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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욕구

기사승인 2020.11.09  10: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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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 /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송길원 목사

칼을 쥐어준다. 무엇이든 찔러보고 싶어한다. 사람의 욕구다. 완장을 둘러준다. 한 번 소리라도 지르려고 한다. 윤흥길 소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은 어느 날, 저수지 낚시터 관리인으로 취업한다. 감시원 완장을 차고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종술은 밤에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과 그 아들을 두들겨 팬다. 낚시하러 온 도시 남녀에게 기합을 주며 거들먹거린다. 면 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차고 활보한다.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까지 금지하다 감시인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후에도 ‘완장의 환상’에 사로잡혀 가뭄 해소용으로 물을 빼려는 수리조합 직원과 마찰한다. 경찰과도 부딪친다.

사람이 가장 큰 욕구는 ‘완장 욕구’다. 완장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표장’이다. 두르는 순간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된다. 튀어나오는 것은 갑질이고 성질이다. 완장이라 하면 독일 나치 친위대가 먼저 떠오른다.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도 그랬다. 내 아버지 세대의 일제시대 헌병과 6·25 때 죽창부대 완장의 기억은 더 끔찍하다. 처참했고 비굴했다.

   
윤흥길 <완장>

완장형 인간이 어디 임종술만이었을까? 손남주 시인은 시(詩) 《완장》을 통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 심성을 드러낸다. ‘고해 시(詩)’를 넘어서 완장 속물들을 향한 ‘고발장’이다.

나도 완장이었다/ 밥 때문에, 목숨 때문에/ 완장이 됐다/ 주인은 높은 곳에 있어 잘 몰랐지만/ 그의 충직한 하수인이 된 순진한 완장이었다/ 완장은,/ 권력이었고, 아부였고, 횡포였고, 비굴이었고,/ 분노였다// 하찮은 헝겊과 비닐조각이 팔뚝을 끼면/ 어떻게 그 엄청난 변신을 할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구태여 따지러들지 않았다/ 완장은 그저 오랫동안 서로가 함께 살아왔다/ 여기도 완장, 저기도 완장, // (중략)//이제 ‘완장’은 지난 이야기가 되고/ 거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눈에도 보이지 않는 더 무서운 완장이/ 우리들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질’이란 괴질은 언제 주먹질, 발길질,/ 욕질로 발병할지 겁나는 일이다

이 비루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우리는 수시로 본다. 장례식장이다. 일제 하의 감시수단이었다는 완장말이다. 한술 더 떠 완장에 줄을 넣어 계급을 정한다. “넉 줄 완장은 맏 상주가, 석 줄은 나머지 아들들이, 두 줄은 사위가, 한 줄은 손자·형제가 각각 찬다.” 누가 이런 훈령을 내렸을까?

‘주번’이나 ‘안내’ 완장 말고는 평생 완장다운 완장을 차보지 못한 속물들의 한풀이였을까? 임종술의 애인 부월은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술집 작부일 뿐이다. 부월이 일갈한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도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장례가 장례다우려면 이런 허위의식을 내팽개치고 다가온 죽음 앞에 눈물로 답해야 한다. 나의 비굴함과 허세를 울어야 한다. 내 마음 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코로나 19보다 무섭고 처참한 핫질을 울고 또 울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죽음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울음으로 태어나는 새 생명처럼 울음이 새로운 삶의 출발이 된다.

송길원 목사 happyhome10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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