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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론’이란 무엇인가?(10)

기사승인 2020.11.26  13: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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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제5장 선교적 교회론과 제자훈련

최근 한국교회에서 인기가 높은 것 중에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마태복음에는 제자 삼는 사역이 주님께서 교회에 맡겨 주신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나타나 있다(마28:18-20). 한국교회 내부에도 1980년대부터 제자훈련의 열풍이 불어와 이제는 교회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가 실시하고 있는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뭔가 걱정되고 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내부에는 총체적인 삶으로서의 제자훈련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과정을 이수하는 프로그램화된 제자훈련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제자훈련이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교회는 ‘제자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초기부터 나름대로 꾸준히 ’제자훈련‘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교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기 한국교회에서 실시되었던 제자훈련은 어떤 틀에 맞춘 특정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회 생활 전체를 통해 교인들을 철저하게 신앙과 인격으로 무장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초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은 단지 교회라는 제도 안에 머물며 교회 안에 갇혀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들어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안으로는 봉건적인 낡은 시대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주도 세력으로 밖으로는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여 나라의 자주 독립을 지키기 위한 선각자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를 근대적으로 변혁시키는 개혁세력으로 조선 사회의 인습과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당시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였다. 따라서 구한말 국운이 다하여 쓰러져 가던 한국 사회는 이러한 훈련된 기독교인을 통해 새로운 여명이 비치고 새 시대를 여는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초대 교회의 크리스천들은 소위 오늘날처럼 제자훈련이라는 어떤 특정한 프로그램이 없이도 교회 생활 전체가 제자훈련이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책임지는 주도 세력으로서 훈련되고 양육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이러한 제자훈련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어 보이며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교회에 필요한 사람 만들기
우선 제자훈련의 목적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제자훈련의 목적은 무엇보다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적용되었던 것을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제자훈련은 주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사람을 양육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훈련은 성숙한 크리스쳔을 양육하여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그 목적이 제도적인 교회가 요구하는 사람을 만드는데 강조점이 있는 듯이 보인다. 즉, 교회가 사용하기에 편한 사람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의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 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교 단체들이 실시하는 제자훈련을 검토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주님이 요구하는 사람보다 그 단체가 요구하는 사람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포로가 된 제자들
따라서 제자훈련을 받을수록 세상에 나가 변화의 도구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람으로 살도록 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주로 교회 안에 혹은 선교 단체 안에 갇혀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제자훈련이 교회라는 제도나 기관에 포로로 잡혀 있는 듯이 보인다. 그 결과 한국에는 그렇게 제자훈련을 받은 교인이 많다고 하는데 세상으로 들어가 사회를 변혁시키는 역할 수행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제자훈련의 목적은 사실 교회에 머무는 제자가 아니라 교회라는 제도를 넘어 세상으로 들어가는 제자 즉, '선교적인 제자'(missionary disciple)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선교적인 관점에서 제자 세우는 사역은 마태복음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마태가 교회와 선교를 이해하는 골자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마태가 이해하는 제자의 삶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교회 성장의 수단
둘째,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의 문제점은 그것이 지나치게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에서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교회에 더 많은 등록된 교인을 늘리는 숫자적 성장의 개념이 아니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는 “제자훈련을 시키면 교회가 숫자적으로 부흥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실 제자훈련을 시키면 오히려 교인이 격감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16:24) 이 명령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교회와 제자훈련 사이에는 이렇듯 긴장감이 존재한다. 따라서 제자훈련을 교회성장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도구화하는 것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제자훈련이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 남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제자훈련은 이미 무너진 것이라고 본다. 제자훈련이 교회 성장의 수단이라는 신화는 이제 깨져야 한다.

값싼 엘리트주의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서 실행되는 제자훈련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것이 잘못 실행되면서 소위 값싼 영적 엘리트주의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에서는 제자훈련이 어떤 단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되어있다. 예를 들어,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누어서 훈련시키거나, 혹은 ‘제자훈련의 3단계’ ‘제자훈련 7단계’ 등 계단식으로 등급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누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자훈련 고급반을 마친 사람이 초급반을 마친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더 성숙하거나 섬기는 정신이 무르익는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제자훈련의 고급반을 마친 사람이 인격적 성숙의 열매는 보이지 못하면서 초급반, 중급반을 마친 사람보다 자신이 영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소위 값싼 영적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삶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훈련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훈련을 프로그램화하고 등급화하여 사람들을 훈련시킨 흔적은 없다. 사실 제자훈련은 예수님의 총체적인 삶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훈련의 철학은 삶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배우는 훈련이다. 따라서 제자훈련 어떤 도식적인 프로그램 과정 이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 경우 제자훈련은. 교회 안에서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그들 간의 영적 긴장을 조성하면서 영적 엘리트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소위 어떤 특정한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이사하여 교회를 옮기게 되었을 때 새로운 교회에 가서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제자훈련의 목적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어 그렇다. 제자훈련은 주님의 인격으로 성숙해 가는 사람, 어디 가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겸손히 형제를 섬기는 사람, 더 나아가 사도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능동적으로 책임지는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단지 특정 프로그램을 수료한 크리스천 엘리트를 양성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 내부에서는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이 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기를 즐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이수했던 제자훈련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교회에 가서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교회의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시적인 교회 성장을 위해 특정한 프로그램 중심으로 가다보면 오히려 질적으로 하향하는 축소지향적인 교회관에 머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교인들을 훈련시켜 세상으로 파송하여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제자들을 양육하여 세상에 보내는 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이 시대의 선교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교회 구조나 제도권 안에 제자들을 머물게 하고 지도자들이 사용하기 좋은 실용적인 일군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자훈련의 방향은 아니다. 또한 교회를 양적으로 확대하고 교회의 힘을 키우기 위해 시도하는 제자훈련도 진정한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특히 사상적으로는 포스트모던 사회로 세상이 변하면서 현대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구축해온 모든 삶의 기초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주시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의 등장은 사람들이 애지중지해오던 근대 사회의 철학, 종교, 유토피아적 이상을 무용지물화하고 현대인을 극심한 혼란으로 몰아가면서 그들이 세워 놓은 터를 붕괴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foundation)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할꼬?”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무너져 내리는 모더니즘의 세계를 주시하면서 현대인들은 그 위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있다. 모더니즘이 붕괴한 현장 위에 현대인이 세우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으며, 다만 불안한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혼돈스럽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기독교가 어떤 의미 있는 역할을 반드시 해주어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을 자연스럽게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의 선교가 이전 시대의 기독교가 시도했던 선교보다는 더 어렵고 복잡하리라고 예상하면서도 실제로는 무한대한 선교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장인 것을 확신한다. 따라서 교회는 그 구성원들을 제자훈련을 통해 양육하고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점점 더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파송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 자체의 힘을 키우고 조직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시도되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의 시대는 지양하고 21세기 혼돈의 시대를 책임지는 선교사의 사명을 다하는 제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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