대한 여러 차례의 확인 (창 13:14-17; 15:1-7), 또 피의 언약 체결(창 15:8-21), 개명 지시(아브람→아브라함, 사래→사 라. 창 17:5, 15),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할례 집행 지시(창 17:9-14, 23-24), 사라의 출산 예고,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는 작명 지시(창 17:16, 19), 이삭이 태어나면 그와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선언(창 17:21) 등 일련의 의미심장한 사건들은 사실 아브라함의 영안을 열어주었고, 영적 감지력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그럼 하나님이 두 천사를 대동하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이미 여러 차례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1년 후에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기 위함이었다(18:10).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 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실 때 장막 문 뒤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라는 자기 나이가 많고 경수가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속으로 웃었다. 이를 아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나으리요 하느냐”라고 하시면서 다시 한번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4절)고 말씀하셨다. 이에 사라가 두려워서 자신이 웃은 것을 부인하였으나 하나님은 “아니다. 네가 웃었다”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자신이 아는 것,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 배치되면 자동반사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한 반응일 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이 헤아려 알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물에 대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그것들이 성역사(聖歷史)의 중요 지점을 찍는 것들일 때 믿는 자들은 가일 층 영혼의 감각을 일깨워 신중히 그것들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신 것은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실 때부터 주신 약속과 이에 대한 수차례의 확인, 즉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만민에게 복의 표상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즉, 하나님 나라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보다 결정적이고 구체적인 확약이었다.

2) 기도의 계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출산을 예고하신 후에 두 천사와 함께 소돔을 향해 가고자 하셨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기 위해 함께 밖으로 나갔다. 이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뭔가 주저하시는 듯이 말씀을 꺼내셨다. 하나님은 마치 친구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듯 말씀하셨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실제로 하나님은 그를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 부르신 일이 있다(사 41:8; 비교. 대하 20:7). 이 사실을 흥미롭게 본 야고보 사도는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아브라함의 행위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고 콕 집어 말한다(2:23). 하나님은 두 천사가 아직 함께 있을 때에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첫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에게 펼쳐질 미래에 대해 언급하셨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18). 이것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게 불러내실 때부터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실 것이며,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복”의 표상이 되게 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해 복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말씀(창 12:2-3)에 대한 재확인이다. 아브라함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루어질 “강대한 나라”는 그의 후손이 거룩한 윤리를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의 설계도를 따라 삶을 살아갈 때 견고히 세워질 신령한 나라를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밝히시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그의 후손들로 의(what is right)와 공도(what is just)를 행함으로 당신의 언약 안에 계시된 당신의 길을 따라 걸어 가게 하시기 위함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뜻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을 깊이 이해하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 실천을 통해 “강대한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실천행위 없이는 결코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이 나라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새 언약 안에서 성취된 교회론적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이 나라는 믿는 자들이 언약적 토대 위에 확고히 서서 의와 공도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길을 걸어갈 때 이 땅에서부터 실현되어 나갈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당신의 심판 의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20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 라”(20-21).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소낙비를 머금은 먹구름처럼 심히 무거웠다. 이 두 도시의 선량한 사람들(참조. 창 19:12)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이 도시들 안에 죄악이 얼마나 들끓었는지는 두 천사가 소돔으로 가서 롯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벌어진 소동을 생각해 보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소돔 사람들은 롯의 집을 에워싸고 그의 집에 찾아온 사람들(두 천사)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창 19:4-5). 그들의 목적은 이 손님들과 성관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롯은 혼비백산하여 어떻게든 소돔 사람들이 자기의 손님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문을 닫고 백성 앞에 서서 그들을 만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들은 롯을 밀치며 문을 부수려고 하였다. 이때 집 안에 있던 천사들이 손을 내 밀어 롯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벌떼처럼 아우성치는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 롯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하나님은 이토록 타락한 도시 상황을 직접 실사(實査)하시기 위해 두 천사와 함께 현현하시어 아브라함에게 두 도시를 멸하실 것을 귀뜸해 주셨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돔 사람들의 극악무도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죄악이 범람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구성될 “강대한 나라”가 대조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맥은 하나님의 언약 위에서 의와 공도를 지켜야 할 “강대한 나라”의 반대편에 죄악으로 들끓는 “소돔과 고모라”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도시에 대한 심판 의지를 분명히 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한 가지 예로 나는 동성애 문제를 들고 싶다. 나는 오늘날 세계 많은 국가들이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현실과 한국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사실 성소수자라는 말은 모호하고 부정확한 개념이다. 이것은 전통적 부부성애를 성다수자로 치부하는 개념으로서 동성애 지향의 성소수자나 전통적 부부성 애자를 다 정상적이라고 전제하는 개념이다. 과연 부부성애의 정상성과 동성애의 특이성이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개념인가? 엄밀히 말하여 동성애자들은 성소수자들이 아니라 이상성애자들이다. 이들이 자신들이 마치 다수에 의해 핍박받는 소수인체 한다면 그것은 개념의 왜곡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인간의 보편 인식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아무튼 “강대한 나라”와 “소돔과 고모라”가 상반 개념이라면 오늘날 강대한 나라(즉, 교회론적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인 믿는 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의와 공도를 실천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 개념을 대변하는 “교회”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의롭고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는가? 오늘날 교회가 세속으로부터 경멸을 당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윤리적 명령을 도외시하는 행위 때문이다.

하나님이 위 두 가지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하신 후에 두 천사는 소돔을 향해 발길을 재촉 했고, 아브라함은 단독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시는 동안 천사들로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게 하신 것은 그들로 당신의 언약의 증인이 되게 하고자 하심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겁다고 하시고, 약자들과 압제당하는 자들과 학대받는 자들, 선량한 자들의 탄식과 통곡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하시며 이 도시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실 때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서 있는 그는 신체가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소돔이 어떤 도시인가? 그곳은 사랑하는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가? 14-15년 전(그보다 더 이전 일수도) 남 연합군과 북 연합군 간에 전쟁이 났을 때 목숨을 걸고 자기 가신들을 이끌고 나가 북 연합군 사령관 아므라벨 군대를 맹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조카와 그의 가족은 물론 포로로 잡혀간 모든 백성과 빼앗긴 모든 물품을 고스란히 되찾아와 정상을 회복할 수 있게 공헌한 바가 있던 도시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하나님은 이 도시를 심판하겠다고 하신다. 그는 씁쓸함과 허무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3) 기도의 내용

아브라함의 기도는 개인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의 기도는 소돔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중보기도였다. 그의 기도는 “그래도 그곳에 내 조카 롯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 땅을 멸하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들을 살려주셔야 합니다”라는 사적인 기도가 아니었다. 물론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생각할 때 그에게는 롯과 그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의 존속이냐, 멸망이냐를 가름하는 심각한 순간임을 감지했기에, 그는 심판을 결행하시려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하란, 가나안, 세겜, 벧엘, 애굽, 네게브, 다시 벧엘(롯과 결별)을 거쳐 헤브론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엄청난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자기를 시조(始祖)로 큰 민족이 세워지고 자기는 복의 표상이 될 것이라고 축복하신 하나님, 99세인 자기에게 명년(明年) 이맘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시며 이삭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신 하나님, 방금 전까지도 자기의 후손이 강성한 나라가 되고 자기는 만민 앞에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재확인해 주신 하나님, 그러나 소돔에 대한 심판을 곧 결행하시려는 하나님, 소돔을 심판하려고 두 천사가 떠난 후에 멍하니 서 있는 자기 앞에 정면으로 서 계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1:1 독대에 거룩한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분이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하나님께 황급하게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질문은 일종의 간절한 기도였다. 그의 기도는 소돔의 멸망을 면하게 하기 위한 안타까운 기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의 기도이기도 하였다. 그의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 직접 신론(神論)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였다. 그는 분명히 소돔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 나 그 내용은 아주 중요한 신론적 주제를 담고 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질문과 답변 형식을 취하고 있다(창 18:23-33). 그의 기도에 하나님이 즉석에서 대답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본문은 여섯 차례에 걸친 아브라함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원문을 근거로 산문체로 의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Q & A. 1]
아브라함 : “하나님, 정말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렵니까?(23절 하). 그 도시 안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정말 멸하시렵니까? 그 의인들을 다 죽이시렵니까? 이 50명을 인해 그 도시를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24절). 의인이 악인과 함께 죽도록 이런 일을 행하시는 것은 당신께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의인이 악인과 똑같이 된다는 것도 당신께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온 땅의 심판자는 공의를 행해야 하지 않습니까?(25절).” 매우 당돌하고, 항의적이고, 논리적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지금까지 이런 저돌적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분, 용서의 권한을 갖고 계신 분, 온 세상의 심판주이시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이 소돔에 50명의 의인이 있음에도 그 땅을 일거에 심판하신다면 이는 그의 공의를 깨는 행위였다. 아브라함의 질문은 매우 근본적인 것이었다. 자기가 지금껏 믿고 의지해 온 하나님 자신의 공의의 속성과 그의 판단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브라함의 도전적 질문에 하나님은 노()를 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질문에 담담히 응하심으로 스스로 답을 얻도록 이끄셨다.

하나님 : “그래, 만일 그 도시에서 의인 50명을 찾는다면 그들을 위해 모든 지역을 용서하겠다”(26절). 아브라함은 이 답변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처럼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답변은 자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여기서 대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Q & A. 2]
아브라함 : “보십시오. 제가 감히 주께 말씀드립니다(원문: 제가 ÿÿÿÿ주께 말하기 위해 담대해졌습니다). 저는 먼지요 재에 불과한 존재입니다(27절). 만일 의인의 수가 50명에서 5명이 부족 하다면 이 5명 때문에 그 온 도시를 멸하시렵니까?”(28절 상). 이것은 50명이 아니라 45명이라도 용서하실 수 있는 이유는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 논리적 질문이 하나님과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신이 용기를 내어 다시 질문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자신은 먼지나 재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고백한다. 사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먼지나 재에 불과한 존재가 아닌가? 인간이 마무리 고차원의 이성과 번뜩이는 아이디어, 팽팽한 근육, 놀라운 창조력, 영특한 지혜와 지식, 치밀한 조직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나무 수명만도 못한 채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아브라함이 자신의 첫 번째 질문의 의도를 유지하면서도 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질 때 하나님은 담담히 대화를 이어 가셨다.

하나님 : “내가 만일 45명을 발견한다면 멸망시키지 않겠다”(28절 하). 하나님은 소돔의 상태가 어떠하다든지 당신의 심정이 어떠하다든지 여러 설명을 붙이지 않고 이렇게 짧게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간명한 대답에 아브라함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계속 질문하였다.

[Q & A. 3]
아브라함 : “혹시 거기서 40명이 발견되면 어떻게 하시렵니까?”(29절 상). 두 차례의 질문과 답변 속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소돔이 어떤 상태이고 하나님이 그에 대해 어떤 판단과 의지를 갖고 계신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 5명을 더 깎아 달라는 듯이 질문한 것이다.

하나님 : “내가 그 40명을 인해 멸망시키지 않겠다.”(29절 하). 이 간결한 답변에 아브라함 은 이미 결판은 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네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Q & A. 4]
아브라함 : “주여, 노하지 마소서. 거기서 30명이 발견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30절 상). 아브라함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화나시게 하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노하지 마시라는 간청부터 하고 숫자를 30으로 내렸다.

하나님 : “내가 30명을 발견하면 멸하지 않겠다”(30절 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계속 비슷한 요청을 해도 물리치지 않고 응해 주셨다. 이에 다시 아브라함은 멈추지 않고 동일한 패턴의 질문을 이어갔다.

[Q & A. 5]
아브라함 : “보십시오. 제가 감히 주께 말씀드립니다. 거기서 20명이 발견되면 어떻게 하시렵니까?”(31절 상). 아브라함은 숫자만 내릴 뿐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할 때처럼 “제가 감히 주께 말씀드립니다”(원문: 제가 주께 말하기 위해 담대해졌습니다)라고 하고는 20명을 제안하였다.

하나님 : “내가 그 20명을 인해 멸망시키지 않겠다.” 하나님은 전혀 흔들림 없이 아브라함의 질문을 끊지 않으시고 동일한 방식으로 답변해 주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Q & A. 6]
아브라함 : “이제 주여, 노하지 마소서. 제가 다시 한번만 더 말하게 해 주십시오. 만일 거기서 10명만 발견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32절 상). 아브라함은 자기의 반복된 질문이 하나님을 노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시기를 청원하면서 10명으로 낮췄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너무 뻔뻔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 : “내가 그 10명으로 인해 멸망시키지 않겠다”(32절 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관용을 믿었기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관용을 구하며 여섯 차례씩이나 담대하게 질문하였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돔의 멸망을 막기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셨기에 같은 패턴으로 여섯 차례나 끈질기게 간청하는 그의 기도를 인내로 들으시며 답변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의 간청이 무의미할 정도로 소돔 땅이 멸망을 받아 마땅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소돔의 백성들이 회생불가능의 타락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예로, 그들에게 동성간 성행위 정도는 어른이나 애나 일상사라고 할 정도로 죄악에 물들어 있었다(참조. . 19:4-5). 아브라함은 더 이상 소돔을 위해 중재역을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의지를 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당위성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여 “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다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시 14:2-3; 53:2-3)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많은 수도 아닌 50명에서 출발하여 10명까지 숫자를 내리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내려갈 데까지 내려 간 소돔의 상태! 의인 10명을 찾을 수 없는 소돔 땅! 죄악이 난무하고 성적 타락으로 더러워진 도시! 소돔은 하나님의 눈으로 의인 10명조차 찾을 수 없는 땅이었다. 하나님은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간구를 거부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돔을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을 때 즉시 그의 곁을 떠나셨고, 아브라함도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33절).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려 멸망되고 말았다. 이날의 심판이 얼마나 가혹했던지 예수는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도시들이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보다 더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셨다(10:15; 11:24).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로 구성된 거룩한 나라 곧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새사람 된 자들로 구성된 당신의 나라(하나님 나라)와 대척점에 있는 소돔과 같은 세상 나라를 결국 심판하실 것이다. 소돔의 멸망은 최후심판의 예표적 사건이다. 하지만 세상 역사가 지속되는 한 소돔과 같은 현실은 반복되고, 예표와 성취의 전망 안에서 그것은 또 다른 심판을 불러올 것이다. 아무리 강성한 나라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일 때 그 나라는 파멸되고 말 것이다(참조. 삼상 2:10). 역사를 주름잡았던 앗시리아 제국과 바빌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마케도니아 제국, 로마 제국은 역사의 흔적만 가지고 있을 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심판의 대상, 심판을 위한 정황 판단, 심판의 시기, 심판의 방식 등은 모두 하나님의 몫이다(참조. 왕상 8;32; 시 1:5; 7:8; 9:7; 50:6; 67:4; 82:8; 94:2; 96:10; 98:9; 103:6; 사 26:9; 66:16; 렘 25:31; 겔 30:19; 39:21; 욜 3:12; 행 1:6-7). 소돔의 멸망은 하나님이 세상 나라들과 도시들을 다루실 때, 그 나라 그 도시에 의인(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 복음 진리를 순종하며 사는 자)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느 마을, 어느 사회, 어느 직장, 어느 단체에 의인 1, 5, 10, 100, 1000, 10000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암시해 준다. 복음을 깨닫고, 실천하고, 그것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중요성은 그 어떤 물질적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다. 오늘날 교회들은 모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도시의 의인들로 키워내야 한다.

4) 기도의 응답

아브라함의 전송을 받고 저녁 무렵 소돔 땅으로 들어간 두 천사(창 19:1)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구출해내려고 힘을 썼다. 두 천사는 그들이 심판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그들에게 서둘러 소돔을 빠져나갈 것을 재촉하였다. 천사들은 머뭇거리는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을 성 밖으로 이끌어냈다. 하나님은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것이다(창 19:16). 한 천사가 롯에게 말하기를 뒤를 돌아보거나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하였다 (창 19:17). 다급한 천사의 지시에 가깝고 작은 마을인 소알 땅으로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니 천사가 허락하였다. 롯이 소돔을 벗어나 소알 땅에 당도한 때에 하나님은 소낙비를 내리듯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쏟아 부으셨다. 하나님은 이 성들과 온 들판과 성 안의 모든 사람들과 그 땅의 모든 식물들을 다 뒤엎어 멸하셨다. 그때 롯의 아내는 천사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소금 기둥은 언약을 어긴 자의 표상이다(소금언약을 기억할 것. 레 2:13; 민 18:19; 대하 13:5).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화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와중에서도 롯이 구출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구출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19:29).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애절한 간구를 기억하시고 롯의 구출로 응답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끈질기게 매달리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핀셋(pincette)으로 콕 집어내듯 롯과 그의 가족을 소돔에서 구출해 주셨던 것이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