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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 길 다 가도록

기사승인 2020.11.06  11: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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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가을 벌판이 찬송가 가사처럼 황금물결을 이룬다. 풍요롭다. 이처럼 가을 들판은 늘 풍성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풍성해지고 넉넉해진다. 갖가지 열매들의 합창이 이 가을 들녘에 울려 퍼진다. 올해 가을은 단풍 또한 유난히 아름답다. 저마다 자기를 봐달라는 듯한 모습이다. 내 눈에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만 담아 두기에 아쉬움을 느낄 만큼 산하가 한 폭의 멋있는 걸작품이다.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행복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나무마다 열매마다 마치 잘살아왔다는 듯 스스로 만족하게 뽐내는 것만 같다.

계절 가을은 우리에게 이처럼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하건만 인생 가을에 있는 나는 만세 전에 나를 택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 어떤 행복을 드렸으며 또 드리고 있을까?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 저들처럼 나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이었을까를 생각하니 초연해지고 먹먹해진다.

나는 목사 아내로 40년, 그중에서 담임 목회자 아내로 36년을 살았다. 이제 목사 아내로서 내조 인생 끝자락에 서서 달려온 내 인생을 뒤돌아본다. 걸어온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부끄러운 발자취도 보이고, 대견스러웠던 발자취도 보인다. 눈물의 발자취, 아픔의 발자취, 행복의 발자취 등 짧은 인생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지나간 시간은 모든 것이 다 아쉬움으로만 남는가 보다. 그 모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것만 같고 때로는 세월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편 목사의 말처럼 누가 빼앗아 간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 없어진 젊음인 데 아쉬워하지 않아야 함에도 왠지 자꾸만 나이 들어감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까지 별일 없이 지나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고 거기에 나를 동참시키셨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린다. 때로는 힘에 부대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노선을 벗어나지 않고 살게 하시고 또 그렇게 살아온 것은 전적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만일 누가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이 길을 선택할 것인가? 답은 뻔하다. 아니다. 그것은 이 길이 싫어서가 아니다. 이 길을 걸어보니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길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길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가기엔 너무도 부족했고, 그래서 잘 감당하지 못한 것 같은 송구함과 부끄러움이 앞서기에 그렇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말고 하기 싫은 것은 하라’는 어느 목사님의 역설적인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다시 말하지만, 목사 아내의 길을 원한 것도, 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무감각했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이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나의 길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겼다. 그런 나를 시편 37편에서 약속하심 같이 내 길을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비록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최종의 선택은 내가 한 것이기에 이제 은퇴를 1년 남짓 앞에 두고 ‘과연 나는 맡겨진 내 삶을 제대로 살아왔는지, 칭찬 들을 것은 무엇이며, 책망받을 것은 무엇인지, 한 마디로 후회 없는 삶이었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목사 아내로서 힘들고 어렵고 외로울 때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후회도 해 보았고 불만도 가져 보고 불평도 해 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 아내로 산 내 삶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게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소명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사 아내의 길이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평생 아줌마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할 내가 사모님 소리를 스스럼없이 듣고 살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크고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내가 있는 자리가 늘 은혜의 자리라는 점이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 교회 중심이므로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주의 종인 목사님이고, 대화 내용도, 숨을 쉬는 공간도 모두가 다 교회와 관련된 것뿐이다. 한 주간 내내 죄악된 세상에서 힘들게 살다가 주일에 교회로 나오는 성도들에 비하면 목사 아내의 삶은 복되고 은혜로운 삶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여기서 나 자신을 돌아보니 반성할 점이 너무 많아 부끄럽다. 나는 내가 생각지 않은 일들 앞에서 그저 다 양보하고, 다 기뻐하고, 다 인내하지 못했다. 때로는 내 남편이 자신의 아내인 나의 아픔보다 성도의 아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나와 함께할 시간조차 목회 일에 양보했을 때, 나는 그 일을 기쁘게 여기지도, 흔쾌히 양보하지도 못하였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며 내색하지 않고 웃었지만, 조금이라도 드러났을 것이고, 속으로는 소외감 속에서 울기도 많이 했다. 이것이 나의 부끄럽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저녁노을이 유난히 멋있고 찬란한 것은 하루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기 때문인 것처럼 이제 남편 목사가 목회 끝자락에 서 있으니 유난히 멋있는 저녁노을처럼 멋있게 최선을 다하고 떠날 것을 다짐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은퇴할 때는 물론 세상을 작별할 때도 후회와 미련을 남기기보다는 오직 감사만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훗날, 내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내가 걸어간 이 목사 아내 길을 두고 잘 선택하였고 또 잘 수행했다고 미소를 지을지언정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많고 많은 길 중에서 목사 아내로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내 생에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고 잘 살아왔다고 뿌듯함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이 길로 가게 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고 찬송하지만, 그날에는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했으니”라고 찬송하며 감사하고 싶다.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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